위기의 한국축구, 히딩크 역할 고민할 때
세계적 명장 히딩크의 '봉사' 마다할 이유 없어
어떤 역할 주느냐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 필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입을 열었다.
히딩크 감독은 14일(한국시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한국 국민이 원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라고 밝혔다.
히딩크의 이날 발언은 대한축구협회(KFA)에서 공식적인 요청이 들어올 경우 대표팀 감독이든, 기술 고문이든 주어진 역할을 나름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났던 3개월 전에도 측근을 통해 이와 같은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도 예상된다.
김호곤 KFA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은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직후 히딩크 감독이 떠오르는 것에 대해 “히딩크 측의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만난 적도 없고, 문자나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면서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다. KFA가 대응할 일이 아니고 만날 의사도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말이 바뀌었다. 히딩크의 기자회견 이후 김호곤 위원장은 “카카오톡을 찾아보니 지난 6월 19일에 히딩크 측 대리인이 연락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땐 내가 기술 위원장도 아니었고, 뭐라 확답을 할 위치나 자격도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히딩크의 말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축구의 현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중요한 것은 히딩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히딩크는 “KFA가 2018 러시아월드컵 사령탑으로 신태용 감독을 선임한 것을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봉사하겠다는 뜻은 굽히지 않았다.
KFA 정몽규 회장도 지난 12일 20세 이하 월드컵 해산 총회 이후 인터뷰에서 기술 고문 부임 가능성을 남겨뒀다. 정 회장은 “월드컵을 어떻게 잘 치를지 기술위원회에서 상의 될 것이다. 지난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못 냈기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여러 방안을 논의하겠다”라고 밝혔다.
히딩크는 2002 한일 월드컵 성과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세계 축구계에서 인정받은 명장이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는 조국 네덜란드를 이끌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데니스 베르캄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마크 오베르마스 등을 앞세운 화끈한 공격 축구는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6 독일월드컵 예선(AFC 편입 이전)에서는 호주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32년 만에 본선행을 이끌었다. 오세아니아 1위 자격으로 남미 5위 우루과이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일궈낸 대단한 성과다. 본선에서도 일본과 크로아티아를 따돌리고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명성을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호주 대표팀과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감독직을 겸임하며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유로2008에서는 러시아를 이끌고 4강 신화를 이뤄냈다. EPL 명문 첼시의 소방수로 나서 2009-10시즌 FA컵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22경기 16승 5무 1패)도 냈다. 이후 러시아의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와 터키에서 부진 등 아쉬움이 남았지만, 히딩크가 명장이란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좋은 기회다. 히딩크는 유럽에서도 성공한 축구인이다. 국내에는 그만한 경험과 능력을 보유한 이가 없다. 현실적으로 감독은 어렵지만,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오는 10월 러시아 원정 평가전 성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강팀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 힘이 될 수도 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한국 축구는 여전히 위기다. 완벽한 실패로 끝난 2014 브라질 월드컵과 매우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부랴부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신태용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도 9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도 굉장히 싸늘하다.
대표팀 전력 향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야 한다. 히딩크가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봉사하겠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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