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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은 이제 못 들어오는 건가요?


입력 2018.09.24 10:00 수정 2018.09.24 09:39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권력

‘한반도국’이라는 나라도 있는가…‘묵시적 청탁’이란 죄가 있다는데

<칼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권력
‘한반도국’이라는 나라도 있는가…‘묵시적 청탁’이란 죄가 있다는데


ⓒ데일리안 DB

진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는 승장 이사(李斯)와 모의하여 황제의 맏이 부소(扶蘇)를 자결케 하고 막내 호해(胡亥)를 제위에 올렸다. 2세 황제는 우둔하기 그지없었다. 시황제 묘의 축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방궁 공사를 진행하면서 일갈했다.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거늘, 대신들이 선왕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폐하려 하는도다.”(사마천, 사기 진시황본기, 정범진 역)

그 핑계로 승상 이사와 풍거질을 죽이고 악랄무비의 간신 조고를 승상으로 삼았다. 제 무덤을 판데 더해 제국 멸망의 단초를 만든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권력

김정은에게 그의 권좌는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어마지두에 앉기는 했지만 호해의 말처럼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는’ 자리다. 한껏 호사하고 내키는 대로 죽이는데도 원망이 아니라 찬사가 쏟아진다.” 이러면서 신이 된 기분을 만끽하지 않을까?
그가 밖으로 보이는 웃는 얼굴이 오히려 무섭다. ‘사람중심’의 세계관을 당과 국가의 공식 지도이념으로 삼는다는 그곳에 정치범 수용소가 건재하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의 2014년 보고서는 4개의 대규모 수용소에 8만~12만 명이 갇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람’의 범주에서 강제 추방된 존재들이다.

김씨 왕조에 의해 ‘인민의 낙원’으로 이름 지어진 그 인간부재의 땅에서 이곳 자유한국으로 탈출해 온 동포의 수가 3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 그들은 육성으로 권력에 의한 폭력행사가 일상화된 ‘김정은 동토’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그 곳의 지배자가 인간미 넘치는 웃음을 웃으며 악수도 하고 포옹하기도 하는 모습을 어떻게 두려움 없이 바로 볼 수 있겠는가.

유방은 BC206년 10월, 진왕의 항복을 받고서도 궁궐에 머물지 않고 패상(霸上: 함양 부근의 군사 요충지)의 진영에 머물렀다. 항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항우는 12월에 유방이 비워둔 함양에 입성했다. 그의 군대는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다. 궁궐을 석달이나 태우고도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항우는 약탈한 재물과 여자들을 끌고 강동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이 관중(關中)이야 말로 패왕(霸王)의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고 했지만 항우는 “부귀한 뒤에 고향에 돌아가지 아니하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리오?”라며 환향(還鄕)을 고집했다. “초(楚) 땅의 사람은 목후(沐猴: 원숭이)가 관을 쓴 격일 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진언했던 사람이 그렇게 개탄했다. 그 말을 들은 항우는 그를 가마솥에 삶아 죽였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필부필부(匹夫匹婦)나 다를 바가 없다. 대표적인 금의환향의 예를 보여준 이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이다. 그는 1989년 1월 24일부터 열흘간 북한을 방문해서 금강산 관광지 공동개발과 시베리아 공동진출 등 3개항에 합의했다. 경제의 힘으로 휴전선을 뚫은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화해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그의 대북 경제 진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98년 6월 16일 서산목장에서 키운 소 500마리를 50대의 트럭에 나눠싣고 휴전선을 넘었다.

‘한반도국’이라는 나라도 있는가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그때 그 소 1마리가 500마리의 소가 되어 지난 빚을 갚으러 꿈에도 그리던 산천을 찾아갑니다. 이번 방북이 단지 한 개인의 고향 방문을 넘어 남북이 같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세기적이고 세계적인 이 이벤트를 그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았다. ‘소떼 방북사건’은 엄청난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그는 그해 10월에 다시 501마리의 소를 몰고 북한을 방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2년 뒤, 2000년 6월 15일 김정일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치‧안보적 차원에서도 휴전선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 공로로 필생의 염원이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정 회장의 심회는 어땠을까? 정 회장 또한 대선패배와 그 후의 정치적 박해에 대한 보상으로 노벨평화상을 기대했을지 모른다. 금의환향에다 노벨상까지! 그러나 그의 대북투자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들러리 선 셈이 됐고, 대북 투자는 현대아산의 엄청난 손실, 그리고 사후였지만 5남이자 그룹 후계자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초래했다.

정 회장 이후 그에 버금갈, 어쩌면 더 화려한 금의환향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의 금의환향 퍼포먼스 절정은 능라도 5‧1경기장에서의 연설이었다. 15만 북한 주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날 그 경기장에서 펼쳐진 집단체조와 카드섹션에 동원된 북한의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어떤 훈련을 거쳐 그 자리에서 자신을 위해 공연을 했는지를 문 대통령은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그는 ‘남쪽 대통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2개의 국가임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정권에 대등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법률가인 대통령으로서 헌법 규정과는 사뭇 다른 국가인식을 드러내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평양 도착 첫날 공항에서, 거리에서 환영인파들이 들고 흔든 것은 한반도기라는 것과 인공기였다. 이에 대한 논의가 실무협상 과정에서 안 나왔을 리 없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공연히 부정했고, 문 대통령은 국적 없는 한반도기와 인공기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은 공개처형을 항다반사로 하고, 주민의 굶주림에 아랑곳없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광분해 온 통치 집단의 우두머리다. 그런 주민들 앞에서 꼭 그렇게 연설을 하고 싶었을까?

문 대통령은 자신의 평양행에 한국의 대표적 기업총수들을 수행시켰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포함됐다. 북한 측은 이 부회장의 방북을 자신들이 요청했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우리 정부가 결정한 일이라고 우겼다.

‘묵시적 청탁’이란 죄가 있다는데

청와대의 해명이 맞다고 해도 상황의 고약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으로든 이 부회장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형사재판 최종선고의 압박뿐만 아니라 ‘스튜어드십 코드’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입장이다. 국민연금공단이 경영참여를 결정하면 그의 지위는 심하게 흔들리거나 날아 가버릴 수 있다.

북한에 기업인들을 데리고 갈 계제도 아니다. 북한은 말하자면 특수 지역이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 때 경제인들을 수행시키는 관례가 통하지 않는 경우다. 만약 북측이 대북 투자를 요구한다면 이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묵시적 청탁과 뇌물공여라는 이 부회장의 죄목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기업인들의 방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게 될 수 있을까? 혹 정권이 바뀔 경우, 같은 논리로 이들이 추궁을 당할 때 누가 어떻게 보호해줄 것인가.

대단한 성과를 낸 양 자랑하는 ‘평양공동선언’도 그리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1992년에 발효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및 3개 부속합의서와 이의 이행‧준수를 위해 구성키로 했던 남북정치분과위원회, 남북군사분과위원회,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회는 다 어디로 갔는가. 이후에도 남북정상회담이 거듭됐고, 그 때마다 무슨 합의, 무슨 선언 같은 것이 줄줄이 나왔지만 기본합의서 틀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채택됐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구체화되고 강화된 게 있다면 우리 측이 감수하거나 부담해야 할 부분들이다.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평양선언 제5항에 있기는 했지만 이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사이의 문제인 것으로 치부돼버렸다. 스스로 당사자 지위를 버린 것인가.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이다. 북한의 독재자는 종신이다. 이 약점을 북한이 간과할 리 없다. 그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대통령과 정부를, 시쳇말로 갖고 놀았다. 문 대통령의 표현을 흉내 내자면 ‘남쪽 대통령’들은 북한 독재자의 통큰 환대와 호탕한 웃음이 자신에게만 보내지는 것으로 알아 감격했을 것이고….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니 한국 국민의 생사를 자신의 일로 염려할 까닭이 없다. 문 대통령은 들뜬 기분으로 5년 임기를 다하고 물러나면 그뿐이다. 그 후에 좀 더 나이 들어, 더 교활해진 김정은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 그가 개과천선하든가 체제가 바뀌든가 하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참,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데요, 종전선언을 연내에 하게 되면 탈북자의 입국은 불허되는 건가요? 대등한 국가 자격을 주장하며 유엔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지 등을 요구하면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요?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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