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로테르담~함부르크까지 77일…정시운항·연료절감이 '최우선'
항만 상황에 따라 입출항 시간 달라져 "환경규제·최적운항 늘 고민"
부산~로테르담~함부르크까지 77일…정시운항·연료절감이 '최우선'
항만 상황에 따라 입출항 시간 달라져 "환경규제·최적운항 늘 고민"
99.7%. 한국을 오가는 수출입 물량 중 해운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오늘날 한국이 연간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게 된 배경엔 해운 산업의 성장을 빼놓을 수 없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대표적인 국적선사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노력으로 한 때 상선 보유량은 세계 5위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선사들간 '규모의 경제' 확보 경쟁은 심화되면서 해운 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시급해졌다. 선사들 간의 합종연횡, 강화되는 환경규제, 재편을 앞둔 얼라이언스 등 급변하는 시장에서 한국 해운의 현주소와 나아갈 바를 차례로 짚어본다.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STAND BY, ALL STATION)!"
20일 오전 3시 30분(현지시간). 고막을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퍼진다. 함부르크항 접안(배를 안벽에 대는 것)을 앞두고 각자의 위치로 이동할 것을 알리는 신호다. 항해와 통신을 지휘하는 선교에선 도선사(Pilot)들과 선장,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캄캄한 바다 위에 등장한 예인선이 '현대포워드호'를 안벽으로 밀어낸다. 무전 지시와 보고가 수십 차례 오고 간다. 안벽에 가까워질 때마다 선원들은 배 주변을 살핀다. 접안을 시작한 지 1시간 뒤인 4시 30분을 넘어서자 작업이 종료됐다. 내내 굳어있던 선장과 도선사들의 얼굴도 그제야 풀린다.
4600TEU(TEU는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1개) 현대포워드호를 이끄는 유대석 선장은 "엘베강 조류(tide)를 잘 탄 덕에 예상 보다 1시간 빨리 접안했다"고 기뻐했다.
◆부산~로테르담~함부르크까지 77일…정시운항·연료절감이 '최우선'
현대포워드호는 부산에서 출발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 로테르담과 함부르크항을 주요 거점으로 삼는 현대상선의 유럽 독자 노선(AEX)이다. 내년 4월부터 2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투입을 앞두고 유럽 항만 정보와 운항 여건 등을 파악하기 위해 현대상선은 작년 4월 이 노선에 11척의 배를 투입했다.
규모는 소형급이지만 안정적인 서비스 어필로 내년 초대형급 투입 시 화주 확보 및 선박 운항을 수월하게 해내겠다는 전략이다. 유대석 선장은 "선박이 커지면 운임 경쟁력이 생기고, 영업력도 강화된다. 그렇게 되면 메이저급인 7대 선사들과 겨뤄볼 만하다"고 자신했다.
현대포워드호는 1만~2만TEU급 초대형선이 주류인 유럽 항로에 적합한 선박은 아니다. 만선이라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수치를 비교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현대포워드호는 저비용·고효율에 말 그대로 '올인'하고 있었다.
기후와 항만 여건에 따라 여러 번 바뀌는 입출항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선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간과 비용을 계산했다. 실제, 로테르담과 함부르크를 오갔던 18~20일 사이에도 운항 스케줄은 수시로 바뀌었다.
접안 전날인 19일 현대포워드호는 함부르크항에 접안하기 위해 당초 오후 11시경 엘베(Elbe)강에 진입하려 했으나, 이 시간 선박이 몰릴 것을 우려해 예상 보다 1시간 30분 빠른 9시 30분으로 시간을 앞당겼다.
속력을 내면서 연료 소모는 다소 늘었지만 결과적으로 12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선박이 항만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해운사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수 천, 수 억원씩 늘어난다. 반대로 시간을 아낄수록 비용은 절감된다. 현대포워드호가 탄력적으로 운항스케줄을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만 상황에 따라 입출항 시간 달라져 "환경규제·최적운항 늘 고민"
황산화물 규제도 비용과 직결된다. 로테르담, 함부르크, 사우스햄프턴 등을 오가는 유럽 SECA 구간에선 황함유량(SOx)을 반드시 0.1%로 낮춰야 하는 데, 이를 충족하는 저유황유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벙커C유 보다 1.5배 가량 비싸다. 실제 현대포워드호가 벙커링(주유)한 고유황유와 저유황유 단가는 톤당 423달러, 603달러로 1.43배 가량 차이가 났다.
비용 부담이 있는 만큼 저유황유 사용을 최대한 낮추면서도 정시에 운항할 수 있도록 속력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최대 관건인 셈. 유 선장은 "시간 단위당 연료 소모량은 항해 속력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SECA 구간 진입 전까지는 속력을 올리다 구간에 진입하면 속력을 낮춰 연료유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유황유와 고유황유 탱크가 분리돼있지 않은 현대포워드호는 고유황유 탱크가 모두 비워진 뒤 저유황유를 투입해야 한다. 이 때 투입 시간을 꼼꼼히 계산해야 연료가 섞이지 않으면서 환경 기준치에 부합할 수 있다.
갑판부는 선박평형수(Ballast tank에 채우는 물) 최소화로 비용을 절감한다. 선적 계획을 세울 때 중량물과 경량물을 효과적으로 배분해 평형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화물을 더 선적하면서도 운항 속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선체를 일정 각도로 기울게 해 운항하는 트림최적화(Trim optimization) 역시 연료 소비량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최적의 운항을 위한 고민은 엔진과 기자재를 담당하는 기관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선 선박의 심장인 엔진과 발전기, 보일러, 연료 탱크 등을 관리한다. 선박이 입출항할 때면 밤을 새워 작업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각국의 엄격한 환경규제를 맞추면서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책임이 기관실에 달려 있다. 40년간 현대상선에서 근무한 박종문 기관장은 "이곳은 일하는 공간이자 생활공간이다. 안전과 규정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이 국적선사로서 재도약하기 위해선 초대형선박 투입을 계기로 더 많은 화주 유치와 물동량 확보가 과제라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터미널 확보도 필수다. 현대상선은 유럽에선 네덜란드 로테르담(RWG), 스페인 알헤시라스(TTIA) 정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부산(HPNT) 지분 50%를 확보하면서 환적 물량 확보 및 수익 증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유 선장은 "현대상선이 부산신항 터미널을 보유하게 되면서 정시성이 유리해졌다. 자사 터미널 확보는 운항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며 "계속해서 주요 해외 항만에 터미널을 확보했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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