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권기관의 회생 필수 자금 1000억원 분담 거부
1조3000억 대출 뒤 고금리·가상 이자 논란 확산
협력업체 4000곳·직원 2만명…청산 시 유통 생태계 충격 우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 지부 소속회원들이 지난 2월 10일 홈플러스 사태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유통업계의 한 축인 홈플러스가 벼랑 끝에 섰다.
기업 회생을 위해 꼭 필요한 1000억원 규모의 출연금 분담을 두고, 주채권기관인 메리츠금융그룹(메리츠증권·화재·캐피탈)이 최종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은 2개월 뒤로 밀려났다.
사실상 ‘시한부 선고’다. 이 기간에 주채권기관인 메리츠가 회생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홈플러스는 청산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업계는 물론, 6.3 지자체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주목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홈플러스가 청산 절차를 밟게 될 경우, 2만명의 직영 직원과 수만 명의 협력업체 종사자들이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가 휘청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지난 2024년 5월, 홈플러스에 1조3000억원 규모의 부동산담보 대출을 실행했다. 당시 위기에 빠진 홈플러스에 자금을 공급하는 ‘구원투수’를 자처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 드러난 실체는 ‘가혹한 이자 놀이’였다.
메리츠는 대출 집행 이후 단 1년 만인 2025년 5월까지 이자와 수수료, 원금 상환액 등으로 총 2561억원을 회수했다. 표면 금리는 연 8%였으나, 각종 수수료를 포함 연 환산 금융비용을 11~13%로 끌어올렸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관계자는 “연 10%가 넘는 금리는 정상적인 기업 금융의 범주를 넘어선 사실상 고리의 대부업 수준”이라며 “기업을 살리기 위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담보로 단기 고수익을 챙기려는 약탈적 설계”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회생 절차 중인 기업에 800억원이 넘는 가상 이자를 청구한 점에 대해서도 업계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메리츠가 기재한 회생채권 신고서에 따르면 메리츠는 미상환 원금에 IRR(내부수익률) 기준 가상 이자 861억원을 추가로 얹어 신고했다.
이는 홈플러스가 회생을 신청한 날을 기준으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했다고 가정하고, 자신들의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역산해 산정한 금액이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채권기관이 회생 채권액을 부풀려 자신들의 배당권만 강화하고, 정작 회생에 필요한 자금 출연은 거부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메리츠가 출연을 거부하는 배경에는 ‘담보 우위 구조’가 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의 핵심 부동산을 담보로 잡아, 설령 홈플러스가 파산하더라도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받도록 설계했다.
금융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메리츠는 ‘홈플러스가 망해도 우리는 돈을 번다’는 확신 아래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며 “국민의 예금과 보험료로 성장한 금융그룹이 사회적 파장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행태는 전형적인 ‘벌처펀드(Vulture Fund)’ 식 행태”라고 규탄했다.
유통 생태계 붕괴 위기…“협력업체 연쇄 파산 불 보듯 뻔해”
유통업계는 홈플러스의 청산 가능성에 공포에 떨고 있다.
전국 수십 개 점포의 문이 닫히면 직영 직원뿐 아니라 입점 상인, 물류, 배송, 청소 등 연관 산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즉각 끊긴다.
홈플러스의 국내 유통시장 매출은 연간 약 7조원대로 추산된다. 이 같은 매출은 단순히 한 기업이 만들어 내는 단순한 수익이 아니다. 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피라미드식으로 연계된 경제 활동이다.
홈플러스의 협력업체는 약 4000개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 협력업체의 연간 납품 규모는 약 3~4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기업 회생이 실패하면 이 부분이 한 번에 사라진다.
6.3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정치권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메리츠가 홈플러스 회생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청산 위기에 처한 홈플러스는 실직과 연쇄 부도 및 지역경제 타격 등으로 정치권에 폭탄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홈플러스가 청산될 경우, 홈플러스 직원들은 물론이고 협력업체 등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급여 등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지역경제 침체 우려도 높다. 전국 홈플러스 매장은 120여개 정도로, 매장 당 매출은 연간 8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매장이 창출하는 총 경제 규모는 1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홈플러스 협력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수천 개의 중소 협력업체가 물품을 공급하는 거대 플랫폼”이라며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대금 미지급으로 인한 협력업체들의 도미노 파산은 막을 수 없으며, 이는 곧 한국 유통 생태계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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