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조희대 사퇴 압박, 사법부 수장 광천골로 내몰려 하나 [기자수첩-사회]

김남하 기자 (skagk1234@dailian.co.kr)

입력 2026.03.10 07:00  수정 2026.03.10 07:00

정청래 대표 "조희대, 즉시 퇴진해야"…與 사퇴 압박 공세 계속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시 대법원장 권한 정지…모든 직무서 배제

헌법 위배 근거 없이 입맛 따라 교체 시도…헌정질서 근간 흔들려

대법원장 사회적·행정적 유배 상태로…法 권위 마비 시도 멈춰야

조희대 대법원장 ⓒ국회사진취재단

1000만 관객을 홀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마을 광천골의 청령포는 한 번 발을 들이면 세상과 단절되어 숨죽여야 하는 절멸(絶滅)의 유배지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이 사법부 수장을 향해 휘두르는 탄핵 압박의 서슬을 보고 있자면 서초동 대법원 청사 위로 청령포의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해 섬뜩한 기운마저 감돈다. 이미 사법개혁으로 혼란스러운 사법부의 보루를 기어이 유배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정치적 야욕이 노골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본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희대 사법부가 사법 불신의 원흉이다. 12.3 비상계엄, 서부지법 폭동 때의 태도 그리고 대통령 후보도 입맛에 맞게 바꿔치기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은 즉시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부 수장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은 범여권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엔 대법원장 탄핵 공청회를 강행하며 여론몰이에 나섰고,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한 의원 서명 운동에도 돌입하는 등 사법부 수장을 직무 정지라는 외통수로 몰아넣기 위한 실력 행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는 순간 대법원장의 권한은 즉시 정지된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이 내려지기 전까지 사법 행정의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음은 물론 대법원장으로서의 모든 직무에서 배제된다. 사법부의 수장이 서류 한 장 결재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로 방치되는 것으로, 이는 사실상 현대적 의미의 정치적 유배나 다름없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이 유배령을 내리려는 명분이 극히 희박하다는 데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을 향해 사퇴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그가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렸거나 헌법을 위배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안갯속이다. 오로지 정치적 셈법에 따라 사법부의 수장을 입맛에 맞는 인물로 교체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대법원장이 파면된 사례는 전무하다. 사법부의 수장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일은 헌정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사기에 엄격한 법적 요건과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 이러한 헌법적 엄중함을 망각한 채 탄핵을 정쟁의 소모품으로 치부하던 과거의 습성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특별한 귀책 사유가 없는 대법원장을 직무 정지의 늪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는 사법부라는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리는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천연의 유배지 청령포는 권력의 눈 밖에 난 이들이 강제로 유폐되어야 했던 비극적인 장소였지만 명분 없는 탄핵 공세에 밀려 대법원장이 내몰려야 할 곳은 결코 아니다. 대법원장을 사회적·행정적 유배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결국 사법부 전체의 권위를 마비시키는 행위다. 사법 행정의 심장부를 적막한 유배지로 만들려는 무리한 시도를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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