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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부터의 훈풍, 절대로 불어오지 않는다


입력 2020.01.27 09:00 수정 2020.01.27 08:15        데스크 (desk@dailian.co.kr)

문재인‧김정은이 트럼프 속였다

‘생명공동체’라는 황당한 착각

북한 정권과 주민을 갈라놔야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7월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남측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7월 30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남측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고 있다. ⓒ청와대

김경희가 공식석상에 다시 나타났다. 조카 김정은, 조카며느리 리설주, 조카딸 김여정과 삼지연극장 관람석 맨 앞줄에 앉아 함께 설 명절 기념공연을 지켜봤다. 장성택이 무참하게 처형당했지만 그의 아내 김경희는 조카이자, 처형자인 김정은과 공연구경을 같이 했다. 작년 12월 25일에 촬영됐다며 다음날 노동신문에 실린 사진으로는 표정을 판별하기 어렵다. 설령 표정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의미는 없다.


왕에게 반역자로 찍히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폭군은 화를 내서 처형을 명할 수도 있고, 그냥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여 시그널을 보낼 수도 있다. 어쨌든 그건 죽이라는 뜻이다. 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사람도 없고 장치도 없다. 옛날엔 죽임을 당하면서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며 북향사배(北向四拜)를 올리는 것이 신하의 도리였다. 왕족도 신하 이상이 아니다. 고모라고 다르지 않다. 고모부를 죽인 조카이지만 떠받들어 모셔야 할 군주다. 충성맹세의 과정을 거쳤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 체제의 특성과 속성을 이 한 장의 사진이 제대로 말해주고 있다.


문재인‧김정은이 트럼프 속였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서 일한 고위급 탈북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는 기사가 작년 12월 11일 ‘워싱턴타임스’에 실렸다. 그걸 우리 언론들이 보도했고, ‘신동아’가 2월호에 그 전문을 게재했다.


30년간 북한 노동당에서 일했다는 그가 쓴 편지 핵심은 “김정은이 권력을 유지하는 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고위급 인사가 이를 확인해 준 셈이다(그런데 어쩌나. 이 상식을 애써 부인하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안에도 넘쳐날 정도로 많이 있으니).


이 탈북 인사는 이렇게 강조한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서명했지 북한의 비핵화에 서명한 게 아닙니다. 판문점과 평양 남북 공동선언에서 문재인과 김정은이 모두 미국 대통령을 속인 것입니다.”


이미 당시에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김정은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차이도 당연히 꿰뚫고 있었다. 트럼프는 모르고 속았을까? 하긴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체제 구성원들의 화법은, 평이한듯하면서도 난해하고 아주 교활하다. “미국, 당신들은 이제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완전히 떠나는 거야”라고 김정은은 말했고, 트럼프는 “북한지역에 핵을 없애겠다”라고 들었을 개연성이 높다. 김정은의 말대로라면 미국이 한국 영토 안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한반도 인근에 군사기지를 유지하는 한 북한 핵무장은 ‘미‧북 합의에 의한 정당한 권리행사’가 될 것이었다.


그걸 트럼프는 간과했을 법하다. 성과를 가시화시키기에 너무 급급했다는 걸 전제하면 그렇다. 아니면 김정은을 만만하게 봤을 수도 있다. 일단 ‘비핵화’에 합의한 이상, 시늉이라도 할 것으로 기대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게다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보증을 섰다. 문 대통령이 확신도 없이 김정은의 신뢰성을 보증했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국의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와 관련, 미국의 대통령을 기만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아니었겠는가.


‘생명공동체’라는 황당한 착각


문 대통령이,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로 김정은의 변화가능성을 믿고 있는 것일까? 북한 통치자는 변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다 알고 있다. 문 대통령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트럼프에게 보증을 선 것은, 그리고 대북 신뢰정책을 밀어 붙이는 것은 ‘빅맨 콤플렉스’ ‘위인 콤플렉스’ 혹은 ‘평화의 사도 콤플렉스’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민족주의에 매몰돼서?


문 대통령은 남북이 ‘생명공동체’라고 신년사에서 강조했다. ‘공동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도 쓰는 것인지 의아하다. 북한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적대 세력이다. 공동체라니! ‘8천만 겨레’에 김정은 체제를 포함시켜 말한다면 더더욱 무리다. 북한 지배세력은 북한 주민에 대한 폭압집단일 뿐이다.


접경지역 협력,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도쿄 올림픽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남북 간 도로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의 국제 평화지대화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구상을 그는 제시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영구적인 협력사업이라면 이건 그냥 백일몽이다. 문 대통령과 통일부가 내놓고 있는 ‘개별관광’아이디어도 맥락은 같다.


탈북 고위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가장 분명한 전략과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관광 사업과 사이버 해킹에 전면적 제재를 가해야 하며,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인 심리전과 군사적 압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합니다.”


김정은 집단의 돈줄을 막는다.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게는 외부 지원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 이런 심리전과 함께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 주민들을 김정은으로부터 떼어놓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게 정답이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갈라놔야


북한의 내부 변화야말로 ‘광적인 종교집단’ 같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 여겨진다. 외부의 압력만으로는 북한 왕조를 무너뜨릴 수 없다. 화해 교류 협력 정책으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내부 변화를 유도 촉진하는 외부의 작용이 북한 체제 변화의 선결과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정부, 그리고 여당은 북쪽으로부터의 훈풍이 4‧15총선 승리의 지렛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과거 보수정권 시절 정권측이 ‘북풍’을 이용한다고 소리소리 질러대며 비난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북풍 관리’ 기량은 가위 발군이라 할만하다. 다만 착각하는 게 있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 편을 들어주리라는 기대다. 김정은이 왜 그러겠는가. 총선 끝나면 문 대통령 임기는 2년 남짓 남을 뿐인데!


게다가 어차피 문 정부 임기 내에는 특별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뀔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 한계가 분명한데도 말만 번드레하게 하면서 당장 무슨 큰 선물이라도 줄 것처럼 문 대통령은 감언(甘言)을 낭비해 왔다. 김정은으로서는 오히려 기합을 단단히 줌으로써 차기 정권에 경고를 보내는 게 낫겠다는 계산을 할 법하지 않은가.


경자년(庚子年) 이해엔 제발 정권 측의 ‘망상 팔이’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단언컨대 북한은 문 정부에 대해 북풍 지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남‧북간에 훈풍이 인다고 하더라도 총선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폭압의 군주 김정은 돕기에 우리 국민이 박수쳐야 할 까닭이 도대체 뭔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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