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한은 총재 불러 경제 대책 논의
이미 돈다발 푼 선진국들…'뒷북 논란' 가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이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역풍이 거세지면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발 금융 불안이 국내 시장에 직격탄을 날리자, 결국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불러 대책 논의에 나서면서 금리 인하 시계는 더욱 빨라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앞서 조정 기회를 가졌던 한은이 타이밍을 놓친 와중 주요 선진국들이 앞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정책 대응을 둘러싼 실기론에는 더욱 불이 붙는 모습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1771.44로 전일(1834.33) 대비 3.43%(62.89포인트) 하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에는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식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10시 43분 유가증권시장의 매매 거래를 중단했다. 발동 당시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8.14%(149.40포인트) 떨어진 1684.93을 가리켰다.
이는 지난 밤 미국과 유럽증시가 모두 폭락한 후폭풍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흐름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 캐나다 중앙은행 등이 신용경색을 막기 위한 유동성 공급조치에 나섰지만, 증시 추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날 미국 뉴욕 증시는 코로나19 확산 공포에 폭락했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9.99% 내리며 1987년의 이른바 블랙 먼데이 이후 가장 큰 하루 낙폭을 기록했다. 나스닥은 9.43%,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지수는 9.51% 빠졌다. 지난 9일에 이어 3거래일 만에 다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이에 청와대는 대통령 주재로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 모아 경제·금융 상황 특별 점검회의를 열었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 처음으로 이 총재를 청와대로 불러 함께 의견을 교환하며 주목을 끌었다. 기준금리가 한은의 독립적 권한임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이와 관련된 직접적 언급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례 없이 이 총재를 참여시킨 것만으로도 상징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 대응하고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하는 청와대가 사실상 한은에게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한 모양새로 읽힐 수 있어서다.
이는 눈앞의 금융 시장 불안을 넘어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우리 경제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보로 해석된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가 역대급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론이다.
최근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2~1.4%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달에 제시했던 0.5~1.8%의 성장률 전망치보다 더 낮아진 수치다. 노무라증권은 오는 6월까지도 코로나19 여파가 진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2%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점쳤다. 노무라증권과 더불어 모건스탠리 역시 최악의 경우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아울러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달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6%로 한 차례 하향 조정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추가로 눈높이를 낮춘 것이다. 또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1%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S&P는 지난 달 19일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6%로 내린 바 있지만, 한 달도 안 돼 다시 전망치를 0.5%포인트 낮췄다.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은은 낙관론을 이어가며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 달 내놓은 올해 첫 경제 전망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1%를 기록하며 2%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판단을 기반으로 한은은 지난 달 27일 열린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유지했다. 전달 금통위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기준금리 동결이다.
문제는 주요 선진국들이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달 3일 미 연준은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폭인 0.5%포인트의 정책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금융권에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미 연준이 오는 17~18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더 내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에 캐나다 역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며 미국을 즉시 뒤따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영국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7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0.25%로 끌어내렸다. 조만간 금리 결정 회의를 앞둔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선진국들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시장에서는 한은이 적절한 대처 시점을 놓쳤다는 불만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미 연준보다 며칠 앞서 기준금리를 손볼 수 있는 금통위가 예정돼 있었던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한 여건이었음에도 스스로 기회를 날렸다는 비판이다.
이에 뒤늦게 한은은 임시 금통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이다.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금통위 전에 임시로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에 더욱 힘을 싣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현실화 하더라도 뒷북 대응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임시 금통위 개최 필요성에 대해 현재 금통위원들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전날 진행된 금통위 본회의가 끝난 뒤 금통위원들은 협의회를 갖고 임시 금통위 개최 필요성을 포함, 한은의 정책방향에 대해 협의한 바 있다"고 전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 연준의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은도 조정 시기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지난 2월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둘러싼 아쉬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