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D기획┃일자리 잃은 방송작가②] 코로나19가 들춰낸 ‘최악’의 근로 시스템


입력 2020.05.22 15:06 수정 2020.05.23 10:05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곪아있던 문제 터졌다"...방송작가 처우 문제 심각

막내작가는 잡일 담당? 밤새 일하고 폭언에 협박까지

ⓒ픽사베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드러난 방송작가의 근로 시스템은 그야 말로 열악했다. 방송작가는 특수고용직 형태의 프리랜서가 대다수다.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사대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때문에 보통 직장인처럼 퇴직금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송작가는 3600명이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작가들을 포함하면 5~6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에 따르면 전국 방송작가 580명을 대상으로 고용 형태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방송작가 93.4%는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돼있지만 72.4%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로 출·퇴근하며 상근 형태로 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작가들은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방송작가의 실태가 낱낱이 들어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년차 방송작가 B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도 방송작가에 대한 처우 문제는 심각했다. 이미 곪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코로나 같은 사태의 최대 희생양이 된 셈이다. 보통의 고용형태만 유지하고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방송작가들의 고용은 주로 방송사 PD에 의해 이뤄진다. 그것도 ‘구두계약’으로. 간혹 메인 작가가 막내 작가를 채용하고, 구인 사이트에 공고를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알음알음으로 PD가 구성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다.


B씨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계약서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고 작가협회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친한 작가 중 계약서를 쓴 사람도 있는데 그조차도 형식적인 절차일 뿐 사실상 의미가 없는 종이 쪽지일 뿐이다. 계약서에 특수 상황에서 작가가 보호받을 수 있는 항목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임금과 채용 결정권이 PD에게 있다 보니 누구 하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막내 작가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보통 서브와 메인 작가를 보조하는 일은 하는 막내 작가들은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참고 견뎌야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결국 불합리한 상황을 참지 않으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협박과 다를 게 없다.


1년차 방송작가 C씨는 최근 방송사의 부당한 처우, 선배 작가들의 협박에 못 이겨 결국 프로그램에서 스스로 발을 뺐다. C씨는 “막내 작가가 하는 일은 보통 ‘잡무’다. 행정, 재무팀이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맡기기도 하고 각종 심부름과 자료 조사 등 그냥 잡다한 일들을 모두 한다고 보면 된다”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실수가 생기거나 사고가 생기면 그 책임도 모두 막내작가에게 떠넘기거나, 각종 폭언을 들어야 하는 분풀이 대상이 된다. 실제로 한 선배는 ‘내 커리어에 흠집 내지 마’ ‘네가 한 게 뭐가 있어’라는 말을 밥먹듯이 했다”고 폭로했다.


또 그는 “막내 작가는 24시간 대기조다. 휴일과 휴식시간의 경계도 모호하다. 직장인 같은 경우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방송작가는 그렇지 않다. 식비 지원, 1시간의 점심시간은 바라지도 않는다. 일을 하는 내내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불과 8년 전까지만 해도 막내 작가의 임금은 월 80~120만 원 선이었다. 2018년 최저임금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도 이 수준은 그대로 유지됐다. 현재는 최저임금에 맞게 160~200만 원까지 오른 상태고 방송사들은 이를 지키고 있지만, 외주제작사에서는 여전히 120~130만 원 정도의 임금을 주며 노동을 요구하는 곳도 다수 있다.


분명 표면적으로는 임금이 올랐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C씨는 “일단 계약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 임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앞서 진행하던 작품도 구두계약으로 진행됐는데 급여일이 며칠인지, 정확히 얼마가 입금되는지도 몰랐다”면서 “심지어 지금은 그만둔 상태인데, 애초에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국가에서 진행하는 청년지원사업 신청도 불가하고, 1년 이상 근무를 해도 퇴직금,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 형태”라고 호소했다.


또 그는 “얼마 되지 않는 급여가 밀리는 일도 잦다. 올해 초반에 일했던 기획료도 지금까지 받지 못했다. 아니, 받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법적으로 내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이 전혀 없다”고 했다. 현재는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C씨는 “작가를 꿈꿨기 때문에 몇 번의 좌절로 그만둘 수 없어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곳 역시 계약서 작성은 없었다. 지금은 꿈을 쫓아 일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우가 개선되면 좋겠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이 시스템이 쉽게 바뀔거란 기대는 없다”고 푸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