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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사대주의


입력 2020.11.12 11:00 수정 2020.11.12 10:53        데스크 (desk@dailian.co.kr)

트럼프, 미국의 이단아이자 민주주의의 교란자

미국은 ‘치팅(cheating)’에 허술한 나라

외교의 기본인 ‘국익’으로 돌아오길

ⓒ데일리안 DB

세가 약한 나라는 큰 나라와 공생하기 위해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서다. 고려가 원나라에 그랬고, 조선이 명나라, 청나라에 그랬다. 정치적으로 왕이 ‘책봉’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조공무역’을 했다. 자존심이 좀 상하기는 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조공무역’만 해도 대국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조선의 명나라에 대한 사대는 좀 달랐다. 대국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기 보다는 한족왕조를 섬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익을 위해서라기보다 명 왕조를 사모하고, 명의 망국을 슬퍼해 명 종묘에 제사를 드려주고, 그들을 패망시킨 만주족 오랑캐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다가 청나라의 침략을 당해 수치를 겪었고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조선은 사양길로 접어든다.


지금 세계는 미중간의 패권경쟁 중이다. 우리나라의 생존과 번영은 그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안에 따라 현명히 대처해야겠지만, 큰 구도에서 입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0년 넘는 중국과 관계에서 우리는 철저한 을(乙)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심이 된 현대 세계체제에서 우리는 크게 번영했고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필자는 미국과의 동맹을 공공이 유지하는 것이 상당기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명나라 왕실을 대신해 제사를 지내는 과공(過恭)은 피해야 한다. 지금 바이든의 미국은 트럼프의 미국과 완전히 다른 미국이다. 왕조교체와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단아다. 미국 민주주의의 교란자였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 당선직후 하버드대학교 정치학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이들은 원래 1930년대 유럽과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타자를 주제로 객관적인 연구를 하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칭송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집권하자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 그들이 연구대상으로 삼아 온 후진국의 후진정치가 미국에서도 성공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미국은 ‘깡패국가’일지는 모르지만 사기 치는 국가는 아니었다. 그들은 사기를 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누구를 속이기보다는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문화의 요체는 ‘정직’이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미국은 그렇다.


중학교 때였다. 미국에 이민 갔던 사촌누나가 조카를 데리고 고국을 방문했다. 그 조카는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말 그대로 미국인이었다. 그때는 국내에서 귀했던 큐브를 자기고 우리집에 왔다. 혼자 규브를 돌리며 색깔을 맞추고 놀기에 신기하고 재미있어 어깨 너머로 봤다. 나도 한 번 해 보겠다고 하고 받아들었는데 쉽지 않았다. 결국 조카가 다시 받아 마무리를 했다. 그때 어머니와 사촌누나가 “누가 맞췄니?”라고 묻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제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냥 농담이었다. 앞에 장본인이 있는데 속일 수도 없고 이유도 없었다. 그때 조카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봤다. 보통 웃어넘겨야 할 일을 너무 정색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보통의 미국인은 이런 일도 거짓말로 생각할 정도로 정직이 생활화되어 산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이드가 들어갈 때 매표원에게 코인을 하나 주면서 ‘도네이션(donation, 기부)’이라고 하면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동전을 내며 ‘도네이션’이라 말하고 들어갔다. 그때 매표소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순순히 입장을 허락했다. 나는 창피했다. 그들은 보기에 멀쩡한 동양인이 제값을 내지 않고 입장하는 모습을 보며 불편했을 것이다. 나는 그 뒤로 미술관과 박물관에 들어갈 때면 항상 제값을 내고 입장했다.


미국은 ‘치팅(cheating)’에 허술한 나라다. 우리 같으면 항상 있을 법한 일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안정장치가 고안됐을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이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미국의 일반적 정서와 거리가 먼 인간형이다. 미국문화에서는 ‘이단아’고 ‘교란자’인 것.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200년 미국 민주주의에서 보이지 않던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미국인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미국은 반목했고 내전상태 직전이다. 트럼프가 미국인의 어두운 심성을 각성시킨 것이다. 그래도 미국 민주주의는 수많은 곡절과 각고 끝에 정상적인 궤도를 찾고 있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문제는 그런 미국을 바라보는 우리정부다. 미국은 제국이다. 제국의 대통령이 교란자라면 세계질서도 교란될 수밖에 없다. 우방인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북핵문제가 뜨거웠다. 트럼프는 이를 활용해 리얼리티 쇼를 벌였고, 우리는 그 쇼를 조장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 결과 우리국민이 ‘북핵의 노예’로 사는 것인데도 말이다. 미국의 남의 나라지만 우리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사활이 걸려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남의 쇼에 자처해서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제국의 리더십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철지난 쇼를 지속하려 한다. 어이가 없는 일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축사를 보내며 ‘트럼프의 대북성과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을 사기로 보고 김정은을 불량배로 보는 당사자에게 말이다. 그러면서 강경화 외무부장관을 대선승복을 하지 않는 트럼프행정부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보냈다. 바이든 당선인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재인 정부에게 트럼프는 쉬운 상대였다. 으름장을 놓기는 했지만 항상 단순한 해법이 있었다. 돈으로 해결하면 됐다. 중국과의 경제전쟁을 선포하고도 중국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정부에 크게 불쾌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방위비 협상’과 ‘전작권 이전’ 등에서 주도권을 잡는 전략을 폈다. 그는 공식적인 협상보다는 개별적인 협상을 중시한다. 보통의 독재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외교적 현안에서도 ‘톱다운 방식(top-down)’을 선호한다. 그러니 개인의 기분을 맞춰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낯 뜨거운 수사를 통해 트럼프의 기분을 맞추며 각별한 친분을 과시한 후, 뒤에서는 핵을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정부도 그 장단에 춤을 췄고 정권의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이익’보다는 ‘가치’를 중시한다. 그래서 ‘동맹의 가치’를 강조한다. ‘동맹’임이 확인되면 큰 혜택을 보지만 아니면 응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장사꾼’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노선을 맞춰 외교를 펴고 있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모두 우리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지금의 스탠스는 불안하기만 하다. 제발 외교의 기본인 ‘국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꼭 ‘사대’를 해야 한다면 쓰러져가는 트럼프가 아니라 제국 미국에 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


글/김우석 정치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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