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새 EP '서바이버' 발매
"코로나 시대의 우리들과도 일맥상통한 앨범"
비가 와서 질척거리던 땅은 마르고 나면 더 단단해진다. 사람도 어려운 일을 겪은 뒤에는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싱어송라이터 굴뚝새(본명 박수민)도 모든 걸 내려놓고, 음악만을 위해 힘겨운 해외 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단단한 음악을 만들어내게 했다. 성악을 전공한 엄마와 언니 덕에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접하고, 추계예대에 합격하면서 음악인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는 더 넓은 무대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매일 저녁 공연을 하면서 버스 탈 돈도 없어 늦은 밤 길 위의 벤치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얼굴에 술 세례를 맞기도 했다. 버스킹 팁 박스에 모인 돈을 도둑맞는 일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그가 꾸준히 길거리를 무대 삼아 노래를 한 건, 그저 음악이 좋아서였다. 그리고 이젠 스스로를 위로했던 그 노래를, 대중들에게 들려주고자 나섰다.
-노숙까지 해가며 해외에서 공연을 했던 그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추운 날은 너무 춥고, 더운 날엔 또 너무 더워 힘들기도 했는데, 그 땐 예술가병에 제대로 걸렸었는지, 그런 상황이 기분이 간지러울 만큼 좋았습니다(웃음). 나를 아무도 모르는 지구 반대편에서 엄청난 모험가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때만큼 한 인간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잊지 못할 당시의 기억이 있다면요?
당시에는 인정받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저 내가 노래할 때 느낀 감정들을 사람들이 공감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런던의 Dublin Castle이라고 하는 공연카페의 매니저가 제게 다가와 ‘너와 같이 에디도 여기서 3년 동안 공연을 했다’고 얘기했었어요. 에디가 누구냐고 묻자, 자신의 친구인 에드시런이라고 하더라고요.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종종 공연 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언젠간 모두가 알아 줄 테니 절대 포기 하지 마’라고 했던 그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의 공연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굴뚝새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네.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했던 시간들은 아니었으니까요. 예전에는 그냥 노래를 불렀었다면, 많은 여정을 겪은 후엔 제 영혼을 보여주며 노래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렇게 굴뚝새가 되었습니다.
-음악을 시작한 것이 ‘스스로에 대한 위로’라고 하셨는데, 여러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계기가 있나요?
대학생 시절에 작곡한 노래가 있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동기 언니가 갑자기 울면서 화장실로 뛰어가는 거예요. 깜짝 놀라 따라가 보니 매우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제 노래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다면서 그리 친하지 않던 저에게 속 얘기들을 꺼내는걸 보면서 ‘나를 위로하려던 노래가 오히려 누군가를 위로 할 수도 있겠구나’ ‘음악이란 게 이렇게 큰 힘이 있구나’ 느낀 그 순간부터 더 많은 욕심이 생겼어요.
-굴뚝새라는 이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저희 제작사의 대표님이 붙여주신 이름이에요.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의 의미와, 굴뚝 속에서 노래하는 것 같은 음색이 있다고 해서 ‘굴뚝새’라고 지어 주셨어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주변 분들은 줄여서 ‘뚝새’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디선가 ‘갓뚝새’라고 해주시는 분이 있었는데 듣기 참 좋더라고요. 지금은 부모님들, 친구들 포함 다 좋다고 합니다. 절대 잊히지 않는 이름 같아요.(웃음)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첫 앨범 ‘필 유’가 나왔을 당시 기분은 어땠나요.
그렇게 많은 공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 떨리더라고요. 마치 초등학생이 입학식에 가는 것 같은 느낌 이었어요. 그 때는 코로나로 인해 격리가 한창이었었는데, 아무리 멀리 있어도 너를 느낄 수 있다는 ‘필 유’의 가사가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지난달 11일 발매된 앨범 ‘서바이버’에 대한 설명도 해주세요.
살다보면 절대 헤어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과 이별하기도 하잖아요. 그 이별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무너져도, 이것이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내용의 곡이에요.
-앨범을 구성하는데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요.
이번 신보는 어느 정도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고, 복고적인 느낌을 살린 곡을 타이틀곡으로 실었습니다. 이번 타이틀곡은 앨범 제목과 같은 ‘서바이버’(Survivor)입니다. 그리고 제가 워낙 신인이다 보니 이전에 발매했던 곡들이 묻혀있는 것 같아서 다시 꺼내어 EP 앨범에 실었어요. 두 번째 싱글 곡이었던 ‘리브 미’(Leave Me)는 보코더 형식을 도입해 리믹스 했고요. 제 목소리도 오토튠으로 보코더와 주고받는 재미가 있는 곡이에요. 마지막으로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도 넣었습니다.
-‘서바이버’와 함께 ‘좋아한다는 한마디’를 더블타이틀로 내세웠죠.
영국 유학시절, 돈 없고 힘들 때 길에서 통기타 치며 막 만들어서 부르던 노래가 ‘좋아한다는 한마디’였는데 아까운 곡이라 더블 타이틀로 가기로 했죠.
‘서바이버’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슬픈 감정을, 죽다 살아난 사람에 비유한 곡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입에 달고 사는 말이잖아요. ‘배고파 죽겠다’ ‘경치가 죽인다’ ‘죽을죄를 졌다’ 등등. 그래서 ‘서바이버’라는 제목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고자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첫 작업이 작년 9월 이었는데 감정이 살지 않아서 몇 번을 재녹음한 곡이에요. 멜로디 수정, 재녹음, 결국 마지막에 지쳐서 녹음한 데이터가 가장 감정이 잘 살아서 그 데이터로 믹싱을 하였는데, 뒷부분에 오버게인 된 곳이 있는데 그냥 수정 없이 가자는 프로듀서님의 의도대로 그대로 담아버렸어요.
-음악을 만들어낼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
보통 일상에서 느낀 점들로 쓰기도 하지만 친구나 혹은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짓는 표정에서도 곡에 대한 영감이나 스토리들이 떠오릅니다. 가장 보통이고 현실적인 것들에 대해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본인의 작곡 스타일, 음악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정의 할 수는 없지만, 저는 ‘하늘’ 같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하늘은 주인도 없고, 어디서든 올려볼 수 있고, 자유롭잖아요. 다 다르지만 같은 하늘이기도 하고, 지치거나 힘들 때, 날이 좋을 때, 언제나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같은 스타일? 말이 되나요? 하하.
-앨범을 듣는 대중에게 포인트를 짚어줄 수 있을까요?
포인트라고 한다면 지독히도 힘들었던, 혹은 그립거나 아팠던 그 모든 감정들 또한 사랑이었다는 것. 아프고 이뤄지지 않았기에 애틋한. 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서브 타이틀곡인 ‘좋아한다는한마디’도 어떻게 보면 슬픈 이별 곡이거든요.
-앨범을 통해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앨범명이 ‘서바이버’잖아요. 앞서 말했듯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고자 하는 우리들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합니다. 모두 이 시대에 살아남아서 코로나가 없는 시대를 멋지게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 거리공연을 했을 때와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호주, 영국, 독일 등 주로 해외에서 버스킹을 비롯한 활동을 해 왔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음원을 내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어요. 대표님도 ‘아무 음악이나 내놓아서는 안 된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외국에서 거리공연을 할 때에는 조금 더 제 자신에게만 심취해 있었다면 이제는 좋은 노래, 좋은 글, 좋은 감정을 대중들과 나눠야 한다는 마인드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코로나19로 공연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죠.
맞아요. 코로나는 너무 많은 환경의 변화를 가져왔죠. 공연을 하지 못하면서 많은 음악인, 공연 관계자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첫 음원을 발매했던 시기도 코로나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오히려 집중해서 녹음을 할 수 있었고, 꼭 공연만이 대중들과 소통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됐어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두들 힘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굴뚝새의 음악적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제가 해외에서 주로 듣고 영향을 받았던 노래들이 네오소울과, 어쿠스틱, 일렉트로니카 쪽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크게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소화할 수 있습니다. 케이팝 댄스곡만 아니라면요. 하하.
-마지막으로 올해 계획,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4월에 신보가 발매될 예정입니다. 봄과 어울리는 곡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믹스까지 완료된 재즈소울곡을 수정·보완해서 여름이나 가을쯤 발매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진하게 관객 분들과 소통하며 공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많지 않은 관객이라도 좋아요. 저에겐 익숙한 광경이거든요. 마이크가 없어도 맨 뒷줄까지 모두 들리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굴뚝새의 목청이 이 정도랍니다. 하하.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