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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④] 모리타니안, 당신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아서요


입력 2021.03.31 01:00 수정 2021.03.30 18:5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모리타니에서 온 사람, 타이틀롤을 연기한 타하르 라힘 ⓒ이하 ㈜디스테이션 제공

모리타니가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 아래 있는 나라인 줄 몰랐다. 당연히 ‘모리타니안’이라는 영화 제목이 ‘모리타니 사람’의 뜻인 줄 몰랐다. 간만에 조디 포스터 지적 카리스마를 보고 싶은 마음,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울림을 지닌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 언뜻 짐작되지 않는 두 배우의 어울림에 대한 궁금증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엄청난 행운으로 대단한 수작을 만났다.


영화는 모하메두 슬라히(타하르 라힘 분)의 집안 행사, 온 마을 사람들이 참석한 잔치에서 시작한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슬라히는 마치 ‘걸프 왕자’처럼 전통의상을 입고 마을 사람들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그를 반기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여유롭고 편안한 태도로 도움을 약속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도시나 선진국으로 나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읽힌다. 그것도 졸부가 됐다기보다는 지적인 인상과 신뢰의 느낌이 강하다. 역시나, 국가 장학금으로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다. 누군가 슬라히를 찾는다, “미국이 매우 화나 있다”며 체포하려는 모리타니 경찰이다. 내 차로 따라가겠노라고 말하는 슬라히. 불안해하는 어머니, 자신의 이마를 어머니 어깨에 대며 안심시키는 아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보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지? 누가 주인공이지? 장르가 뭐야? 궁금증을 갖게 하는 캐빈 맥도널드 감독의 연출 방식 자체에서 오는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기는 느낌’이 영화에 대한 집중을 강화한다.


그렇게 집중시킨 뒤 맥도널드 감독은 강타를 날린다. 자차로 가는 걸 허락하는 걸 보니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던 슬라히의 말은 물거품으로 증발하고, 그렇게 집을 떠나는 아들은 요르단과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심문을 거쳐 쿠바에 위치한 미국 해군 관할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된다. 그리고 6년 만에 인권변호사 낸시 홀랜더(조디 포스터 분)가 그의 변호를 자청한다. 금단의 벽 너머의 슬라히를 만나러 간다.


인권 변호사 낸시 홀랜더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 이것이 지적 카리스마다,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에 빛나는 연기 ⓒ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주는 인상 그대로, ‘아, 억울하게 잡혀 왔구나!’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맥도널드 감독은 베일을 한 겹 한 겹 벗기는 방식으로 이번엔 우리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고 불신의 열매를 수확하려 한다. 슬라히에게는 빈 라덴의 측근인 사촌이 있고, 그 사촌은 라덴의 전화기를 슬라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괜히 전화했겠어? 뭐가 있는 거지…. 사촌은 슬라히에게 5000불을 보낸 적이 있다. 한 번 의심을 지니니 5000불의 용도를 테러 지원자금으로 상상한다. 아버지가 아프시니 대신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사촌의 부탁이었다는 슬라히의 설명을 색안경 쓰고 본다.


드디어 수확의 시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정부 자료를 보니 미국의 비위 사실은 ‘기밀’이라는 미명하 검은색으로 모두 지워진 채, 슬라히의 자백이 적혀 있다. 2001년 9월 11일에 행해진 미국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국방부 건물에 자행된 비행기 테러의 주범이라는 내용이다. 낸시와 함께 변호를 맡았던, 슬라히와 말이 더욱 잘 통하던 테리 던컨 변호사(쉐일린 우들리 분)가 충격으로 등을 돌린다. 관객의 마음에도 충격파가 인다. 심지어, 흔들리지 않는 홀랜더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마저 생긴다. 슬라히의 유무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소도 없이 감금된 인권 자체, 미국의 잘못된 법 집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중요한 것인가? 이런 의심에 홀랜더가 말한다.


“성범죄자를 변호한다고 성범죄자 취급하지 않고, 살인범을 변호한다고 변호사의 뒤뜰을 파헤치는 일이 없는데 왜 테러리스트를 변호한다고 테러리스트 취급하나?”


시나리오에 감명 받아 제작에도 참여한 베네딕트 컴버베치. 값진 투자를 아는 영화인 ⓒ

미군은 군검찰관 스투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베치 분)에게 특명을 내린다, 슬라히를 사형죄로 기소할 것. 카우치에게는 친구가 있었다,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했던 여객기를 테러리스트에게 뺏기기 전까지 운행했던 부기장이었다. 카우치는 주말마다 가는 교회에서 부기장의 아내를 본다. 사명감이 고취된다. 슬라히를 단죄하는 것을 정의를 세우는 일로 여긴다.


직업적 사명감에, 종교인으로서의 소명에 카우치는 진지하게 업무에 임한다. 일을 진행할수록 아는 게 느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절감하고, 노력 끝에 정보를 확보하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거꾸로 확신이 흔들린다. 자백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같은 시각, 홀랜더는 슬라히의 편지를 통해 고문 사실을 알게 된다. 회상으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고문은 잔인한 실상을 ‘재연’하기보다 조명과 소리, 환상에 의존하는 바가 큰데 도리어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얼마나 처참했는지 ‘공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민낯이 붉은 조명 아래 선명히 드러난다. 맥도널드 감독의 이와 같은 간접 표현 또는 치환이나 은유는 영화 ‘모리타니안’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힘을 부여한다.


일테면, 슬라히가 철창을 벗어나 잠시의 휴식의 시간 갈 수 있는 해변의 붉은 천막 안. 슬라히는 천막 안에서 눈을 감고 밖에서 일렁이는 파도 소리에 집중한다, 천장까지 오방이 막힌 곳에서 슬라히는 천막의 찢어진 틈을 통해 바다를 보려 애쓴다. 자유에 대한 갈망, 고향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희망, 그러나 기한 없이 갇힌 자의 절규를 이보다 아름답고도 처절하게 그릴 수 있을까.


첫 주연작 '예언자'부터 감옥에 수감된 인물의 내면 연기에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난 배우 타하르 라힘. 눈빛 표현에 뛰어나다 ⓒ

인간의 자존감을 바닥을 넘어 맨홀까지 떨어뜨려 짓밟는 고문의 참상을 알게 된 홀랜더는 콴타나모로 향한다.


슬라히: 무슨 일이죠, 오늘도 누구를 고소하나요?

홀랜더: 아니에요.

슬라히: 그럼, 왜 온 거예요?

홀랜더: 그냥요, 당신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슬라히의 손을 잡는 홀랜더. 슬라히가 집을 떠난 후 그의 몸에 손을 댄 것은 감금과 고문의 손길이었다. 맥도널드 감독은 슬라히 팔목에 수갑을 걸고 몸을 쇠사슬로 묶는 행위, 푸는 행위를 반복해 보여 주었다. 모래사장 위 천막 안에서 만난, 옆 천막의 마르세이유(수감번호로 부르기는 싫은 두 사람이 살았던 지역으로 이름을 대신 한)와 희망과 절망의 얘기들을 나누며 내일이 보이지 않는 오늘을 서로에게 기대면서도 손끝도 닿을 수 없이 목소리만 들었다.


어머니의 어깨에 이마를 댔던 이후 처음으로, 짐승 대 사람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첫 접촉이었다. 어떠한 이유와 배경에서든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 내 마음을 내 진실을 알아주는 이 없다고 느끼는 당신이라면 예고 없이 두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혼자입니까 ⓒ

손길 하나로 참으로 억울한 이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말하는 맥도널드 감독의 과묵함, ‘원 데이 인 셉템버’를 시작으로 ‘말리’ ‘휘트니’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단련된 저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 과묵함은 법정에서도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한다. 기소하는 검사도, 변호하는 변호사도, 판결하는 판사도 말이 없다. 오로지 모하메두 슬라히의 법정 진술만 들려준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인상적인데, 살아가면서 그 의미는 더 새겨야 할 것 같다.


“우리 말(아랍어)에서 ‘자유’와 ‘용서’는 한 말입니다. 그러기에 난 갇힌 이곳에서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러니 신이 당신을 용서하고 함께하시길.”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모하메두 슬라히는 법정에서 승리하고도 7년을 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돼 있었다. 그 자막을 읽는 순간 절로 탄식이 인다. 14년 만에(2002~16년 감금) 고향으로 돌아간 슬라히의 실제 모습, 그를 도왔던 변호사들의 모습이 영화 에필로그로 등장한다. 그 5분은 또 다른 감회와 감동을 안긴다. 어떻게 그토록 평안하고 밝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수작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어느 부문에도 후보로 오르지 못했을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관타나모 밖에서도,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영화 ‘모리타니안’(수입 ㈜퍼스트런, 배급 ㈜디스테이션)에, 진실을 넘어 진심을 전하는 명연기를 펼친 배우들에게 오스카 트로피 이상의 영예를 안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관객인 우리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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