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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전여빈의 낙원과 밤


입력 2021.05.02 17:04 수정 2021.05.02 17:0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빈센조'·'낙원의 밤' 동시기 공개

엄태구는 캐릭터의 삶을 사는 배우 칭찬

사격연습 매진

ⓒ넷플릭스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은 기존 누아르의 공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태구(엄태구 분)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재연(전여빈 분)의 이야기란 줄거리 한 줄에서 누아르의 클리셰인 배신과 폭력, 복수 코드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래도 이 영화가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여빈 역시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를 휘젓는 재연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다. 그는 재연을 연기할 때 겉으로 봤을 땐 여린 소녀지만 눈빛만큼은 초연함을 유지하는 걸 중점으로 뒀다. 여기에 복수를 위해 뛰어난 사격실력을 가진 설정마저 완벽하게 표현하려 했다.


"이렇게 멋있는 캐릭터를 만나니 행복한 책임감만 들었어요. 재연을 통해 여리지만 무던히 노력해 놀라운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단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 언밸런스를 잘 표현하려고 사격장에 가서 연습했고 평소에도 총을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또 총의 반동이나 총격소리에 놀라지 않으려고 했죠. 몸이 버틸 수 있는 근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어요. 무엇보다도 몸은 여려보여도 눈빛만큼은 뜨겁고 차가워보이기 위해 총을 쏠 땐 눈을 절대 깜빡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이방인이 찾아오고, 아끼던 이들을 잃어가는 재연이지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과거 가족이 몰살돼 삶의 의지를 잃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재연의 전사를 고려한 의도된 설정이다.


"무표정도 하나의 표정인 것 같아요. 눈을 들여다보면 무수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 형태가 드러나지 않을 뿐인거죠. 무표정이 많은 아픔을 거친 재연의 표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원하고 바라는 것이 없는 표정.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강인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극중에서 재연과 태구는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감정은 사랑일까. 연민일까. 바라는 것 하나 없는 태도를 유지했던 재연이었기에 두 사람의 관계성에 관객들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저는 두 사람의 감정이 어렵지 않았어요. 삼촌과 나의 세계에 침범한 인물이 나타났을 때 평화가 깨질까봐 너무 싫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일들을 함께 겪으며 서로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된거죠. 서로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위로가 됐을 것 같았고요. 그런 동질감이 사랑이라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단순히 연인 간의 로맨스는 아니고,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표현하기 어렵진 않았어요."


전여빈은 현장에서 가진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엄태구를 보며 스스로 반성을 했다. 현장에서 엄태구의 연기만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엄태구는 '낙원의 밤'에 깊게 녹아들었다고 칭찬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로서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었다.


"날 믿게 만드는 배우랄까요? 극중 인물의 삶을 사는 배우예요. 정말 놀라웠던 건 카 체이싱 장면을 너무 힘들어했는데 내색 하지 않고 완벽하게 연기하더라고요. 컷 소리가 나면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힘들어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면 순식간에 달라져요. 오빠가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재 전여빈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낙원의 밤'과 tvN '빈센조'가 동시기에 공개되며 180도 다른 캐릭터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호평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전여빈을 향해 '전여빈 대세론'을 언급하니 수줍게 웃어보였다.


"배우로서 모든 장르가 좋아요. 한 캐릭터에 갇혀있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배우는 나란 사람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 삶을 동경해서 연기를 시작한 것 같아요. 늘 0에서 다시 시작하게 돼요. 하지만 너무 바랐던 일이라 그 어려움마저도 행복하고 재밌어요. 그저 꿈꾸던 것들이 현실이 돼 감사하고요. 어렵게 와준 행복이 소중한 걸 아니까 처음을 기억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해요."


전여빈은 연기는 하면 할 수록 어렵다고 털어놨다. 겪어낼 수록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고 개인적인 욕심도 자꾸 생기기 때문이란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쌓여가잖아요. 나의 표현방법이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어요. 기준이 높아지니까 욕심이 생겨요. 예전엔 스스로 관대한 면도 있었어요. '난 이제 시작하니까, 여행하는 마음으로 배역을 만나보자' 싶었죠.(웃음) 그런데 지금은 욕심이 나니까 연기가 어렵게 느껴져요. 선배님들이 연기는 하면 할 수록 어렵다고 말하는 걸 보면 공감이 돼요."


이날 전여빈은 '빈센조' 마지막 촬영으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낙원의 밤' 인터뷰에 참여했다. '빈센조' 촬영을 끝낸 후 인터뷰를 진행하면 '낙원의 밤' 공개 시기와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 강행군을 선택한 것이다. 잠을 못 잔 탓에 컨디션 난조를 고백했지만, 전여빈의 모든 대답엔 정성이 가득했다. 전여빈과의 인터뷰는 극을 끌어가는 배우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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