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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대통령 한마디에 해고자 받은 쌍용차, 이번엔 해고 압박


입력 2021.06.15 09:56 수정 2021.06.15 10:57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대통령 해고자 복직 압박에 적자에도 과잉 인력 수용

법정관리 상황서 산은 사실상 인력 구조조정 압박

현실 고려 없는 대통령 선심 남발 자제해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청와대/산업은행

2018년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쌍용차 대주주였던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두 달 뒤인 그해 9월.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가 주도하는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쌍용차 해고자 117명의 복직 스케줄이 잡혔다. 이들은 2018년 71명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까지 모두 쌍용차로 복직했다.


대통령의 인도 방문 후 약 3년이 지난 2021년 6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수장인 이동걸 회장은 쌍용차에 임직원 일부를 내보낼 것을 압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이 회장은 지난 14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가 제시한 자구안에 대해 “2년 무급휴직을 비롯해 노조가 상당히 희생한 것은 맞다”면서도 “쌍용차가 2년 만에 회생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가 투자자라면 (회사가) 정상화되기 전에 인건비가 올라 부실화할 수 있다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는 2년 무급휴직이 사실상의 인력 구조조정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지만, 이 회장은 무급휴직 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회사가 정상화될지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며,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로 휴직 인원이 복귀하면 인건비 부담을 버틸 수 없다는 점을 투자자의 시각에서 상기시킨 것이다.


직접 구조조정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불확실성을 제거한 명확한 인력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대통령의 압박으로 과잉 인력을 받아들인 쌍용차가 법정관리로 내몰린 상태에서 이번엔 국책은행 수장으로부터 인력 구조조정 압박을 받는 형국이다.


사실 이 뒤틀린 상황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은 이 회장 쪽이 아니다. 쌍용차에 대한 산은의 지원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회장의 발언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쌍용차 회생을 위한 산은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외국 기업이 될지도 모르는 인수 의향자에게 “우리가 혈세를 끌어다 부채 다 탕감해주고 운영자금까지 지원해 줄 테니 날로 드시라”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쌍용차가 획기적인 고정비 지출 절감 방안을 포함한 자구안을 마련해 인수 의향자들이 혹할 만한 매물로서의 매력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는 게 이 회장의 발언 의도다.


오히려 문제가 됐던 것은 3년 전 문 대통령의 해고자 복직 압박이었다. 그 해 쌍용차는 6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해고자 중 71명을 복직시켰다. 이듬해인 2019년부터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됐고, 적자는 2819억으로 확대됐음에도 불구, 2020년 추가로 46명을 받아들였다.


물론 쌍용차가 맞은 지금의 위기가 100여명에 불과한 해고자의 임금 부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체적인 경영 실패도 있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주주 마힌드라의 지원 중단이 결정적 타격이 됐다.


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게 당장 필요치도 않은 100여명의 고임금 근로자(복직자들은 회사를 떠난 기간도 호봉이 인정돼 임금이 최상위 수준에 속한다)들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한 게 타당한 일이었는지는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수긍하기 힘들다.


심지어 그렇게 복직한 이들 중 일부는 회사 자구안을 놓고 벌인 노동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반대 여론을 부추기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쌍용차 자구안은 지난 7~8일 이뤄진 찬반투표에서 가결됐지만 찬성표가 52.1%로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넘겼다. 특히 복직자들이 근무하는 본조(평택) 소속 조합원 투표에서는 오히려 반대표가 53.6%로 절반 이상이었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원 정규직 전환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던지는 대통령의 선심은 그 선심의 수혜자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낳는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 최저임금, 정년연장, 노동법 등 대통령과 진보여당의 선심이 우리 사회에 미친, 그리고 앞으로 미칠 파장은 수없이 많다.


지금은 전제군주 시대가 아니다. 나랏님이 뒷감당도 못할 선심을 뿌리고 다니며 인기몰이에 심취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는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선심은 남의 것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사비를 털어 하는 일이 아니라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대책 없는 선심은 거둬들이길 바란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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