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의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검증에서 손을 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은행들에게 지우려 한데 따른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가상화폐 거래소 태스크포스에 참여하고 있는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 등은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에 대한 면책기준의 필요성을 당국에 전달했다.
은행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예기치 못한 금융 사고가 터졌을 때 계좌를 발급해줬다는 이유로 은행에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논란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의 검증 과정에서 과실이나 책임 사유가 없다면 향후 가상화폐 거래소 사고와 관련해 은행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면책기준을 만들어 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지난 1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아예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은행권에서는 결국 가상화폐 거래소를 둘러싼 모든 책임을 은행들에게 떠넘기려는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별 민간 금융사로서 가상화폐와 관련된 부담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없는 은행들이 아예 검증 자체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KB·하나·우리금융그룹 등은 자금세탁 사고에 연루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작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조만간 줄지어 문을 닫게 될 것이란 염려도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바뀐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오는 9월 24일까지 실명계좌 등 전제 조건을 갖춰 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