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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승의 역사 너머 역사㊳]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하는 ‘인맥 사회’


입력 2021.07.20 14:00 수정 2021.07.20 13:18        데스크 (desk@dailian.co.kr)

1953년 3월 타임지ⓒ위키

예나 지금이나 유력가와 안면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다. 특히 그 유력가가 정치인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한 뒤 독립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이승만과 윌슨 대통령은 사제지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승만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윌슨이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교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미국에서 발행되던 대표적인 한인 신문이었던 ‘신한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대통령 윌슨은 (중략) 청원서 한 장을 받으니 이는 바로 한국의 자유를 요구하기 위하여 한국의 대표들이 보낸 글이다. 그 대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윌슨)에게 관숙한 바로 그 이름은 이승만 철학박사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Old Nassu(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받을 때에 윌슨 씨는 그 학교 교수로 있었다. 박사는 현재 호놀룰루에서 발행하는 ‘국민보’의 기자이다(그 때에 윌슨 씨는 이 박사를 미국 상원 의원에게 소개하며 말하기를 “그는 장래 한국의 구세주이다He is Future Redeemer of Korea”라고 했다).“

- ‘코리아는 자유를 위하야 윌슨께 청원’, <신한민보>, 1919. 2. 6.


윌슨 대통령이 이승만을 미국 상원의원에게 한국의 구세주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기사에 당시 미국 한인뿐만 아니라 독립을 열망하는 국내외 한인들까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윌슨 대통령은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대통령이자,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는 세계적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윌슨 대통령과 이승만 간의 관계가 인용한 내용처럼 그렇게 긴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물론 이승만이 박사학위를 프린스턴 대학에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윌슨과 사제지간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관계였는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드로 윌슨은 뉴저지 주지사 출마를 위해 1910년 10월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사임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승만이 프린스턴에 재학한 기간은 1908년 가을부터 1912년까지였다. 대략 1년 반 정도 겹치는 기간이 있지만, 이 정도 기간만으로 이승만과 윌슨 간의 관계를 각별한 사제지간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위키디피아 등에서는 우드로 윌슨을 이승만의 지도교수로 소개하고 있지만(2021년 7월 13일 검색 기준), 실제 그의 박사논문을 찾아보면 지도교수로 에드워드 엘리엇이 나온다. 서문에서도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오히려 당시 대학원장이었던 앤드류 웨스트 대학원장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앤드류 웨스트 교수는 동양에서 홀로 건너온 이승만을 위해서 학위심사 연기뿐만 아니라 박사학위 발간을 위한 기금 마련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의 이름은 지도교수와 함께 이승만의 박사학위 논문 서문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당시 프린스턴 총장이었던 우드로 윌슨과 이승만 간의 관계를 다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 총장이었던 윌슨과 대학원장이었던 앤드류 웨스트는 언론에서 ‘전투’(battle)이라고 부를 정도의 심각한 갈등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이승만이 박사학위를 받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우드로 윌슨이 아닌 앤드류 웨스트 대학원장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실제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 재임 당시 이승만의 독립운동 로비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19년 파리 강화협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승만은 비자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이승만이 직접 윌슨에게 청원서까지 썼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물론 이승만의 헌신적인 독립운동을 평가절하 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승만과 윌슨 간의 관계를 지레짐작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유력자와 찍은 사진 한 장, 혹은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혹하여 그 이상을 기대한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soothhistory@nahf.or.kr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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