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내년 예산안 확장 편성 주문
올해만큼 늘리면 본예산만 640조원
4차 대유행 등 재원 조달 위축에
차기 정부 재정 운용 곤란할 수도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또다시 ‘역대급’ 규모로 추진하면서 내년에 들어설 차기 정부 경우 재정 운용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9일 민생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내년 정부 전체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하기 위해 재정 당국과 부처들이 함께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방역 상황으로 민간 경제활동에 어려움이 커질수록 정부가 적극적 재정 운영으로 민생의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신속한 집행 등 적극적 재정 운용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민생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특히 취약계층 금융부담 경감을 위해 정책서민금융을 연간 9조~10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정부 예산은 6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본예산 558조원에 1차 추경 14조9000억원과 이번 2차 추경 34조9000억원까지 합치면 607조8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는 본예산 512조2504억원에 4차례 추경을 통해 66조8147조원을 추가, 579조651억원을 집행했다.
만약 정부가 지난해 본예산 증가율(약 14.8%)만큼 늘려도 내년에는 본예산만 640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추경까지 더해지면 700조원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이처럼 정부가 예산 확장 기조를 가속해버리면 차기 정부는 재정 운용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올해처럼 추경이 필요한 경우 재원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은 “이번 정부가 지나치게 돈을 쓰면서 그 결과 1000조원 가까운 부채가 쌓였다”며 “차기 정부는 쓸 돈이 없어 경제 활성화를 돕기는커녕 결국 나라빚 갚기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2차 추경은 초과 세수를 이용해 그나마 정부로서도 부담을 덜었지만 내년에는 초과세수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현재 4차 대유행으로 전국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상태라 내수 활성화를 당장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현 정부도 이미 확정한 추경마저 집행 시기를 고민할 정도다.
경기 침체 우려는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경지심리지수(ESI)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이달 전체 산업에 대한 BSI는 지난달보다 1p 하락한 87을 기록했다. 경제심리지수(ESI)는 전월에 비해 5.4p 하락한 103.9로 나타났다.
차기 정부에서 필요한 경우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추경을 편성하겠지만 이마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30일 기준 대한민국 국가채무는 928조406억원으로 1000조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국채 발행은 국가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가 신용평가사들은 우리 정부에 재정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 주문하고 있다. 차기 정부가 국채 발행으로 재정을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 입장에서 예산을 늘릴 필요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상황 종료를 알 수 없는 만큼 장기적 시각으로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내년에 들어설 다음 정부가 쓸 돈마저 바닥내 버린다면 위기 상황에 (당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나”고 지적했다.
그는 “이미 4차 대유행을 통해 코로나19가 가진 변수, 예측 불가능 등을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만큼 차기 정부가 정책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여지는 남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재정 확대는 대통령 지시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만 지금 예산안 편성을 위해 각 부처와 논의를 하는 중이니까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