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승인에 시민단체·여권 일각 "박범계씨 그만 물러나시죠" 강력 반발
법조계 "지지층의 호된 질책 박범계, 취업승인 결단은 어려울 듯"
"삼성전자도 취업승인 신청 쉽지 않을 듯…법무부 불허 결정 위험부담 커"
박범계 '경영행보 사실상 용인'·'취업제한 일축'으로 반발여론 최소화할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이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연일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미 가석방 승인과 동시에 "재벌총수 특혜"라는 비판을 들으며 거센 사퇴 요구에 직면한 데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행보를 놓고 "취업제한을 어긴게 아니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지만 시민단체들은 이 부회장 고발을 예고하고 있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지난 9일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고 박 장관은 심사위의 결정을 그대로 승인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과 여권 일각에서는 "촛불배반" "특혜"라고 반발하며 박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정부가 촛불정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며 "박 장관은 특혜성 결정이 내려진 데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비판했고, 정의당 역시 "상상하지 못할 촛불의 배반이 일어났다"며 박 장관 경질을 요구했다.
박 장관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여권 일각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이들은 "박범계씨 그만 물러나시죠" "박 장관이 노후를 삼성에서 보내려고 한다" "조국·추미애 전 장관 보기 부끄럽지 않는가" "당신은 친일파 매국노와 다름없다"며 박 장관을 맹비난했다.
반면 야권과 재계는 삼성전자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해제가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특경법상 5억원 이상의 횡령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취업이 제한돼 있다. 다만 이 부회장 측이 취업 승인을 신청하면 법무부 산하 특정경제사범 관리위원회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 권한만으로도 취업제한 해제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박 장관이 실제로 취업제한 해제까지 나설 가능성은 작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법무법인 민주의 서정욱 변호사는 "박 장관은 이 부회장 가석방 조치만으로도 지지층의 호된 질책을 받고 있다"며 "지지세력의 불만이 들끓는 상황에서 취업 승인 결단까지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변호사는 이어 "당초 이 부회장 측에서도 여론의 분위기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하면 취업제한 해제를 신청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만약 법무부에서 불허 결정을 내리기라도 한다면 모양새가 상당히 안 좋아진다는 위험 부담을 간과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가석방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많다"며 "취업제한 해제는 박 장관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 지지층까지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는 박 장관은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를 사실상 용인하는 동시에, 취업제한 해제 요구는 일축하는 전략으로 반발 여론을 최소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법무부는 이 부회장의 출소 후 경영 행보가 취업제한 규정 위반이란 지적에 대해 이 부회장이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취업 제한 위반이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이미 내놨다.
앞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회장은 2019년 집행유예 기간에 대표이사 취임을 승인해주지 않은 법무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당시 법원은 "취업제한은 특정경제 범죄자가 일정 기간 회사법령 등에 따른 영향력·집행력을 행사·향유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고 판시했다.
법무부는 이에 근거해 미등기임원인 이 부회장은 회사 경영에 영향력·집행력을 행사하는 데 제한이 있는 만큼 경영에 참여하더라도 '취업'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박 장관은 그러면서도 취업제한 해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고려한 바 없다"며 잘라 말했다. 취업제한 규정 논란과 관련 실무를 담당하는 주무부서로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는 입장도 밝혔다. 지난 18일에는 "현재의 가석방과 취업제한 상태로도 국민들의 법감정에 부응할 수 있다고 본다"며 취업제한 해제 계획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런 식으로 취업제한 규정을 운영한다면 사실상 조치의 실효성이 사라진다며 고발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취업제한의 취지에 비춰 본다면 미등기 임원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련 회사에 영향력, 집행력, 경영권 등을 행사했는지가 중요한 것"이라며 "시민사회단체들과 논의해 이 부회장을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인환 변호사는 "박 장관은 이 부회장을 가석방한 주요 이유로 경제 상황과 글로벌 경제 환경을 들었었다"며 "어렵게 이 부회장을 가석방 해놓고 경영활동을 막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 오너가 자기 회사에 취직하는 데 허락을 받게 한 법 자체가 모순"이라며 "정부와 박 장관이 진정으로 국가 경제발전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부회장 취업제한을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