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현대차 등 교섭 개시…임금인상·고용안정 '쟁점'
현대차·기아, 5대안 놓고 공동 투쟁키로…夏鬪 예고
이달 초부터 완성차업계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대 노조인 현대차·기아 노조는 기본급을 대폭 인상할 뿐 아니라 신규인력 충원에 정년연장까지 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어 벌써부터 하투(夏鬪) 기류가 감지된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이들 노조가 자칫 파업 수순을 밟게 될 경우 가뜩이나 밀리고 있는 신차 출고가 늦어져 막대한 손실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 10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임금협상(임협)에 돌입했다. 전통적으로 현대차와 일정 기간을 두고 교섭을 진행해 온 기아 노사도 조만간 임단협 요구안 마련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두 노조는 올해 임단협과 관련해 기본급 16만5200원 인상, 호봉제도 개선 및 이중임금제 폐지, 신규인원 충원 및 정년연장, 고용안정, 해고자 원직 복직 및 손배 가압류 철회 등 5대 핵심요구안을 정하고 공동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현대차·기아 노조, 작년 기본급 2배 이상 수준 요구…고용안정 '무리수'
기본급 인상안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공동요구안(기본급 14만2300원 인상) 보다 높은 데다 지난해 현대차 기본급 인상액(월 7만5000원)의 두 배를 넘어선다.
사업보고서 기준 현대차 직원 6만6000명, 기아 3만4600명을 적용하면 연간 1308억원, 686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본급 인상폭도 이견의 여지가 높지만 고용보장을 하면서 신규인력도 충원하고 정년연장까지 해달라는 요구도 사측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올해부터 2026년까지 현대차에서만 정년퇴직하는 인력은 약 1만26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2500여 명이 자연감소한다는 이야기다. 노조는 이 감소분을 신규 충원으로 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정년퇴직자 대상의 '촉탁제(단기 계약직)'를 폐지하고 정년을 현재 만 60세에서 만 61세로 늘리는 방안도 요구하고 있다.
시니어 촉탁제는 정년퇴직자 가운데 희망자를 대상으로 신입사원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단기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현재 1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이 뿐 아니라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 xEV(전기차) 관련 부품공장 투자 등 미래차 산업 공장 국내 신설과 전기차 모듈 라인 기존 공장 유치 등으로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한다고 노조는 요구한다.
이는 결국 현 생산직 규모를 앞으로도 유지할수 있도록 국내 현대차·기아 사업장 투자와 인력 확충을 약속하라는 주장이다.
전기차 패러다임 변화에 역행 지적…파업 시 막대한 생산차질 전망
노조의 이러한 요구는 현재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전동화 사업 방향과 제대로 상충된다.
앞서 현대차는 미국 앨라배마 몽고메리 공장의 전동화 생산라인 구축에 3억달러(37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싼타페 하이브리드와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조지아주에는 전기차 전용 공장 신설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최대 수요처인 유럽, 미국 등을 대상으로 테슬라, 폭스바겐 보다 빠르게 나서야 하는 현대차로서는 국내를 고집하는 노조의 요구대만 움직여서는 치열한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부품 수가 최대 40% 적게 들어가고 인력도 30% 가량 줄어든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생산직을 새로 채용하고 기존 인력 정년을 연장하면 감당해야 할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럼에도 노조가 임금 상승과 고용안정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교섭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이들 노조가 무분규 타결을 깨고 쟁의활동에 나설 경우 가뜩이나 늦어지고 있는 신차 출고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EV6, 스포티지, 쏘렌토 등 주요 차종들은 지금 주문해도 18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과 올해 초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발 와이어링 하네스 부족 등 대외 악재가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마저 겹치면 막대한 생산차질은 불보듯 뻔하다.
이 같은 노조 리스크가 커지면 다른 완성차업계로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르노코리아 노사는 지난 3일 스테판 드블레즈 사장과 박종규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상견례를 진행했다. 노조가 지난해 2년치 임금 동결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기 타결을 예상하기만은 어렵다.
한국GM도 지난해까지 흑자 전환에 실패한 가운데 노조가 금속노조 공동요구안인 기본급 14만2300원 인상안을 놓고 사측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