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윤석열 사단’ 독식 인사에 '검찰공화국' 우려 목소리…선봉에는 역시 ‘한동훈’
검찰총장 인선까지 늦어져 '총장 패싱 논란' 가중…"식물총장 세워 놓고 도장만 찍게 하려는 구상인가"
일평생 옳고 그름만을 따져왔던 율사들…대화와 타협의 예술, 정치의 영역에서 어떻게 주유할 것인가
조선제일검에게 바란다…여의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칼의 노래' 들려주길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심하고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검찰 70여 년사에 이렇게 많은 칼잡이들이 한꺼번에 서초동에서 나와 정부 구석구석을 전광석화처럼 장악한 적이 있었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법복을 입고 있을 때 친한 척하며 말석에서나마 술이라도 한 잔 얻어먹고 차라도 같이 탈 걸 그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이노공 법무부 차관, 이완규 법제처장, 대통령실에도 복두규 인사기획관을 비롯해 이원모·이시원·주진우·윤재순 비서관 등 핵심 업무 곳곳에 ‘윤석열 사단’이 포진돼 있다.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되고,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가 검찰 출신 첫 금융감독원장에 내정된 것을 보고서는 ‘이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검사만이 최고의 공직자라는 드높은 자부심과 결기가 서려있다. 모든 것을 결과로 증명하겠다는 검찰주의자들의 충만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입 닥치고 지켜볼 뿐이다.
검찰공화국 논란은 역시 한동훈 장관이 견인하고 있다. 검찰이 미워서 혹은 겁나서 검찰이 가진 것 몽땅 경찰에게 던져 준 것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그렇게 비난하더니, 제왕적 대통령 안 하겠다며 기세 좋게 민정수석실 폐지해 그 기능을 고스란히 법무부로 옮겨 심었다. 한 장관 산하 공직자 인사검증 조직, 인사정보관리단의 탄생이다. 수사와 경제분야 감독, 법률 유권 해석까지 검찰이 독식한 것으로도 모자라 인사 검증의 칼까지 쥐어준 것이다. 정권 초라서 힘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실세 장관에게 인사권한 날개까지 달아주니 '공룡 법무부' 힐난이 끝이 없다. 관리단 단장으로 비(非)검찰 출신의 늘공(늘 공무원)을 임명하는 등 관리단 독립성 홍보에 정성을 쏟고 있지만 다 구질구질한 얘기들이다. 그러려면 왜 법무부 밑에 두는가. 설상가상으로 첫 검증 대상이 김창룡 경찰청장의 후임이 될 수 있다던데, 또다시 검찰과 경찰이 으르렁거리게 생겼다. 직제개편을 통한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 회복이나 파견심사위·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폐지 등 ‘조국·추미애 흔적 지우기’ 성과마저 묻힐 지경이다.
이 판국에 더욱 의구심을 갖게 되는 대목은 검찰총장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 사표가 수리된 게 지난달 5일이고, 이때만 해도 조직안정화 차원에서 차기 총장 인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이원석 대검 차장이 총장 직무대리체제로 들어간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한결 느긋해진 표정이다. 검수완박 입법 이후 중간간부 인사가 무엇보다 시급한데, 총장 없이 인사를 강행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딴청을 피울 수 없다. 이 ‘총장 패싱 논란’과 관련해 법조계의 한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총장대행이 다 주무르고 최규하 전 대통령 같은 식물총장 하나 세워 도장만 찍게 하려는 구상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2년 임기의 검찰총장은 재임 중에 기껏해야 두 번 정도 인사에 관여하는데, 이 가운데 한 번을 빼앗기고 들어가면 ‘바지 사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22기나 23기 총장 후보자들이 격하게 고사하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것일까. 그래서 무슨 최초의 여성총장이니 외부 인사이니 하는 ‘간보기 기사’가 나오는 것일까. 아직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조차 구성되지 않았다는 지점에 이르면 이런 심증은 더욱 굳어진다. 추천위가 뜨고 나면 총장 패싱 인사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추천위가 거의 외부인사로 이뤄지는 만큼 누구의 입김도 온전하게 구현되기 힘들 것이다.
그냥 이원석 대검 차장을 총장 시키면 될 것인데, 무슨 셈이 이렇게 복잡하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지금 서초동 현장에서는 ‘이원석 검찰총장’ 얘기가 파다하다. 이른바 간첩조작 사건 관련 보복 기소 논란에 휩싸여 있는 이두봉 인천지검장으로는 아무래도 국회와 여론의 반발을 돌파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 다음부터 이 지검장 보다는 윤 대통령에게 한 발 더 다가서 있는 이 차장이 더욱 회자되고 있다. 27기로 기수가 너무 낮고 제주지검장 한 번 한 것 가지고는 좀 약하지 않느냐 등의 우려도 동기인 한 장관이 법무부 장관인 상황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27기 총장을 세운 뒤 그 위로는 싹 다 사표 받고 이후 마음대로 검사장 물갈이 할 수 있다는 전망에 훨씬 더 공감이 간다. 다만, ‘이원석 검찰총장’에 대한 한 장관의 생각이 변수가 될 수 있다. 한 장관은 어떨까. 동기라서 오히려 더 편한가. 아니면 지난 20년 자웅을 겨뤄온 ‘특수통 에이스 대전’의 연장선상에서 속내는 껄끄러운가. 현재 법조 바닥에서 한 장관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이 차장일 수 있다는 분석이 공공연한 상황에서 차기 총장에 대한 한 장관의 의중에 늘 목이 마르다.
혹자는 지난 정권에서 당한 것이 얼마인데, 당연히 이렇게 가야 한다고 박수치고, 혹자는 윤 대통령이 사적 인연의 최측근들만 요직에 버무려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려는 포석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검사들이 이렇게 난리쳐 획기적으로 나아지면 나라를 위해서 좋은 것이고, 이게 아니면 정치검사들 송두리째 뽑아낼 수 있는 계기가 되니 그것대로 또 좋은 것 아니냐는 자위 섞인 푸념도 쏟아진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들로 도배를 했고,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행정분야 법조인들이 정관계에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며 ‘검찰 편중’ 인사 지적을 반박했다. 한마디로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인데, 일평생 옳고 그름만을 따져왔던 율사들이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라는 정치의 영역에서 얼마나 제대로 주유(周遊)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자꾸 정치 상황을 법률 잣대로 다루려고 하는데, 국민 정서가 받아들이지 않는 걸 법률적으로 괜찮다고 해서 우기면 그 정책과 정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조언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한동훈 장관에게는 사족을 달아야겠다. 언론플레이든 뭐든 하루에 한 장관이 불러주는 것만 받아쳐도 넉넉히 지면이 채워지는 나날들이다. 그들만의 내로남불 리그에서 팬덤으로 연거푸 몰락한 거대 야당이 여전히 개딸(개혁의 딸) 자중지란에 휘둘리고 있어 한 장관의 드리블은 더욱 눈부시다. 어느덧 비슷한 또래들이 언론사 데스크를 차지했고, 한결같은 응원은 아니더라도 제법 오랜 기간 그에게 허니문을 베풀 성 싶다. 다만, 열흘 붉은 꽃은 없다. 언제나 영광은 짧고 화려한 날은 빨리 간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선한 공감에서만 인정된다. 아니면 전직 법무장관들처럼 국민적 지탄과 분노 속에 나라만 두 동강 낼 것이다. 여의도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칼의 노래를 듣고 싶을 뿐이다. 조선제일검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