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물류비 부담 이어 전기료마저 상승…산업계 부담 1조4천억 추산
자동차·배터리·타이어·철가 등 하반기 제품값 도미노 상승 수순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3분기 전기요금마저 오르면서 산업계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자동차·소재 등 대부분의 제조업종은 원가 상승분만큼 도미노 제품가 인상을 추진할 계획이다. 높아진 부담으로 인한 수익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각 주요 기업들은 차량, 타이어 등 주요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하거나 추진중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밀어올린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기요금 인상 영향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어서다.
앞서 한국전력은 7월부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연간 최대 수준인 kWh(키로와트아워)당 5원 인상하기로 했다. 작년 국내 산업용 전력 판매량이 29만1333GWh(기가와트아워)였음을 감안하면 산업계는 이번 인상으로 1조4500억원 규모의 전기료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업종 중 하나인 철강 산업은 전기료 인상분 만큼 고정비 부담이 적잖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한다. 매년 현대제철은 5000억원대 후반, 동국제강은 2000억원대의 전기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특히 철강사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으로 용광로(고로) 대신 전기로 사용 비중을 높여온터라,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로의 경우 전기요금 비중이 제조원가의 10% 내외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철강 수요가 탄탄하다면 전기요금 인상분만큼 제품값에 반영하는 것이 수월하겠지만, 반대로 소비가 둔화된다면 제품값 인상도 그만큼 더뎌져 고스란히 철강업계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높아지는 원가 부담에 자동차, 타이어업계도 가격 인상 수순을 밟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7월 1일부터 버스·트럭용 타이어 가격을 5~10% 올린다. 금호타이어 역시 버스·트럭용 타이어값을 3~7% 수준에서 인상키로 했다. 원자재·물류비용 상승 탓이다.
앞서 이수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는 지난 5월 "올해 감당할 물류비만 1조원 이상"이라며 "최대한 이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올해 1월만 하더라도 84달러 내외였던 국제유가는 6월 현재 115달러대로 올라서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타이어용 합성고무와 합성수지에 들어가는 부타디엔은 유가 상승에 올초와 비교해 2배 가량 치솟았다.
고운임 기조에 물류비용 부담도 커지고 있다. 5월 둘째주 미서안항로 운임은 TEU(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크기)당 7378달러로 지난해 평균 5317 달러와 비교해 39% 상승했다. 미동안항로 역시 FEU(4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크기)당 9804 달러로 작년 평균 보다 16% 오르며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 투입되는 소재 가격도 강세다.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리튬 가격은 t당 7만1170달러로 1년 전과 비교해 436.5% 급등했고, 니켈도 26.9% 오른 t당 2만3119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코발트, 망간 가격도 오름세다.
니켈, 코발트, 망간 등으로 구성된 양극재의 경우 배터리 원가의 40%나 차지하는 만큼 원소재 가격 상승→제품값 인상 수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들은 전기차를 중심으로 가격 인상을 속속 단행중이다.
제너럴모터스(GM)은 지난주 원가 및 물류비 인상을 이유로 전기픽업트럭 GMC 허머(Hummer) 가격을 6250 달러(802만원) 인상했다. 테슬라는 모델Y 퍼포먼스 버전 가격을 올해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총 9% 올렸다. 이에 따라 미국 전기차 5월 평균 가격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22% 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저렴한 자동차가 희귀해진다'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경제제재에 따른 국제 유가 상승, 러시아 육상 운송 제한에 따른 물류비용 증가 등이 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 전반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완성차업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현대차의 올해 1분기 승용·RV (레저용 차량)국내 평균 가격은 4609만원으로 전년 동기 4227만원과 비교해 9.0% 올랐다. 기아의 1분기 국내 판매 가격은 3791만원으로 전년 동기 3389만원 보다 12.0% 상승했다. 1년 새 차량가액이 평균 10% 가량 오른 것이다.
차량용 부품 수급난, 배터리 가격 인상 등 제조 비용 증가로 하반기에도 이 같은 카플레이션(자동차와 인플레이션을 합친 용어)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완성차업계와 철강사들이 올 상반기 차강판 가격을 t당 15만원 인상키로 하면서 차량값 인상은 예고돼왔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그랜저·아반떼 연식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아이오닉6 등 하반기 출시를 앞둔 신차 가격도 이 같은 원재료 상승분이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