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연임 결정하는 20차 당대회 기간
10개 통계 발표 무더기 연기…사실상 처음
연기 이유·향후 일정 밝히지 않아 이례적
"‘나쁜 지표’면 찬물 끼얹을까봐 두려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 동안 예정돼 있던 경제통계 발표가 줄줄이 무기 연기됐다. 국가통계국 일정표 기준 10개가 한꺼번에 연기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20차 당대회 개막 하루 뒤인 지난 17일 오후 4시 홈페이지를 통해 주요 경제통계 발표 일정표에서 10개의 지표에 ‘연기’(延期)라는 표시를 붙여 발표가 미뤄졌다고 공지했다, 이에 따라 18일로 예정됐던 ▲ 3분기 경제성장률 ▲ 9월 산업생산 ▲ 9월 소매판매 ▲ 9월 도시지역 고정자산투자 등의 수치가 공개되지 않았다. 국가통계국은 연기 사유에 대해 어떤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당초 18일로 계획이 잡혔던 70개 주요도시의 주택판매 9월 지표도 역시 발표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매달 내놓는 국민경제상황 브리핑도 미뤄졌다. 해관총서(관세청)는 수출입통계 발표를 14일에서 17일로 미룬 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통계국은 2007년 1월부터 16차례 주요통계정보 발표일정표를 홈페이지에 올려놨으나 ‘연기’라고 적시한 적은 없다. 물론 통계발표가 연기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9년 8월 10일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를 하루 뒤 국민경제상황 브리핑과 함께 발표했다. 2015년 9월의 경우 공휴일 연휴라는 점을 감안해 9일 발표할 CPI·PPI 통계를 10일 공개한다고 보름전에 공지한 바 있다. 2007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발표는 10월 24일에서 26일로 이틀 미뤘다. 다만 과거에는 연기 사유와 향후 재조정 지점을 공지했다는 점이 올해와 다르다.
주요 경제지표 발표를 무더기 연기한 것은 20차 당대회와 관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예상보다 못한 3분기 경제지표를 내놓으면 최고 지도자의 ‘존엄’에 흠집을 낸다는 것이다. 빅터 쉬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국무원 지도자들이 경제지표가 당 대회의 ‘승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까 봐 두려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중국 경제는 올들어 둔화세 속에 주요 도시의 봉쇄가 이어지고 부동산 시장의 침체까지 겹쳐 정부의 5.5% 성장 목표치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3.2%, 세계은행(WB)은 2.8%로 제시해 30여년 만에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 평균(5.3%)보다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황이 이런 만큼 3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나빴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19 제로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도 코로나가 산발적으로 확산하며 도시봉쇄와 이동통제가 계속돼 내수가 타격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 등에 따른 수출 불안, 부동산 경기침체 등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다.
중국 경제위기의 징후는 6대 국유은행이 외환 선물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현물시장에서 파는 방식으로 환율방어에 나섰다는 점이 방증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국유은행을 동원한 것은 3조 달러(약 4318조원) 선이 위태로워진 외환보유액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중국 3분기 성장률이 3.4%로 예상했다. 후베이(湖北)성을 봉쇄(1월23일~4월7일)한 2020년 1분기(-6,9%)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던 올 2분기(0.4%)보다는 반등한 수치지만 8월 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치인 4.8%에는 한참 못 미친다.
데이터 조작 논란과 연관시키는 해석도 있다. 중국 통계는 그동안 신뢰를 주지 못했다. 한때 중국 실업률은 10년 내내 4%를 벗어난 적이 없었고 금융위기 고비에도 이를 고수해 비웃음을 샀다. 특히 지방정부의 GDP 합계는 중앙정부가 낸 것보다 많아 ‘뻥튀기’ 논란을 일으켰다. 다니엘 모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도 “(국가통계의 발표 연기는) 경제의 중요한 지표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마사지'하거나 이런 지표가 정치에 끌려다닌다는 회의론을 되살린다”며 “이번 조치는 이미 흔들리고 있는 중국 경제가 최악의 국면으로 돌아섰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이 중국 내 투자사에 이번 당대회 기간 전후로 중국경제 관련 코멘트를 삼가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규제당국은 최근 자국 투자기관 뿐 아니라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의 중국 지사에 ‘당대회를 앞두고 경제전망을 포함한 민감한 중국 정치관련 코멘트를 삼가달라’고 요청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이미 발표한 중국경제 보고서가 철회되는 사례도 나왔다. 중국 부동산 중개 플랫폼 베이커(貝殼)연구원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부동산 전망보고서에 중국 경제에 부정적인 분석을 담았다가 며칠 뒤 보고서를 삭제했다. 이 보고서에는 “중국 28개 도시 부동산의 평균 공실률이 12.1%”라며 “미국, 영국보다 높은 편”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베이커연구원는 “표준화되지 않은 표본을 사용했다”고 갑작스레 철회하며 사과했다.
중국 트럭 물류정보를 제공하던 한 스타트업은 지난해 12월 관련 발표를 중단하고 현재 외국인 투자자가 아닌 중국 정부와 자국민에게만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신력 있는 경제지표를 내놔야할 중국 당국이 별다른 설명 없이 경제지표 발표를 취소했을 뿐 아니라 부정적인 경제전망조차 못하도록 막은 셈이다. WSJ은 중국 경제 성장둔화 우려가 고조되면서 중국 경제관련 수치를 확보하거나 비판적 견해를 듣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서방에서는 중국의 경제통계 발표 연기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국가경제와 관련한 주요 지표는 1년 단위로 발표 일정이 미리 정해진다. 이 때문에 이유 없이 발표를 미루는 것은 국가의 신뢰도에는 치명적이다. NYT는 "(경제 규모가) 큰 나라들은 금융신뢰를 해칠 것을 우려해 단 하나의 경제통계 발표도 좀처럼 미루지 않는다"며 "하물며 중국이 (발표를) 미룬 광범위한 데이터는 말할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