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12월 4일까지 공연
조광희 동명의 소설 원작
SF9, 11월 18일 콘서트 시작
SF9의 유태양에게 '인간의 법정'은 도전 그 자체였다. 의식 유무에 따라 다른 안드로이드의 연기는 1인 2역이나 다름 없었고, 소극장 공연으로 관객들의 코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처음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 순간, 호기심과 걱정이 같은 비율로 공존했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기다려볼까도 싶었지만, 도전하고 싶다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인간의 법정'하면서 배움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극을 할 때마다 보람과 여유,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유태양은 아오가 되어갔다.
ⓒ㈜대로 컴퍼니
뮤지컬 '인간의 법정'은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법정에 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SF 법정 드라마다. 조광희 작가의 동명 소설 '인간의 법정'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22세기 인공 지능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미래의 법정. 변호사 호윤표는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 아오의 폐기 처분 취소 변론을 펼친다. 아오는 인간이 가진 의식이 주입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변호사 호윤표는 의식이 있는 안드로이드를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폐기처리 되기 전, 인간의 권리인 형사 재판을 먼저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의식이 있는 안드로이드는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그저 쓰임을 다한 로봇일까. 이 주장들이 극 안에서 팽팽하게 펼쳐진다.
유태양이 연기한 아오는 주인 한시로를 위해 태어난 안드로이드다. 아오의 뜻은 일본어로 파랑이란 의미다. 파랑은 신뢰, 믿음, 청량함을 가리키지만 우울, 비극, 슬픔을 뜻하기도 한다. 아오는 안드로이드지만 파랑이 가지고 있는 대비된 감정을 모두 느낀다.
그에게 안드로이드 역할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드로이드란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지만, 많은 미디어에서 로봇들의 모습이 그려졌기에 자신 만의 아오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과제였다.
"책을 읽고 디테일을 살려보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으로 대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 심지어 안드로이드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죠. 책처럼 방대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두 시간 내에 최대한 담아내는 게 목적이라, 큰 틀을 만들어 가져가려고 했어요. 원작에서는 의식을 가지기 전에도 인간과 흡사하다고 나와있었지만 공연할 때는 한 번에 차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했죠. 제 움직임에 최대한 집중 하려고 했어요. 고개 각도, 걸음걸이, 손짓 등이 어느 정도 로봇의 이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요. 사실 저는 의식이 없는 아오가 참 편했어요. 제 움직임이나 말투가 평소에 아오 같은 경향이 있거든요."
'인간의 법정' 첫 장면은 아오가 시로를 살해하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공기 중으로 강렬하게 퍼져나간다. 사실 이 장면은 유태양의 시안으로 만들어졌다.
"아오와 한시로의 연기를 동시에 한 것이었어요.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운 아오와 목이 졸리는 한시로를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첫 장면이 천천히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까지 한 번에 몰입해 주셨으면 했거든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극에 빠져들기 수월했고요. 그래서 원래 그 장면이 없었는데 직전에 삽입을 했어요. 이후에는 바로 변호사와 대화하는 장면이 이어져요."
아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요인물이다. 관객들에게 '인간의 법정'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해야만 하는 스피커이자 메시지인 셈이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공연마다 개연성을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감정의 변주, 완급 조절을 시도했다.
"말 한마디에 감정을 다르게 던졌을 때 관객들도 다 다르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어떤 날은 대사에 슬픔을 가미했더니 다른 날보다 슬프다고 하고, 덤덤하게 가져갔을 땐 차가운 면모에서 슬픔을 느끼는 분들이 있었어요. 초반에는 대사에만 집중했다면 요즘은 정말 아오가 된듯한 느낌에서 연기를 하려 해요. 이런 작업들이 즐거워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대로 컴퍼니
'인간의 법정' 속 유태양의 아오 연기는 붓과 먹의 농담으로 구분 지어지는 한 장의 수묵화 같다. 유태양이 짙은 농도의 감정을 눌러 담을 때마다 고뇌하는 아오의 명암도 잿빛과 푸름을 오간다. 유태양은 스스로 자신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할까.
"100%로 만족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상대방도 다르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달라요. 확실한 건 다르기 때문에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재미를 느낀다는 거예요. 이건 저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알타보이즈',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이어 '인간의 법정'까지 뮤지컬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중이다. 특히 나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 그 감정이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아오가 눈물을 흘릴 때 슬픔을 공감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에서 슬펐다고 한 관객분의 글을 봤어요. 슬픔의 포인트를 여기서도 느낄 수 있구나 싶어서 연기에 반영하기도 했고요. 많이 도움이 되는 피드백이었어요."
극이 흐를 수록 아오는 폐기 처분되지 않기 위해 감정의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정말 아오는 정말 시스템의 혼란으로 시로를 살해한 걸까. 아니면 시로가 되고 싶었던 걸까. 유태양의 해석은 이랬다.
"무조건 억울하고 난 몰랐다. 잘못이 없다란 생각은 아니에요. 그러기엔 시스템 한 구석에서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억울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는, 최대한 중립적인 아오를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마지막 아오의 "여기는 결국 인간의 법정이었군요" 대사는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아오와 변호사 호윤표가 부르짖은 '안드로이드의 권리'는 결국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었으며, 법정 또한 결국 인간의 절차였던 것이다. 이는 인간중심주의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의 존엄을 역설한다.
"전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연기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엔딩 장면을 다른 감정으로 접근하기도 해요. 하나의 감정으로 풀어낼 수가 없거든요. 아오 존재 자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감정이 각자의 정답인 거죠. 개인적으로 극이 끝나고부터 시작인 작품인 것 같아요.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라는 답을 주기보단, '어떻게 느꼈어?'라고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학로아트원씨어터 2관은 소규모 공연장이다. 무대 위의 배우들의 관객들의 눈빛까지 볼 수 있다. 즉, 관객들 역시 배우들의 숨소리, 눈동자가 달라지는 것까지 고스란히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유태양은 더욱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적나라하게 저를 볼 수 있잖아요. 퍼포먼스는 자신 있는 분야다 보니 떨리지 않아요. 잘하는 부분을 어필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뮤지컬은 그런 부분이 배제되고 사람들 눈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 정말 열심히 연습하게 되더라고요. 거리가 정말 가깝다 보니 관객들이 눈물 흘리는 게 다 보였어요. 연습을 해야 스스로 만족하는 타입이고,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 연습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뮤지컬도 다르지 않고요."
아오는 유태양, 켄, 류찬열, 하람 네 배우가 쿼드 캐스팅으로 공연이 진행된다. 유태양 만의 아오는 어떤 차별점이 있을까.
"저는 폐기라는 단어가 나오면 머리를 감싸면서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치는 등의 행동을 연기에 대입했어요. 사실 '폐기란 단어를 들으면 고통스러워한다' 정도로만 쓰여있지만 저는 절규를 했어요. 그래야 저도 몰입이 되고 보는 분들도 아오의 혼란스러움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유태양은 '인간의 법정'을 통해 소화할 수 있는 노래의 스펙트럼을 확인시켜줬다. SF9으로 활동하면서 퍼포먼스 위주의 모습과 부르는 음역대가 대개 고정돼 있어 몰랐던 그의 음색과 보컬 실력이 드러난 것이다. 그 역시 '인간의 법정' 무대에 오르기 위해 보냈던 날들로 노래 실력이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춤 잘 추는 건 알았는데 노래를 이렇게 하는지 몰랐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노래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힘들다거나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어지고 있어 즐거워요. 노래 난이도가 높아졌고 캐릭터 비중이 높다 보니 두 시간 동안 컨디션 유지하면서 공연하는 노하우도 터득하게 됐어요. 사실 그룹을 활동을 하면 완창을 할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한 뼘 자란 것 같아요."
ⓒFNC엔터테인먼트
SF9은 연기, 뮤지컬 등 개인 활동이 활발한 그룹이다. 유태양은 9명의 멤버 중 가장 늦게 개인 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늦게 시작한 이유는 SF9이라는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응원하지만 저는 조금 더 팀의 노래를 연습하고 준비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뭔가 다른 것에 힘을 써버리면 안 될 것 같았고 스스로 구심점이 있어야 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섣부른 선택이 아닐까'란 고민도 있었고요. 그래서 다른 멤버들에게 많이 물어봤는데 '도전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런 말의 응원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먼저 뮤지컬을 시작한 SF9의 재윤을 비롯해 다른 멤버들에게 조언을 얻기도 했다. 자신을 오래 지켜본 멤버들의 한 마디는, 유태양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가 됐다.
"'서편제'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재윤이 형에게 '형은 이런 건 어땠어?', '몰입이 가능했어?' 이런 질문들을 했어요. 대화를 통해 알게 되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도전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니, 해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멤버들의 말이 응원이 됐어요."
뮤지컬 배우로서 더 많은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유태양의 뿌리는 SF9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정체성의 혼란은 항상 있어요. 그래서 가수와 뮤지컬 영역에서 서로 배울 점을 역이용해 보기로 했어요. 가수로 내가 배웠던 걸 뮤지컬에 적용해 보기도 하고 뮤지컬에서 배운 감각, 센스를 무대 위에 녹이려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고요. 뮤지컬을 하면서 노래에 대한 걸 더 많이 배우게 됐거든요. 원만하게 곡 소화를 잘 하게 되더라고요. 이루고 싶은 목표,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SF9가 제 정체성이란 점을 잊지 않아요. 변하지도 않고요."
유태양은 현재 자신 앞에 주어진 일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인간의 법정'은 작품 평가를 떠나서 함께 무대를 꾸려나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저에게 또 다른 기회라고도 느껴지고요. 도전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줄었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아 의미가 남달라요. 다음에는 감정과 스토리가 극에 달하는 작품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내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한계를 알고 싶어요. '데스노트' 엘처럼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작품들도 해보고 싶네요."
그는 11월 18일부터 ‘2022 SF9 라이브 판타지 #4 딜라이트 투어’(DELIGHT TOUR) 콘서트 투어 개최를 앞두고 있다. SF9의 유태양, 뮤지컬 배우 유태양 두 가지 역할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다음 도약을 위한 균형잡힌 그의 피루엣(발레의 턴 동작)은 흔들림이 없다.
"영빈, 인성이 형이 군 입대를 하고 멤버들도 각자 활동이 늘어나다보니 이제 저 스스로에 대한 색깔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안에서 유태양이란 존재는 어떤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부분을 확장시켜보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임한 작품이 내면에 깊이 쌓일 수 있도록 임하려고 해요. 한계를 뛰어넘는 유태양.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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