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탈락 환호 이란 20대 男, 보안군 총 맞아 사망

이란휴먼라이츠 "자동차경적 울리며 기뻐하다 표적돼"

이란 곳곳서 미국이 자국 대표팀 꺾자 축포·환호

반정부 시위 지지자들 자국 응원 거부

이란, 미국전 앞두고 반정부 시위 혐의 축구선수 2명 석방

29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앗수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카타르 월드컵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이란과 미국이 경기를 했다. ⓒ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숙적' 미국에 패한 것을 환호하던 이란의 20대 남성이 보안군(군경)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BBC, 가디언 등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카스피 해에 접한 이란 북부 길란주 반다르 안잘리시에서 27세 남성 메흐란 사막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패배에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기뻐하다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와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CHRI) 등은 사막이 이란 패배를 기념하던 도중 보안군의 직접적인 표적이 돼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숨진 사막이 이번 월드컵 미국전에서 뛴 이란 미드필더 사이드 에자톨라히의 지인이라고 전했다. 에자톨라히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막과 어린 시절 유소년축구팀에서 함께 뛰었다고 소개하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다.

현재 반정부 시위 지지자들은 자국팀 월드컵 응원을 거부했다. 현 정권이 히잡 시위 때문에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축구 대표팀의 승리가 정권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분위기가 퍼져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히잡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 대표팀은 전날 오후 미국에 0대 1로 패하며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에 이란 전역에서 경기 종료된 당일 자정부터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리는 등 패배를 환호하는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했다.

경기가 있던 카타르 도하 알투마마 스타디움 인근에서도 시위 확산을 방지하려는 수단으로 전날 이란 보안요원이 경기장 안팎에 추가 배치돼 시위대 감시·감독에 나섰다.

가디언에 따르면 후반전 초반 한 무리 축구 팬들이 '마흐사 아미니' 이름이 적힌 종이를 잠시 들어 올렸다가 보안 요원 제지를 받았다. 요원은 종이를 회수했지만 그들을 관중석에서 퇴출하진 않았다. 로이터통신도 경기장 밖에서 보안요원들과 시위대 간 대치상황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보안요원 3명이 반정부 시위 슬로건 '여성, 생명, 자유'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을 땅바닥에 눕혀 제압했다.

이란의 축구선 사이드 에자톨라히가 30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인 메흐란 사막의 죽음을 애도했다. ⓒ인스타그램

한편 이란 정부는 앞서 지난 29일 미국과의 경기가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전직 국가대표팀 축구 선수 2명을 석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프로축구 풀라드 후제스탄 소속 선수 부리아 가푸리는 이란 대표팀을 모욕하고 반체제 선전을 한 혐의로 지난 24일 체포됐다. 전직 국가대표 골키퍼 파비즈 보루만드는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혐의로 약 2주 전 붙잡혔다.

가디언은 두 사람은 모두 보석으로 석방됐는데, 이는 국내외적으로 확산된 분노를 달래기 위한 이란 정부의 보기 드문 행동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