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미래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양자(量子) 과학기술'에 완전히 꽂혔다. '양자 기술'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이은 미래 전략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6박 8일간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모교인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양자 분야 석학들과 대화의 시간(19일·현지 시각)을 가진 데 이어 순방 후 첫 공식 일정(24일)으로 양자·AI 분야 젊은 과학자들과 오찬을 함께 할 정도로 '양자 기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스위스 순방 일정을 하루 늘려 진행된 양자 석학들과의 간담회에서 "올해를 한국의 양자 과학기술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 미래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양자과학에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과학기술 영(young) 리더와의 대화'의 시간에선 "과학기술은 안보,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출발점"이라며 인재 양성과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양자(quantum)가 갖는 물리적 특징인 중첩·얽힘·불확정성 등을 활용하는 양자 기술은 제조업·바이오·AI·국방·통신·보안·교통망·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심화된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필수 핵심 기술이다. 가령, 양자 컴퓨터는 기존 슈퍼 컴퓨터로 해독하는 데 100만 년 이상 걸리는 암호를 단 몇 초 만에 풀어낼 수 있다고 한다. 구글이 2019년 공개한 양자 컴퓨터 '시커모어'는 슈퍼 컴퓨터가 1만 년 동안 풀어야 할 연산을 단 200초 만에 풀어냈다.
한국의 양자 기술 수준은 전문가와 연구 및 투자 규모 측면에서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 선도국과의 격차가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양자과학기술포럼 의장을 맡고 있는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지난해 7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연 '한국 양자 기술 현황과 미래' 온라인 포럼에서 "각국에서 양자 혁명이 진행 중인데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 시기를 5년 정도 놓쳤다"며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은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양자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는데, 이미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양자 기술을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선정하고, 올해 984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자 기술 4대 강국' 도약으로까지의 갈 길은 멀다. 미국 정부는 2018년 '양자법'을 제정하고, 2019년부터 5년간 12억 달러(한화 약 1조4000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백악관 직속 '국가양자조정실(NQCO)'도 설치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양자 통신 위성 '묵자(墨子)호'를 이용한 '양자암호통신실험'에 성공한 중국은 최근 5년간 양자 기술에 약 1000억 위원(한화 약 17조원)을 쏟아부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UAE 두바이 미래 박물관에서 열린 '미래 비전 두바이 포럼'에 참석해 아인슈타인의 '낡은 지도로는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지도가 필요한 때다. 과학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늦은 만큼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양자 기술 확보에 힘을 쏟으면 된다. '양자 기술 전도사'를 자처한 윤 대통령의 '윤석열표 새 지도'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