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육도 아닌데 ‘도대체 언제 뜰까’ ‘그때까지 잘 버텨주면 좋겠는데’, 마음으로 응원하는 배우가 있다. 기원의 간절함이 큰 배우 가운데 유태오가 있다.
잘되길 바라온 이유는 아주 선명하다. 우선 연기를 잘한다, 인성이 좋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지닌 재능과 노력에 비해 현주소가 (필자의) 성애 차지 않는다, 억울하고 아쉬울 법도 한데 묵묵히 제 길을 걷고 있다.
배우 유태오는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기까지 멀고 먼 길을 돌았다. 연기보다 예능으로 먼저 기회가 왔지만 제대로 꽃 피지 못했다. 영국, 미국에서 공부한 뒤에도 우리나라보다는 동남아, 러시아에서 먼저 배우로서 주목받았다. 러시아에서 출연한 영화 ‘레토’는 칸국제영화제 본선까지 진출했고, 현지에서 호평받았다. 당연히 본인이 문을 두드려 이룬 성과다.
국내에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았고 매번 “인상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배우 유태오를 향한 대중의 마음에 활활 불을 지피진 못했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어민 교사 매켄지와 ‘닥터브레인’의 윤 비서, 박찬욱 감독의 명작 ‘헤어질 결심’에서의 이 주임을 거치며 ‘내 마음에 저장’하는 팬들이 늘어갔다.
그러다 드디어 터졌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연애대전’을 통해 대한민국 여심을 흔들었다. ‘어머, 이렇게 잘생긴 배우였나’ ‘마흔이 넘어서야 알아봐서 미안해’, 많은 시청자가 설렘을 고백하며 팬이 됐다.
넘어지지 않고, 솟아오르려다 고꾸라지지 않고 서핑을 이어가려면 파도 위에 올라타야 한다. 그럼 아무도 못 말린다. ‘대세’가 되는 것이다. 2023년 2월, 국내 데뷔를 기준으로만 봐도 영화 ‘여배우들’(2009) 이후 14년 만에 드디어 유태오가 파도 위에 섰다. 국내에서의 드라마 인기로 끝내지 않고 해외에서 영화로 호조를 이어가고 있다.
유태오가 주연한 미국 영화 ‘전생’(Past Lives, 감독 셀린 송, 제작 A24)이 지난 1월 열린 제39회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이어 지난 16일 개막한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시사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전생’은 어린 시절부터 인연이 깊은 노라와 해성의 이야기다. 노라가 열 살에 캐나다로 이민 가며 헤어진 후 20년이 지나 성인이 된 두 사람이 미국 뉴욕에서 운명적으로 나눈 일주일간의 재회를 담고 있다. 해성을 연기한 배우 유태오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 주연으로서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았다. 유태오를 알아본 영화팬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매체들이 그의 사진 촬영을 원했다는 후문이다.
현지 시각으로 19일,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 대극장에서 진행된 ‘전생’의 시사가 끝났을 때도 열띤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고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는 전했다. 시사 후 진행된 제작사 A24(영화 ‘미나리’ 제작사이기도 하다)의 파티에서는 영화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영화평론가 윌리엄 스토러(William Stottor)는 “새로운 시각의 계층화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5점을 주고 싶다. 셀린 송 감독은 전생과 인연을 통해 복잡한 인간의 속내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관계와 필연, 이민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3부작으로 나눠 결국은 인간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이며 감동을 안겼다”고 극찬했다.
여러 평론가의 SNS에는“베를린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최고(A+)이다.” “올해 최고의 영화라 말하고 싶다” “셀린 송 감독의 연출력과 각본의 훌륭함에 놀랐다”는 호평이 즐비하다.
베를린에서의 큰 박수는 배우 유태오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자신이 태어난 독일에서, 배우로 출사표를 던진 지 20년 만에 ‘금의환향’이다. 2023년 2월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연애대전’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청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시점, 불과 열흘도 되기 전에 칸·베니스영화제와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베를린에서 세계적 인기를 실감하게 됐으니 말이다.
유태오는 소속사를 통해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우선 선댄스 영화제 초청만으로 너무 기뻤는데 생각지도 못한 베를린 영화제에 ‘전생’이 경쟁작에 올랐고 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팬들이 우리 영화를 사랑해 주셔서 기쁘고 영광스러운 마음입니다. 제가 한국 배우지만 독일 태생이고 부모님이 독일에 살고 계시는데, 베를린 영화제 경쟁작에 초청되어 프리미어 시사에 부모님이 오셨고 함께 영화를 봤는데 그 기분은 말로 표현 없을 만큼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틀 동안 국제적 영화제 안에서 K-콘텐츠와 한국 배우들이 뜨겁게 관심받고 있다고 느꼈고, 독일뿐 아니라 정말 여러 나라의 분들이 레드카펫에 찾아와 주시고 제 이름을 부르면서 사인 요청을 하고 응원한다고 표현해 주셔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2일 동안, 짧은 시간이지만 유럽의 영화팬 분들께 따뜻한 사랑을 받아서 너무 감사했고 빨리 떠나게 되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영화 ‘전생’이 개봉 전까지 많은 해외 팬들께 인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배우 유태오가 주연한 영화 ‘전생’(Past lives)은 올해 상반기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연애대전’을 향한 열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지기를 희망한다. 이미 스스로 공들인 날개는 유태오의 어깻죽지에 달려 있었다. 이제 활짝 펴고 비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