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서비스 플랫폼화 목적
고객은 발급·관리 수고 늘어
은행들이 자체 개발한 인증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는 가운데 우리은행도 이달 민간인증서를 출시하며 가세한다. 고객 정보를 한 데 모아 자사 플랫폼 안에서 금융그룹 계열사들의 완결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만 은행 간 인증서 상호 이용이 불가한 탓에 금융소비자 입장에선 개별 은행의 인증서를 일일이 발급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또 많은 인증서를 발급하게 되면서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달 안에 자체 개발한 민간인증서 '우리원(WON)인증'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로써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자체 인증서를 내놓게 됐다.
앞서 공인인증서가 독점적 지위와 액티브X 설치 등의 불편함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2020년 말 폐지됐다. 이후 금융결제원과 22개 은행들은 대안적 성격으로 '금융인증서'를 만들었다. 금융인증서는 불필요한 프로그램 설치 없이 금결원의 안전한 클라우드에 보관돼 PC나 모바일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금융인증서를 발급받으면, 범금융권에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은행들은 자체 개발한 민간인증서를 앞다퉈 출시했다. 현재 인증서 시장에서는 국민은행이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9년 은행권 최초로 'KB모바일인증서'를 출시했다. 국민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인증서 제휴 기관은 그룹 계열사 6곳을 포함해 총 317개다. 공공기관 109개, 민간기관 191개, 마이데이터 통합인증 연동기관 11개 등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어 신한은행도 지난 2021년 '신한 사인(Sign)'을 출시해 서비스하고 있으며, 같은 해 9월 말 기준 제휴 기관은 총 66개다. 이 밖에도 하나은행이 '하나 원사인(OneSign)'을 출시했고, 제휴 기관은 24개다. 농협은행도 'NH모바일인증서'를 선보였으며, 홈택스·정부24 등 주요 공공기관뿐 아니라 농협몰·농협카드 등 범농협 플랫폼과 연계해 사용되고 있다.
범용성이 확보된 공동인증서(구 공인인증서·금융인증서)가 있음에도 은행들이 자체 인증서를 내놓는 배경엔 금융소비자 데이터가 자리하고 있다. 고객 정보를 기반으로 금융그룹 플랫폼 안에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같은 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상호 간에 연계될 수 있는 인증서(공동인증서)가 있지만, 은행들이 플랫폼을 지향하면서 자체 인증서를 내놓고 있다"며 "은행 자체 인증서를 외부 기관에서 사용하면, 고객이 무엇을 하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활을 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객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첫 번째 관문이 인증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인증을 거쳐야 고객 정보를 식별할 수 있고, 해당 정보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어, 은행들이 쉽게 놓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자체 개발한 민간인증서가 다른 은행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소비자들의 불편을 가중하는 문제다. 은행들은 소비자들이 자사 상품에 가입하거나, 우대금리 적용 혜택을 앞세워 인증서 발급을 유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개별 은행마다 인증서를 발급받게 되면서 인증서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컨대 신한은행은 청년희망적금 상품 출시 당시 '신한 사인(Sign)' 인증서를 발급받으면 연 0.20%의 이자율을 우대한다고 제시했다. 청년희망적금은 총급여 3600만원(종합소득 2600만원) 이하인 만 19~34세 청년에게 최대 연 10%에 달하는 고금리 이자를 지원하는 정책금융상품이다. 국민은행도 지난 2021년 'KB 그린 웨이브(Green Wave) 1.5℃ 정기예금'을 출시하면서 KB모바일인증서를 최초 발급한 경우 0.15%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제공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권 또다른 관계자는 "KB가 출시한 인증서는 KB그룹에서만 쓰이고, 신한이 내놓은 인증서는 신한그룹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은 신한에서 발급받은 인증서를 KB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궁금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라며 "이 같은 정보를 활용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은행들이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할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