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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눈물①] '건축왕' 구속 기소됐지만, 끝나지 않는 고통


입력 2023.03.16 17:12 수정 2023.03.17 09:46        주영민 기자 (jjujulu@dailian.co.kr)

피해자 고통은 현재 진행형..."주범과 공범들도 고통 받아야"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피해자 치유에 국가가 나서야 해"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경매 중지 등 살길 마련해줘야"

일명 '건축왕'으로 불리는 '인천 미추홀구 깡통전세' 사기 사건의 주범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가 문을 열었고, 정부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을 연이어 내놨지만, 피해자들은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고 하소연한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집계한 피해 예상 주택은 2700여세대. 3월 현재 경매에 넘어간 주택만 996세대로 파악됐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낸 전세보증금 피해금액은 125억원이지만, 당초 피해자들이 집계한 피해 예상금액은 3천543억여원에 달한다. 지난 2월 말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 7000만원을 돌려 받지 못한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하면서 피해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도 가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추홀구 깡통전제 피해자의 현재 상황과 인천시와 정부 지원의 문제점과 한계, 전문가 조언을 통한 대책 등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인천 미추홀구 깡통전세 사기 피해자 추모제 모습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제공

인천 '미추홀구 깡통전세' 사기 사건의 주범 일명 '건축왕' A(61)씨가 지난 15일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사기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A씨가 실소유주인 인천 주안동 H빌라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피해자 조현기(45·여)씨는 "주범만 구속기소된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돈을 못 받아도 괜찮지만,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만큼 저들도(주범과 공범들) 고통을 받았으면 싶은데 너무 당당해서 화가난다"고 했다.


이어 "(구속되지 않은 공범인) 바지사장에게 '내가 이 집에서 목을 매면 속이 후련하겠느냐'는 문자를 하고 싶을 정도"라며 "딸린 식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맘이 들다가도 저런 사기꾼 일당 때문에 그런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마음이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 피해자 고통은 현재 진행형..."피해자들끼리 위로하는데 국가는 어디에?"


조씨가 사는 H빌라의 보증금은 6500만원. 최우선 변제에 해당하지만, 실제 건질 수 있는 금액은 20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해당 빌라가 근린생활시설이라 제대로 변제 받기 어려워서다.


법원의 감정가가 1억4000여만원인데 근저당이 1억4700만원에 달한다는 것도, 이 빌라가 근린생활시설이란 것도, 오는 20일 첫 법원 경매기일이 잡히고서야 알게 됐다.


당초 조씨는 자신이 전세사기에 연루됐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주범, 바지사장 등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지내면서도 그들의 말을 전부 믿진 않으며 꿋꿋하게 버텨왔다.


하지만, 막상 경매 날짜가 잡히고 나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이 지속됐다.


그는 "주범 A씨가 구속되기 전날까지 통화해 보상이 잘 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또 다른 공범 B씨도 구속 전 마지막까지 내가 사는 집을 우선순위로 변제해 주겠다고 말 했지만, 믿지도 않았고 단 하나도 이뤄진 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범 등에 대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사람이라면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경매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하루도 수차례 미칠듯한 고통이 온다. 일을 하다가도 이 생각을 하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조씨 집의 실소유주는 A씨지만, 실제 계약서에 명시된 이는 바지사장인 C씨.


A씨와 공범들이 구속기로에 있을때 C씨는 조씨에게 어떻게 든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이 구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자, 태도를 바꿨다.


조씨는 "집주인으로 돼 있는 C씨는 바지사장으로 구속될까봐 두려워했지만, 구속을 면하자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며 "내 집주인은 이 바지사장인데 이런 상황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 나머지 공범들도 구속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피해자들은 서로가 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살피는 상황이다. 혹시 저녁에 불이 켜지지 않으면 전화를 한다"며 "피해자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데 왜 우리 끼리만 이렇게 해야 하는지, 국가가 나서서 우리를 보호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가 14일 인천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제공

◇ "긴급주거지원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살길 마련해줘야 해"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한 빌라에서 반전세(보증금 4200만원에 월세 20만원)로 노모와 함께 사는 홍은식(52)씨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다.


홍씨의 집은 이미 경매에 낙찰돼 당장 이달 말까지 새 집을 얻어 나가야 하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우선변제에 해당해 270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다가, 인천전세피해센터를 통해 긴급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


홍씨는 "긴급주거지원을 받으면 6개월에서 최대 2년까지 거주가 가능하기에 일단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며 "2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지만, 일단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점이 다른 피해자와 비교하면 상황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나머지 1500만원은 형사·민사 고소를 했지만, 줘야 받는 거지 사실상 못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며 "같은 피해자지만, 1억 넘게 사기를 당한 분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주범과 공범을 압박하는 방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애초 홍씨는 긴급주거지원이 아닌 전세자금저리대출을 알아봤지만,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대출 받을 자금으론 정상적인 거주지를 찾기 어려워 포기했다 .


홍씨는 "경매로 낙찰은 받은 사람이 또 집 담보 대출을 받아 경매를 하는 방식이 지속되고 있어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며 "피해자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경매중지를 하든지, 경매에 넘어간 집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줘서 살게 하든지 살 길을 마련해 줘야한다"고 했다 .


이어 "정부가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놓고, 피해지원세터가 문을 열고, 주범이 구속기소되면서 겉보기에는 해결책이 마련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긴급주거지원을 받아도 집의 상태를 전혀 모르는 상황을 견뎌야 하고 최대 2년 거주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52살이 될 동안 내 집 마련을 못했는데 2년안에 한다는 게 말이 되겠느냐"며 "긴급주거지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정부에서 강제 퇴거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거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2700만원으로 어디가서 집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주영민 기자 (jjujul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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