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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㊷] 천국의 향 지옥의 맛 ‘셀러브리티’ 서아리


입력 2023.07.13 08:47 수정 2023.07.13 08:4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본기 탄탄한 배우 박규영을 통해 탄생한 캐릭터, 서아리 ⓒ 이하 넷플릭스 제공

두리안, 드라마 작가 피비(임성한)의 신작 ‘아씨 두리안’에서 배우 박주미가 맡은 캐릭터 이름이기도 하지만, 말레이반도에서 많이 나는 과일의 이름이다. 검은 연둣빛 색깔에 열매는 크고 가시가 굵은데, 악취에 가까운 냄새가 나지만 과육은 달콤하여 많이들 식용한다.


흔히 ‘천국의 맛, 지옥의 냄새’라고 불리는 두리안과 거꾸로, 멀리서 보면 천국의 향기가 풍기지만 가까이 가면 지옥을 맛보는 그곳을 최근 드라마에서 보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연출 김철규, 각본 김이영, 제작 스튜디오드래곤·김종학프로덕션·하우픽쳐스)가 그려낸 소위 셀럽의 세계다.


드라마가 인플루언서로 대표되는 셀럽들의 세상을 ‘천국의 향, 지옥의 맛’이 나는, 폐쇄적으로 곪아 터진 ‘그들만의 리그’로 그릴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결과를 안다 해도 얼마나 화려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정도가 대단한 데다, 셀럽들의 추락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가져다줄 카타르시스 역시 기대를 키우는 바가 커서 공개되자마자 화제로 떠올랐다.


비니맘<왕로라<오민혜<서아리, 신흥 셀럽의 등장과 먹이사슬 ⓒ

평소 SNS를 즐기지 않는 터라 관람을 회피하고 있었는데, 시청하지 않으면 못 배길 만큼 대화의 소재가 되는 터라 끝내 ‘클릭’했다.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8회까지 그냥 달렸다. 주제고 뭐고 간에 ‘남의 싸움’ 구경하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니! 놀라고, 이런 재미를 알게 하다니! 원망하며 12회까지 정주행했다.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대단한 스타 배우가 없어도 출연진의 연기가 탄탄하면, 스토리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면 인기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도 했지만. 현시대에 딱 맞는 ‘핫한’ 세계와 그 안의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뉴스 등 사회적으로 외화된 글들 속에서 봤던 실존 인물이 연상되는 사건마저 그려지니 ‘마치 실재’하는 현실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몰입도를 키운다.


그래도 1, 2회에서 멈추지 않고 시청자를 마지막 회까지 데려가는 것은 ‘가빈회’를 비롯한 셀럽들과 그 주변 인물들, 그 중심에 선 ‘신흥 셀럽’ 서아리다(박규영 분).


금수저에서 흙수저로 ⓒ

서아리는 금수저로 태어난 ‘엄친딸’(엄마 친구의 딸, 능력이나 외모, 성격 등 거의 모든 조건이 완벽한 여자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었다. 예쁜데 공부도 잘해, 부잣집 딸인데 성격도 좋아, 뭐 하나 걸치기만 해도 잘 어울리는 ‘옷발’에 패션 감각도 빼어나서 아리가 택한 제품은 친구들 모두가 따라 하는 유행이 됐다.


그야말로 ‘인플루언서’(influencer, 수만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많은 구독자(팔로워)를 통해 SNS에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이들)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서아리는 이미 인플루언서였다.


드라마에 따르면, 그 영향력의 크기는 사회적 힘이 되고, 그 힘은 돈이 된다. 그런데 서아리는 가난하다. 방문판매 화장품 외판원이다. 아버지의 섬유공장이 망하고, 아이비리그에 입학했던 아리는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귀국해 본인 표현으로 ‘고졸’ 회사원이 됐다.


다시 금수저를 향하여…그렇게만 되면 성공일까 ⓒ

영원히 흙수저로 살 것 같던 서아리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유행을 선도하는 힘이, 타인의 구매를 끌어올리는 힘이 돈이 되는 세상 ‘셀러브리티 세계’로의 진입이다. 첫 시작은 고교 친구 오민혜(전효성 분)와의 조우 덕이었지만, 금세 자기만의 색깔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아리는 자신 있었다. 나는 다를 수 있다, 너희와 다르게 거품과 거짓이 아닌 ‘제대로’ 질 좋은 제품과 감각으로 승부해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계획과 전략이 있었다.


정말 가능했을까. 두 가지가 발목을 잡았다. 하나는 감당할 수 없는 돈이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듯 셀럽 세계의 내적 작동원리가 서아리를 예외로 두지 않았다. 돈이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서아리도 초심을 잃고 변해 갔다. 이건 괜찮을 거야, 여기까진 괜찮을 거야, 타협하며 자기 관용도가 높아갔다.


똥 밭에 발을 담갔으되 똥은 묻히지 않겠다는 결기가 있었던 서아리는 정의감을 기억해냈다. 정의감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줄 알았지만, 내가 나 하나도 어쩌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의 결정 하나가 모든 변수를 통제해서 ‘상상한 시나리오 그대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변수가 속출하고, ‘이러려던 건 아닌데’ 자책과 회한 속에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드라마 ‘셀러브리티’ 넷플릭스 글로벌 1위 등극 ⓒ

여기서 멈췄다면, 자신의 비겁함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포기했다면,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생각지 못한 초강수, 짜릿한 접근법으로 위기 해결을 향해 직진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서아리 라이브 방송’ 채널을 켜듯, 자꾸만 ‘다음 회 보기’를 누르는 내가 있다.


회에 회를 거듭해 보는 동안 하나의 질문이 따라다녔다. 이 드라마는 사람들의 소비와 선택에 힘을 발휘하는 유명인이 되어 일확천금을 벌고 세상의 주목을 받는 셀럽이 되고 싶은 꿈을 ‘지옥의 맛’으로 경계시키는 드라마일까, 잘 몰랐던 그들만의 세상과 그들이 무너진 이유를 눈앞에 보여줌으로써 ‘너는 도를 넘지 않으면 돼’라는 귓속말로 셀럽이 되고 싶은 꿈을 부추기는 드라마일까.


아마 그 답은 드라마를 만들고 연기한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있지 않고, 드라마를 나의 기준으로 보고 해석하는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에이, 그냥 드라마네’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묵직하게 폐부를 파고들고, 정도의 차이일 뿐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뒷골이 서늘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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