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소녀 제제(Zeze)는 그 어른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가난과 학대를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Minguinho)는 제제의 둘도 없는 친구로, 둘만의 대화를 나누며 힘을 준다. 브라질의 국민 작가 J.M.바스콘셀로스가 1968년 발표한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내용 중 일부다.
누군가의 밍기뉴가 되어주겠다며, 이름부터 밍기뉴로 짓고 출발한 싱어송라이터도 있다. 2019년 데뷔한 밍기뉴(본명 박서정) 역시 과거 밍기뉴 같은 존재를 필요로 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위로를 받았던 음악으로, 이젠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솔직하고 편안한 그의 이야기는 아프고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위로를 던진다.
ⓒ안은혁
-원래 가수가 꿈이었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가수였어요. 이후 여러 번 꿈이 바뀌기도 하고 가수라는 꿈을 잊고 살기도 했지만, 꾸준히 음악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의도치 않게 어릴 때 꾼 꿈을 이루게 됐어요. 아직도 신기해요(웃음). 원래는 클래식 악기를 전공하다가 적성이 맞지 않아서 탈출구 삼아 기타 독학을 하며 노래를 만들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밍기뉴라는 이름은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따왔다죠?
저는 어린 시절 만화책으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처음 접했어요. 충격적이면서도 밍기뉴라는 존재가 신비롭게 다가오더라고요. 제제가 즐거울 때나 슬플 때 항상 곁에 있어 주는, 기댈 수 있는, 또 의지가 되는 존재잖아요. 이름, 생김새, 말투, 행동, 성격 모든 것이 제 상상 속에서 분명히 나타날 것 같은, 나타나줬으면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로 밍기뉴라는 이름을 계속 마음에 새기게 됐어요. 저 또한 그런 존재가 필요하기도 했고, 지금은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예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2019년 ‘싶어’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여전히 믿기지 않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요. 옛날부터 가수들의 노래들을 들으며 정말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음원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제가 해냈다는 거잖아요? 감격스럽더라고요. 하하.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운 거구나 싶기도 하고요(웃음).
-데뷔 이후 약 4년 간의 시간은 어땠나요?
정말 많은 성장을 했다고 생각해요. 인간적으로도, 아티스트로도요.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도 아직 음악을 사랑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걸 보니 이게 제 천직인가 싶어요(웃음)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사실 ‘나의 모든 이들에게’를 발매할 당시가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이미 여러 버전이 있었고, 사람들이 음원을 빨리 내달라고 메시지를 많이 주셨던 터라 조급하고 힘겨웠던 것 같아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음악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결국 무사히 음원을 내긴 했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이에요.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서러움도 남아있고요. 그저 잘 들어주시는 리스너들에게 감사해야할 것 같습니다(웃음).
ⓒ앨범커버
-9일 발매되는 새 앨범 ‘장마’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장마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을 말하기도 하지만, 제가 많이 우는 시기도 ‘장마’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나면 짜게 식어 잠드는 제가 떠오르는 앨범입니다. 인트로에 앨범에 대한 설명을 담아서 귀 기울여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고, 아웃트로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섰을 때 무섭거나 슬펐던 때를 떠올리며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고 하셨는데, ‘장마’를 테마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날씨에 예민한 편이라 비가 오는 날에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우울한 날에 누군가를 만나기 싫어하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나가게 만들고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같이 비를 맞아도 신나는 사람들이죠. 사실 그 사람들이 줄곧 들어줬던 저의 말들이 담긴 앨범이에요. ‘나 힘들어, 나 살고 싶지 않아, 지쳤어. 하지만 살아야해’ 같이 비를 맞아주는 그들이 있었기에 나의 장마에도 끝이 있구나 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앨범의 수록곡들이 전체적으로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요.
이번 장마 때 슬픈 일을 겪어서 그 마음이 조금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안 좋은 일을 많이 겪고 난 뒤라서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래도 음원 발매를 성공적으로 할 생각에 기대가 되고 설렙니다. 주로 일상에서 앨범의 소재들을 찾는 편인데, 우울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작업이 잘 되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나다운 것, 자연스러운 것에 집중했어요. 그리고 ‘그래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도 얻길 바랐고요. 장마가 오면 분명 비를 같이 맞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고, 없다고 하더라도 평생 중 분명 나타날 거니까 비를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요. 그리고 사실 전 이제 혼자 비를 맞는대도 아무렇지 않아요.
-이번 앨범은 원테이크 방식으로 작업했다고요.
원테이크 녹음이라서 더 저답고, 자연스러운 앨범이 나온 것 같아요. 원테이크 녹음 앨범을 자신 있게 내는 게 처음이라 더 좋았어요. 제 노래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 자연스러운 모습을 좋아하시고 일부러 깔끔하게 각 잡아서 하면 저답지 않다고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원테이크 앨범을 발매했어요. 그 자체가 저에겐 큰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테이크 녹음 방식이 쉽진 않았을 텐데요.
날씨가 덥기도 하고 원테이크 녹음은 한번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원테이크 녹음 방식만큼 힘들었던 것이 아트워크였는데, 원래 원하던 작가님이 개인적으로는 협업을 안 한다고 하셔서 결국 제가 그린 그림을 앨범 아트로 쓰게 됐습니다.
-결과물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요?
아쉬운 점은 항상 있지만, 이번 앨범은 마음 편히 내는 앨범이라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누가 듣지 않아도 누가 미워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 편하게 낸 앨범이라서요(웃음). 그리고 비가 오는 날에 발매하게 되어 더욱 아쉬움이 없고 신기합니다!
ⓒ안은혁
-팬들과 소통하는 오픈채팅방이 있다고 하던데요. 여기서 앨범에 대한 피드백도 많이 나올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평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위로가 된다’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어째서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고 생판 남인데 내 노랫말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요. 진심으로 내가 위로가 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기뻐요. 한편으로는 나처럼 슬픈 사람이 많구나 싶어서 걱정되기도 합니다.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구독자, 조회수도 꽤 높더라고요.
유튜브는 일기장처럼 쓰는 편이라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이 많이 와주시더라고요. 하하. 귀한 곳에 귀한 분이 오는 그날까지 화이팅하겠습니다!
-밍기뉴는 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냥 제가 되고 싶어요. ‘밍기뉴=인간 박서정’으로요. 음악도 사랑받지만 저라는 사람 자체도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일까요?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사실 곡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죠. 누군가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하시겠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녹음과 편곡을 어떻게 할지부터 어떻게 묶어서 내고 언제 발매하지요. 공연할 EO는 가사도 외워야 하고, 그 많은 곡들을 어떻게 소화하나 싶기도 합니다. 하하. 그래도 결국엔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상여자니까요(웃음). 이 악물고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른 인디 아티스트들과 차별화되는 밍기뉴만의 강점이라면?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림도 그리고 기타도 치고 우쿠렐레도 치고, 유튜브도 하고 인스타그램 사운드클라우드도 하고, 라이브 방송으로 소통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 그래서 더 친근한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또한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항상 말하고 싶거든요.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팬미팅도 많이 하고 싶고, 굿즈도 더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보다 더 멋진 단독 공연도 해보고 싶고요. 팬들과 만나는 이벤트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남녀 팬 한분씩 만나서 제가 평소 놀듯이 같이 놀거나, ‘밍기뉴의 야매기타교실’ 혹은 ‘밍기뉴의 도란도란 도란나’라는 라디오를 진행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청자들 애칭을 ‘도른자들’로요. 하하.
-마지막으로, 밍기뉴의 최종 목표는?
나의 모든 이들의 밍기뉴로 영원히 살다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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