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죽이는 '전세사기'…'기망의 고의' 부정하며 도망가는 피의자들 [기자수첩-사회]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입력 2023.10.18 07:06  수정 2023.10.18 07:06

대부분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인 전세사기 피해자들…땀 흘려 모은 돈 한순간에 잃은 상황

16일 기준 수원 전세사기 사건 고소인 134명…피해 보증금 190억원

2023년 국내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총 4481명…피해액 5105억원 달해

피의자들, '기망의 고의' 부정하며 빠져나갈 궁리…수사당국, 최대한 무거운 형벌 선고되도록 노력해야

지난달 1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문제해결을위한시민사회대책위원회 등이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자료사진)ⓒ데일리안DB

2019년 12월쯤이었다. 당시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있던 기자는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카메라 렌즈를 구입하려다가 사기를 당했다. 새 렌즈를 구입한다는 설렘에 돈을 덜컥 입금한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큰 돈은 아니었지만 또한 작은 액수도 아니었기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4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기범은 잡히지 않았고 당연히 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가슴 아프지만 기자는 사기당한 돈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수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아니다. 대부분 20~30대 사회 초년생 혹은 신혼부부인 피해자들에게, 사기당한 전세 보증금은 사실상 전 재산일 가능성이 크다. 소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땀 흘려 모은 돈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된 상황은, 이들이 오롯이 감내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지난 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사건 관련 고소인은 총 134명, 고소장 기준 피해 보증금은 약 190억원이다. 경기도가 추정하는 피해자는 760여 명에 달해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수원에서 전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는 2023년 전세 사기 사건 피해자가 총 4481명, 피해액은 5105억원으로 집계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의자들은 똑같은 논리로 사기 혐의를 부인한다. 전세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범행을 저지를 의사가 없었는데, 이후 자금 사정이 나빠져 불가피하게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기죄의 성립 요건인 '기망의 고의'를 부정하기 위한 주장이다. 피의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세 사기는 현행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별법'(부패자산몰수법)의 기소 전 몰수·추징 대상에서 빠져 있는 상태라 피해 회복이 이뤄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라도 전세 사기 사건 피의자들은 반드시 엄벌에 처해야 한다. 돈도 돌려받지 못했는데, 피의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피해자들은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는가. 수사당국은 법이 정한 한도 내에서 피의자들에게 최대한 무거운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법원은 피의자들이 '거짓 반성'에 속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정말 반성했다면 피해자들에게 돈부터 돌려줬을 테니 말이다. 부디 이번 전세 사기 사건 수사가 피해자들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아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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