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여배우들에 대한 찬사는 언제나 뜨겁다. 늘 예뻐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사는 여배우들이 무지막지한 이미지 변신을 했을 때 대중은 그들의 용기에 감탄하고, 또 그럼에도 예뻐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곧 개봉을 앞둔 <미쓰 홍당무>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는 더욱 뜨겁다. 여주인공 공효진은 안쓰러워 보일 만큼 괴상한 ´추녀´ 양미숙 역을 열연, 기존의 ´못난 캐릭터´를 열연한 여배우들보다 한층 높은 차원의 ´망가짐´에 도전했다. 평소 ´연기력´의 찬사를 받아온 그녀의 파격 변신 소식은 영화팬들의 관심을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할만 하다.
그런데 지난 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미쓰 홍당무>에서 공효진 만큼이나 관객의 시선을 이끈 ´망가진´ 여배우가 또 한 명 있었다. 극중 굉장한 성욕을 가진 반면 내숭 백단의 소유자기도 한 ´밉상´ 캐릭터 이유리 역에 도전한 황우슬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변태 성향이 느껴질 만큼 성적 수위 높은 대사와 몸짓을 소화, 외적이 아닌 내적으로 완벽히 망가진 모습을 연기했다.
황우슬혜는 <미쓰 홍당무>를 통해 첫 연기 데뷔 신고식을 치른 ‘초짜’ 신인. 실제 너무나 가녀리고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그녀가 연기 변신이 아닌 첫 모습을 이유리 역할을 통해 드러낸 것은 누가 봐도 의외스러울 법하다.
1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미쓰 홍당무>로 스크린 데뷔하는 황우슬혜
"주위에서 보기엔 ´왜 저런 역할을 맡았을까´ 하실 수 있지만, 제 입장에선 ´기회´로 받아들여졌어요. 연기자로서 평생 한 번 해볼까 말까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멋진 기회요! 그러니 놓칠 순 없잖아요."
‘예쁘지 않거니와 귀엽다고도 할 수 없는 괴짜 이상의 캐릭터를 (왜 하필) 첫 역할로 선택 했을까’의 질문에 돌아온 그녀의 답이다. 그리고 "솔직히 유리가 ´미운 캐릭터´는 아니잖아요?"라는 반문이 뒤따랐다. 못되서가 아닌 몰라서 엉뚱한 유리가 황우슬혜의 눈에는 오히려 순수하고 예쁘게 비춰졌던 것이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유리 역을 소화기 위해 ´야동´까지 봐가며 연습했다´고 대담 발언을 해 인터넷 사이트 검색어 1위까지 장식한 그녀는 인터뷰에서도 꽤나 솔직했다. ´야동´ 이야기를 해서 소속사에서 혼이 좀 났다고 볼멘소리하며 “오늘은 말을 아끼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금세 이유리와 자신의 닮은 점을 자랑까지 한 정도다.
"저도 유리처럼 내숭끼가 없지 않아요. 유리처럼 멋모르고 엉뚱해서 실제 ´왕따´를 당한 경험도 있고요. 사실 어릴 때 공주병이 좀 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안 그래요.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아도 행동에 따라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스스로 많이 변했죠."
1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미쓰 홍당무>로 스크린 데뷔하는 황우슬혜
<미쓰 홍당무>가 개봉하기도 전 황우슬혜가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 특히 비상한 관심을 끈 것은 박찬욱 감독의 ´OK´를 받아냈다는 점이다. 신인이던 아니던 ´어설픈 연기´는 조금도 봐주지 않는 박찬욱 감독의 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 황우슬혜의 가능성은 굳이 의심해 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 황우슬혜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미쓰 홍당무>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로도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박찬욱 감독님이 절 선택하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들은 바로는 예쁜 척 안 해서 마음에 드셨데요. <미쓰 홍당무>의 유리는 예쁜 여자이면서도 예뻐 보이지 않는 캐릭터잖아요. 민망한 연기를 오히려 재미있어하고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사실 처음 대본 리딩 때 야한 대사하면서 정말 창피하긴 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한 오백 번 넘게 하다 보니 나중에는 쑥스러운 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박쥐>에서 황우슬혜에게 주어진 역은 주인공 송강호를 신봉하는 장애를 앓고 있는 ´호각 처녀´. <미쓰 홍당무>의 이유리 만큼이나 평범하지 않고 힘든 캐릭터다.
"제 실제 성격이 ´여우같은 면´이 있긴 한데, 삶의 방식은 ´곰처럼 살자´ 주의에요. 연기도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더 좋은 역을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쟁취하자가 아닌 어떤 역할이든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다 감당해 보자는 마음이에요. 그러다보면 멋지건 멋지지 않건 다양한 캐릭터를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연기자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16일 개봉을 앞둔 영화 <미쓰 홍당무>로 스크린 데뷔하는 황우슬혜
요즘 연예계 데뷔 평균 나이대로 따지자면 늦은 감이 적지 않은 스물일곱 살에 배우로 첫 발을 내딛은 황우슬혜. ´서두르지 말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미리 다 해두자´는 마음에 연기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보니 예상보다 데뷔 시기가 너무 늦어버렸단다. 그럼에도 찾아주는 작품이 줄을 지으니 그저 뿌듯하고 행복한 그녀다. 내달에는 톱배우 차태현이 주인공으로 나선 영화 <과속 스캔들>로 연이어 관객들의 심사를 받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자신감을 잃지 않을 만큼 꼼꼼한 준비 끝에 실전 무대에 뛰어든 것이 그녀가 다수의 영화 제작자와 감독들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 아닐까?
늦은 만큼 빠른 성장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신예 황우슬혜에게 한국 영화계를 빛낼 재목이 되 주길 바라는 성급한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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