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 발전에 희귀 자원 확보 경쟁
각국 심해 자원 채굴 움직임 가속
UN 상업 채굴 관련 협약 마련 중
해양생물 악영향 가능성에 찬반 팽팽
4차산업 발달로 니켈, 코발트 등 희귀자원 채굴에 세계가 열을 올리면서 그 불똥이 해양으로 튀고 있다. 수십, 수백 년간 자원을 긁어 쓴 육지를 대신해 인류가 바닷속 깊은 곳으로 눈을 돌리면서 또 다른 형태의 기후 위기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진다.
최근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심해 광물 상업용 채굴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는 북유럽 화석 광물 부국(富國)이다.
노르웨이 연립정부는 지난달 5일 야당과 함께 북극 인근 해역에서 심해 채굴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사업별로 의회의 승인 절차를 거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본토와 북극해 스발바르제도 사이에 있는 노르웨이해 바닷속 28만㎢ 지역에서 채굴을 시도할 계획이다.
테르에 오슬란 노르웨이 석유·에너지부 장관은 현지 공영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일을 조심스럽게 단계별로 추진할 것”이라며 “관련 지식을 수집해서 실제 채굴을 시작할 수 있을지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해 채굴은 1960년대부터 여러 국가가 눈독을 들인 영역이다. 다만 유엔(UN) 산하 국제해저기구(ISA)가 공해상 채굴을 금지하면서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ISA는 국제 해역에서 시험채굴만 허용하고 상업 활동을 위한 대규모 채굴은 금지했다. 2016년 이후 상업 채굴 관련 국제 협약을 마련 중인데, 지지부진하다.
2021년 태평양 섬나라 ‘나우루’가 심해 채굴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나우루는 UN 해양법 협약을 앞세워 2년 내 어떠한 지침을 만들지 않으면 심해 채굴을 시작하겠다고 통보했다.
해파리 실험서 심해 채굴 위험성 확인
심해 채굴은 희귀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이익과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립하고 있다.
환경 단체들은 심해 채굴이 해양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채굴 행위가 바다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한 번 파괴한 환경은 돌이키기 힘들다는 점을 내세워 심해 채굴을 반대한다.
그린피스는 심해 채굴을 ‘해양생물에 위협이 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그린피스는 “연구논문 ‘불가능한 목표: 생물학적 다양성에 실질적인 손실을 초래하지 않는 심해 채굴’에 따르면 해양 생물에게 실질적인 손실을 입히지 않고 심해 채굴을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심해에는 해저산, 산호초, 수백 년을 산다고 알려진 상어들이 있다. 이들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물들로 성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물리적인 교란에 특히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그린피스는 이 밖에도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희귀 생물 종이 멸종될 수 있다는 점 ▲기후변화를 완화해 주는 해양 생물을 교란한다는 점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굳이 파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심해 채굴을 막고 있다.
최근에는 그린피스의 주장을 입증하는 사례도 나왔다. 바네사 스텐버스 독일 GEOMAR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1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해저에서 채굴하는 행위가 해파리 대사 작용을 방해해 건강상 심각한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팀은 채굴 과정에서 물을 휘저어 발생한 침전물이 해파리에게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고 소개했다.
연구팀은 “점액을 생산하는 것은 해파리에게 에너지 소비가 큰 활동”이라며 “오랜 시간 지속되는 침전물 노출은 해파리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해는 식량이 매우 부족한 공간”이라며 “과도하게 에너지를 소비할 경우 해파리가 굶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해파리 외 심해에 사는 다른 생물들도 비슷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면, 심해 채굴은 결국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으로 미룬 심해 채굴 허용 여부 주목
일각에서는 심해 채굴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심해 채굴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바닷속 에너지 자원이 현재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여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육지 화석에너지 개발과 비교해 탄소 배출이 적고,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도 작다고 강조한다. 이 외에도 특정 국가의 핵심 광물 독점도 줄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찬반 논란이 치열한 가운데 ISA는 지난해 심해 채굴 관련 규정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대신 지난해 7월 열린 이사회 회의와 회원국 총회에서 법적 구조를 올해 안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당시 ISA는 “내년으로 예정된 회의까지 채굴 규정을 만들기 위해 지속해 논의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며 잠정적으로 2025년에 가이드라인을 채택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반도국으로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관련 기술을 연구해 온 한국으로서는 심해 채굴이 본격화하면 자원 확보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실제 한국은 2002년 ISA에서 확보한 태평양 클라리온 클리퍼톤 존(CCZ, Clarion Clipperton Zone) 해역 독점 탐사광구(7만5000㎢) 내에서 망간단괴 탐사와 상용화 기반 기술개발을 추진해 왔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이곳에는 망간단괴 약 5억6000만t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연간 300만t 규모로 100년 이상 채굴할 수 있는 양이다.
한편, 현재 국내외 기업들은 심해 채굴에 크게 관심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구글과 BMW, 볼보 등은 2021년 심해 채굴로 얻은 광물을 자원으로 쓰지 않는다는 세계자연기금(WWF) ‘심해저 광물 채굴 방지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 국내 기업 삼성SDI도 여기에 가입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