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 "덤프트럭이 자리 차지하고 있어 아예 주차 못 해"
견인 불가능한 특성 악용해 주택가 주차구역 무단 주차 남발
건설기계 운전자들 "차고지 오가는 것보다 부정주차요금 내는 게 이득"
전문가 "주택가 부정주차, 인명사고 위험 높아 단호한 대처 필요…과태료·등록취소 등 처벌 강화해야"
대형 화물차와 건설기계들이 지정된 차고지를 벗어나 주택가 주차구역까지 차지하며 '화물차 차고지 증명제'를 위반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건설기계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차고지를 오가는 것보다 부정주차 요금을 내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는 인식이 만연해 '주차공간 침범'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형 화물차들의 주택가 부정주차는 인명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면서, 거액의 과태료를 물리거나 지자체장 직권으로 차량 등록을 취소하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13일 낮 서울 구로구의 한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이 구역은 사전에 허가받은 인근 주민들의 자가용 승용차만 주차할 수 있다. 하지만 승용차 대신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빼곡히 줄지어 세워진 모습은 건설기계 차고지를 방불케 했다.
인근 주민 조모(46)씨는 "이 구역을 건설기계들이 아예 전용 차고지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미리 허가를 받은 주민들이 제대로 주차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구청에서 가끔 단속도 나오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단속이 뜸한 야간에는 더 많은 덤프트럭들이 몰려든다"고 토로했다.
이런 문제는 특정 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건설공사 현장 인근 지역이면 전국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런 건설기계들이 지정된 차고지가 아닌 곳에 주차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지만 이를 단속하더라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구청 주차관리과에 '건설기계의 일반주차구역 내 주차가능여부'를 문의한 결과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한 불법주차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좀 더 강한 제재를 할 수 있지만 주차구역 내에 주차했다면 건설기계라 할지라도 부정주차요금 부과 외에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의 경우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주차하게 되면 원래 주차요금의 최대 5배까지 가산 징수된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부정주차요금은 하루 4만원 가량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차량 강제견인이다. 부정주차한 차량이 견인조치되면 최소 10만원의 견인비가 나오고 시간당 2000원 이상의 보관료가 차곡차곡 쌓인다.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비싸기 때무에 일반 차량의 부정주차를 막는 데는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덤프트럭이나 굴삭기같은 건설기계는 애초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견인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속되더라도 부정주차요금만 내면 끝이다. 하루 4만원의 부정주차 요금이 차고지를 왕복하는 비용보다 저렴하다면 굳이 차고지로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야시간인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밤샘주차' 단속이 적용돼 이 시간 중 차고지를 벗어나 1시간 이상 주차한 것이 적발될 경우에는 차주에게 2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심야시간이라는 특성상 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다.
물론 건설기계나 대형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8톤 화물차량을 운행하는 A씨의 화물차 차고지는 울산광역시다. A씨는 "서울에는 기존에 차고지를 보유한 사람들 외에 새로 차고지를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렇다고 울산 차고지에서 서울 운송현장까지 트럭을 매일 왕복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고 되물었다.
덤프트럭으로 골재를 운반하는 B씨는 "공사현장에 주차공간이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다. 물론 규정상으로는 현장에 건설기계를 놓기 위한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면서도 "그 공간 기준이 턱없이 작아 덤프트럭 몇대, 굴삭기 몇대 주차하면 끝이다. 현장 가까운 곳에 차를 두려면 부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고충을 감안하면서도 부정주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통문화연구원의 김재선 연구위원은 이날 "건설현장에 대해서는 규모에 맞게 건설기계 주차공간을 확보한 후에 건축허가가 나오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건설기계의 주택가 부정주차는 인명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더욱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상습적으로 부정주차하는 건설기계에는 거액의 과태료를 물리거나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차량 등록을 취소하는 등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