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의 꽃’ 총리 기자회견 중단…시진핑 ‘원톱’에 대못질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4일 막이 올랐다.
국정자문기구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정협)가 이날 개회했고,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는 이튿날인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된다. 양회는 일주일 일정을 마치고 각각 10일과 11일 폐막된다.
중국공산당과 민주당파(공산당의 위성정당), 기타 여러 단체 대표들이 사회·경제·문화 등 여러 문제를 토론하는 전국정협보다 주요 법률의 제정과 고위급 인사 등이 이뤄지는 전국인대가 눈길을 끈다. 지난해 3월 열린 양회가 시 주석 3기체제의 공식 출범과 행정부인 국무원 고위 인사의 임명, 대미 강경 메시지 등 굵직한 안건이 적지 않았던 데 비해 올해는 큰 이슈가 적은 가운데 경제 회복, 부동산 정책 등 내정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5일 전국인대 개회식에서 있을 리창 국무원 총리의 정부 업무보고다. 지난해 취임한 리 총리의 첫 업무보고다. 여기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와 경제정책 추진방향, 국방예산 등 부문별 예산이 제시된다.
중국은 지난해 리커창 전 총리가 ‘5%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제시했고, 올해 초 5.2%의 성장률을 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안팎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5%대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앞서 중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보다 낮은 4.6%로 내다봤다.
특히 부동산 및 경제회복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 당국은 이미 올해 내수부양을 위해 대규모 설비교체와 소비재 교체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중국 당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파격적인 부양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국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부동산 침체와 관련해서는 기준금리를 내리고, 구도심 개발 등의 대책을 내놨다. 블룸버그통신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이번 양회 주요의제로 중국 당국이 강조해온 보장형 주택(저가 서민주택)과 성중촌(城中村·도시 내 낙후지역) 개발 등이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양회 기간 내놓을 올해 외교·안보정책 방향도 관심사다. 중국은 지난해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이 모두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는 등 외교·국방 분야에서 혼란을 겪었다. 안보를 강조하는 노선인 ‘발전과 안전(安全)을 통합한다’는 중국의 기조는 이번 양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이 겸임 중인 외교부장 자리에 류젠차오 대외연락부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류 부장은 ‘전랑(늑대전사)외교’를 상징하는 친강 전 외교부장에 비해 온건하고 세련된 이미지이며 미·중관계 관리 모드와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류 부장은 최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다.
전국인대 기간에 내놓을 대미 메시지 수위도 주목된다. 올해 양회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 안정화에 합의한 뒤 치러지는 만큼 대미 메시지가 온건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만과 관련한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강경할 수 있다. 올해 1월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 정치인인 여당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돼 오는 5월 취임을 앞두고 있다.
한편 해마다 전국인대 폐막식 직후 총리가 직접 진행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이 중단된다. 시진핑 원톱 체제' 가속화 흐름을 타고 2인자인 총리의 입지가 날로 줄어드는 상징적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러우친젠 전국인대 대변인은 이날 "전국인대 폐막식 이후 열리는 국무원 총리 기자회견을 올해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올해 전국인대 이후 향후 몇 년간 총리 기자회견은 없다"고 못박았다.
1991년 리펑 당시 총리가 처음으로 시작돼 1993년부터 정례화한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은 ‘양회의 꽃’이다. 이 자리에서 총리는 2시간 넘게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중국의 올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부문에서 주요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한다. 총리 기자회견 현장은 중국 국영 중앙TV(CCTV) 등을 통해 중국 전역에 생방송된다.
이에 따라 총리 기자회견이 지난해를 끝으로 33년 만에 폐지되는 셈이다. 이는 현재 중국 내 총리의 정치적 위상이 낮아진 것을 반영한 것이라는 베이징 외교가의 란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