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5월30일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항소심서 盧 측의 '300억 비자금 메모' 증거 인정
법조계 "비자금 흐름 실체 확인 안 돼…일방 메모, 재산분할 핵심 근거 삼을 수 있을 지 의문"
"당사자 아닌 가족 메모, 증거 인정 매우 드물어…대법서도 인정되면 향후 이혼 소송에 큰 영향"
"대법서 상고 기각 등 고려하지 않고 노소영 기여도 다시 심도있게 따질 듯…판단 달라질 가능성"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노 관장 측이 증거로 제출한 모친 김옥숙 여사의 '300억 비자금 메모'가 기여도 인정의 핵심 근거가 됐다. 법조계에선 메모가 허위로 작성됐는지, 300억이 실제로 그 시기에 SK로 건너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 메모의 증거력을 신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법에서는 상고 기각 등을 고려하지 않고 2심에서 인정한 노 관장의 기여도 부분을 다시 심도 있게 따질 것으로 보이고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SK그룹의 기업가치 증가와 재산형성에 노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면서 "1991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전달했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SK에코플랜트 전신) 명의의 50억원 어음 6장의 사진과 메모가 결정적 근거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건네는 대신 최 회장은 선경건설 명의 어음을 담보로 전달했고 이 돈이 태평양증권 인수나 경영 활동에 사용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재산 분할 액수가 1심 대비 20배 수준으로 올랐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면서 상고 입장을 밝혔다.
판사 출신 신혜성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증거능력'과 '증거력'은 다른데, 증거능력을 판단할 때는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며 가사·이혼 등 민사 사건에서는 증거능력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메모의 신빙성을 두고 증거력이 문제될 수 있다. 이번 소송의 경우 메모가 허위로 작성된 것인지, 실제 비자금이 SK로 흘러갔는지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금의 흐름이 추적된 것도 아니고 실제 300억이 그 시기에 건너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비자금을 금전적 기여의 핵심 근거로 삼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며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통상적으로 대법원은 사실 인정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법률적인 부분만 판단하지만 이번에는 상고 기각이나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기 보다는 기여도 인정 부분을 다시 심도 있게 판단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혼 전문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리)는 "일반적으로 당사자가 아닌 가족이 쓴 메모, 차용증 등을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입금 내역이나 은행 거래 내역이 없는데도 인정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이다"며 "다만 최근 외국이나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 재산분할 대상에 배우자의 퇴직금과 연금은 물론 주식도 인정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상고심에서 약간의 변동은 생길 수 있으나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워낙 큰 이슈가 된 사건이고 역사적인 줄거리들이 있는 만큼 재판부에서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서 판단을 한 것 같으나 메모 증거의 신빙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물론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하지만 이 판결이 상고심까지 유지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대법원에서 한 번 판단 기준을 세워버리면 다른 이혼소송 재판들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