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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진화하는 한국 전투함의 눈과 귀 ‘통합마스트’


입력 2024.08.22 07:07 수정 2024.08.23 06:36        데스크 (desk@dailian.co.kr)

“너는 날 못 보지만 나는 널 본다”

레이더, 센서 등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

스텔스와 탐지 성능 동시 향상

차세대 구축함 KDDX에 첫 적용

한화시스템이 지난 7월 호주에서 열린 IODS전시에서 한국형 구축함(KDDX) 통합 마스트(I-MAST)를 선보이고 있다. ⓒ한화오션

오늘도 사바나 초원 어디에선가 배고픈 치타가 맹렬히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바로 앞에는 가녀리지만 날쌘 가젤 한 마리가 치타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누가 더 빠르냐에 따라 둘 중 하나는 낭패를 보고 다른 하나는 꿋꿋하게 생존과 번식을 이어갈 것이다.


진화론적으로 보면 먼 옛날엔 치타도 가젤도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자연의 선택으로 더 날쌘 치타와 가젤이 살아남았고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들이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포식자와 피식자가 생존경쟁을 벌이며 함께 변해가는 현상을 ‘공(共)진화’라 부른다. 지구 생태계에서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라고 할 만큼 공진화는 보편적이다.


수천 년간 인간들이 벌여온 전투방식의 변화는 치열한 야생 세계의 공진화를 빼닮았다. 한쪽이 날카로운 창을 만들면 다른 쪽은 튼튼한 방패를 만들었고, 한편이 성벽을 높이 쌓으면 다른 편은 더 강력한 투석기를 고안해냈다. 첨단기술이 동원되는 현대전에서 그 패턴은 더 선명해졌다. 미사일 개발에는 요격시스템으로 맞서고 레이더 탐지 기술에는 스텔스 기술로 대응하며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은 끝없이 반복돼왔다.


타임 루프인지 시지프스 형벌인지 모를 이 어리석은 게임의 종착역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어느 쪽이든 삐끗하는 순간 상대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현생인류가 지나온 궤적이 늘 그러했으니까. 스스로 ‘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이라 칭하는 오만한 생명체의 역사는 슬기는커녕 동종끼리도 일말의 자비가 없는 탐욕과 야만의 잔혹사였다.


환경 변화에 둔감하고 진화를 게을리하다 포식자 먹이로 전락했던 수많은 사연은 남 얘기가 아니다. 고난의 역사를 견뎌온 한국이 오늘날 신해양시대 주역으로 부상하고자 한다면 강한 해군력부터 갖춰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면 우리 해군의 진화는 어디쯤 와있을까.


그 최정점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서 있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의 청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KDDX는 우리 기술로 만들어질 순 국산 구축함이자 추진 및 무장 체계 전체를 전기로 구동하는 전(全)전기 전투함이다. 최신예 전투함에 걸맞게 첨단성능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진화의 탁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은 ‘통합마스트’다.


통합마스트는 사람의 눈과 귀에 해당하는 함정의 감각기관이다. 야생동물이나 인간이나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본전략은 비슷하다. 나의 노출은 최소화하고 상대를 관찰하며 기회를 엿보는 방법이다. 장거리 정밀타격이 가능한 현대전에서는 누가 더 멀리에서,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적을 감지하는지가 관건이다. 그 촉을 담당하는 게 통합마스트다.


‘마스트’는 원래 돛대를 일컫는 말이다. 풍력으로 움직이던 범선 시절 돛을 매다는 기둥이었다. 현대식 함정이 등장한 이후 마스트는 레이더나 통신안테나를 설치하는 역할로 바뀌었다. 그런데 더 우월한 성능을 갖추려 구조물들이 늘어나면서 갑판 위는 난개발 동네처럼 어지러워졌다. 개별시스템들의 중첩으로 상호 간섭이 일어나 센서 음영구역(사각지대)이 생기고 상대방 레이더에 쉽게 노출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런 골칫거리를 해소한 방안이 바로 통합마스트다. 위상배열 레이더, 적외선 탐지 추적장비, 전자전 장비 등 여러 센서와 통신안테나까지 하나의 체계로 통합한 것이다. 마스트 구조가 단순해지면 상대방 레이더에선 함정인지 어선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스텔스 성능이 배가된다. 센서 음영구역이 해소되면서 표적을 탐지·추적하는 능력도 향상된다. 공간 활용 효율성과 유지보수의 편리성은 말할 것도 없다.


통합마스트는 함정 탑재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주요 장비들과 연계해 통합생존확률을 높인다. 스마트폰에 내재한 카메라 기능이 다른 기능들과 연동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런 강점들 때문에 전 세계 강대국들도 최근엔 구축함 급 대형 전투함을 건조할 때 통합마스트를 필수요소로 꼽는 추세다.


한화오션은 미래형 전투함에서 통합마스트가 차지하게 될 중요성을 일찍부터 파악했다. 그래서 2012년 KDDX 개념설계 단계부터 적용계획을 반영했고 통합마스트를 최초로 개발한 네덜란드 탈레스사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벤치마킹할 함정이 없던 시기부터 세부 구성요소와 성능 최적화 방안 등을 독자적으로 연구해온 것이다.


KDDX는 미국 이지스함을 한국형 버전으로 재해석해낸 최신예 전투함이다. 그리스 신화 속 ‘신의 방패’라는 이지스급 첨단기술 중에서도 통합마스트는 한국 해군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진화의 상징인 셈이다. 머지않아 통합마스트를 탑재한 KDDX가 실전배치 된다면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에겐 한여름 납량특집 같은 메시지가 될 것 같다.


“너는 나를 못 보지만 나는 너를 지켜보고 있다.”

글/ 이동주 한화오션 고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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