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만나지 않으니까 작은 문제에도 오해가 생기고 틈이 넓어진다. 자주 만나는 것이 문제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주례회동을 마련했다. 주례회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회고록에서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표최고위원 시절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언급하며 적은 말이다. 두 사람의 주례회동에선 각종 현안들이 논의됐는데, '담판'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최근 정치권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독대 여부'가 최대 화두가 됐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는 24일 용산 대통령실 분수정원에서 1시간 30분가량 만찬 회동을 가졌다. 7·23 전당대회 다음 날 만찬 이후 두 달 만으로, 지난달 30일로 예고됐다가 의대 증원 유예 문제를 놓고 갈등이 불거지면서 미뤄졌다가, 이날 성사된 것이다. 이날 만찬의 대화 주제는 여야 관계와 국정감사, 체코 순방 성과 등이었다고 한다. 의정 갈등과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 채상병 특검법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대표가 만찬 전 요청했던 윤 대통령과의 독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대표는 만찬 직후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빠른 시일 내에 윤 대통령과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며 독대를 재요청했다. 한 대표는 독대 추가 요청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독대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체코 순방에서 귀국도 하기 전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에 먼저 알려진 데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는데, 한 대표가 독대 재요청을 또다시 언론에 공개하면서, 양측의 감정의 골이 좁혀질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여권에선 한 대표의 리더십과 소통 스타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대표는 반듯한 엘리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달변가이지만, 주변을 아우르는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꽤 있는 게 사실이다. 한 대표가 실제로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원했는지에 대해 의심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독대가 성사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면, 대통령실과 물밑에서 충분히 조율하면 됐을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독대 논란은 "한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언론 플레이'를 너무 자주한다"는 인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검찰) 후배'였던 한 대표의 이런 태도가 충분히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한다. 두 사람은 일개 개인이 아닌 국정 운영의 주축이다. 여소야대 상황 속 산더미처럼 쌓인 난제를 풀려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윤 대통령도 지난 7월 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 현장에 직접 참석해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을 이겨내고 이 나라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무엇보다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며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당과 정부가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이고, 우리는 하나"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당정이 단결하려면, 독대든, 3자 회동이든, 소통해야 한다. 민자당 시절, '신군부 2인자'였던 노태우 대통령과 '민주화의 상징' 김영삼 대표최고위원도 매주 만나며 이견을 풀어나가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