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
정치인 언어 이렇게 험악해서야
그의 결백 못 믿는 당 소속 의원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0일, 위증교사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그는 이날 1심 결심공판에 출석하면서 검찰을 맹비난했다.
이 대표 한 사람 잡자고 대한민국의 검찰이 독재국가를 만든다는 뜻이겠는데 21세기에 천동설(天動說) 같은 궤변을 듣는 기분이 어이없고 떨떠름하다. 명색이 거대 야당의 대표다. 지난 대선 때는 0.73%포인트의 표 차로 아깝게 진 정치 스타였다. 그런 정치적 위상에 비해 대응 태도가 너무 좀스럽다.
징역 3년 형을 구형받고 나오면서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겁나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
이 대표가 이 이치를 이제야 겨우 깨달았을까. 일반 국민도 다 아는 일인데 법률가인 이 대표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간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그악스럽게 검찰을 비난하고 협박했던 것은 사람이 너무 가벼워서인가, 아니면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가?
법원의 재판을 신뢰한다면, 그의 말 대로 검사가 어떤 구형을 하든 놀라고 겁낼 필요가 없다. 그건 알지만, 수사 및 공소제기 검사가 괘씸해서 분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걸까? 일반인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원내 제1당의 대표이자 차기 대권 경쟁에 나설 정치리더가 단지 분풀이를 위해 ‘이 나라 역사 최악의 정치 검사’라는 식으로 모질게 매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어서 오히려 위협적인 태도로 대드는 게 아닌가?
“나 혼자 감당하게 할 거야? 모두가 대표의 방패로서 그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 소속 의원, 당직자, 당원들에게 이런 뜻으로 보낸 메시지일 수도 있다. 작년 9월 이 대표는 검찰의 체포 동의 요구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단식(아마도)만으로는 불안했던지 당 소속 의원들에게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 달라”고 호소(지령?)하는 장문의 SNS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이 대표의 검찰에 대한 분노 표출이 민주당 ‘총동원령’으로 들릴 소지가 다분하다.
그는 지난달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징역 2년을, 30일 위증교사 재판에서 다시 징역 3년 형을 구형받았다. 1심 선고일은 11월 15일과 25일로 각각 지정됐다. 그는 이외에도 △대장동·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 2개의 재판을 받고 있지만 발등의 불은 앞의 2개 재판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위증교사로 집행유예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차기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한다. 다른 재판은 재주를 피워 대선 이후까지 시간을 끌 수 있겠으나, 앞의 두 재판은 그 이전에 대법원의 선고까지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법원행정처가 지난달 30일 일선 법원에 보낸 ‘공직선거법 위반사건 신속 재판’ 권고문이 판사들에 의해 존중될 경우를 전제로 한 예측이다.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의 재판 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으로 1심 6개월, 2심과 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간엔 아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이 조문의 준수를 대법원이 특별히 주문한 만큼 일선 판사들이 흘려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표에 대한 최종심도 종전의 예상보다는 훨씬 빨리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하겠다.
정치인 언어 이렇게 험악해서야
이 같은 상황 변화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 나아가 사법부에 대해서까지 압박의 강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으리라는 점은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검찰의 악마화는 너무 나간 언어폭력이다. 이 대표 말고도 형사 재판받는 피고인은 수없이 많다. 그들 모두에 대해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씌우고 있다는 것인가? 그러므로 검찰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이 대표 개인에 대해서만 검찰이 저의를 갖고 악마적 수사·기소를 했다는 것인가? 그런 뜻이라면 이 대표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검찰이 기관 자체(혹은 정권)의 존폐를 걸고 수사 및 기소 도박을 벌이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 한다.
검찰의 구형이 떨어지자 민주당 쪽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봇물이 터졌다. 예컨대 이런 내용들이다.
그의 결백 못 믿는 당 소속 의원들
그렇게 결백을 확신한다면 무엇이 두려워 소리를 질러대는가? 재판부가 어련히 알아서 진실을 밝혀줄까. 자꾸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질러대면 재판부도 불쾌해지지 않을까? 압박하는 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면서도 분개의 목소리를, 남 들으라고 내는 것은 이 대표의 결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아마 그럴 것이다).
이 대표 한 사람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자고 대의 민주정치의 기본 틀을 무너뜨려서 될 일은 아니다. 이 대표가 받는 11개의 혐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영역의 것들이다. 정치적 신조·사상·이념·선택 등 공적 영역의 혐의는 없다. 그렇다면 정당이 나설 일은 못 된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나 당료들, 그리고 열성 당원들이 이 대표의 사병(私兵)이 아니라면 재판의 문제는 피고인 본인에게 맡겨두고 의원의 역할에 충실해야 옳다(이것이 국민의 당연한 요구다). “그렇게는 못 하겠다. 나는 이 대표의 충직한 사병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의원이 있다면 자신의 세비와 보좌진의 월급은 주인에게 청구하시라.
이러나저러나 이 대표는 정말 좋겠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높직한 지위에 오른 멀쩡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병 노릇을 해주니 이보다 더 신나는 권력 놀음이 또 있을까. 21세기의 선진 대한민국에서 왕조시대의 군신 관계, 조선시대의 사화를 보는 기분이 정말 착잡하다. 이 대표 자신이 말했듯 ‘그까짓 5년짜리 정권이 무슨 대수라고’, 그걸 탐내서 이 난리인가. 지금이라도 상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가?
문득 의문이 생긴다. 민주당 사람들 유난히 ‘반일(反日)’ 정체성을 과시하던데, 일제의 식민 통치에 맞서 조국 광복 투쟁을 벌였던 선열들이 바랐던 바가 이 난장판 정치였을까? 이렇게 편을 갈라 사생결단의 정치를 하라고 그분들이 목숨을 바쳐 광복의 길을 닦았던 것일까? 경쟁 상대에게 ‘친일’의 낙인만 찍으면 자신은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고 정말 믿고 있는가? ‘민주당의 아버지’로 불리기까지 한 이 대표와 그의 열렬한 추종자들 생각이 궁금하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