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명 '한국판 엔비디아 30%' 환원 발언 논란
'전체주의적 발상', '계획경제 모델', '만들 방법은 있나' 등 비난 잇달아
애초에 만들 생각이 없었다면?…이재웅 "누가 진정성 믿겠나"
타다 혁신 짓밟은 민주당 대표가 혁신 주도 '어불성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한국판 엔비디아 30% 환원’ 발언이 며칠째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그의 표현대로라면 굉장히 손쉽게) 만들어 30%(아마도 지분)를 국민이 나누면 세금을 안 내도 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발상은 본인과 그의 극성 지지층에는 획기적이었을지 몰라도 다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충격을 던져줬다.
퍼센테이지만 조금 바꾸면 휴전선 넘어 북쪽에서나 통용될 얘기가 제1 야당 대표의 입에서 나왔으니 조용하길 바라는 게 무리다.
당연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그걸 야당 유력 대선주자를 겨냥한 좋은 공격 소재로 삼았다. ‘전체주의,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느니, ‘계획경제 모델’이라느니 시끌벅적한 공격이 이어졌다.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만들 방법이 있다면 제시해 봐라’라는 좀 더 근본적인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은 건 이재웅 전 쏘카 대표였다. 그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발적으로 성과를 나눌 테니 기회를 달라했던 기업에도 철퇴를 내리던 민주당이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앞으로 30%의 지분(한국판 엔비디아 기업)을 국가가 확보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그 진정성을 믿겠냐”고 비판했다.
한국판 엔비디아를 만들겠다는 구상 자체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이재명 대표는 ‘진짜인 줄 알더라’라는 밈(meme)의 주인공이었다.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어 나눠먹는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그걸 만들 재주도 없으면서 공수표를 던진 건 더 큰 문제다. 그런데, 애초에 만들 생각도 없었다면 그건 대국민 사기극과 다를 바 없다.
이재웅 전 대표는 쏘카 자회사 VCNC를 통해 승합차를 이용한 기사 포함 차량 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타다’ 사업을 시작했다. 국내에서 택시 사업자가 아닌 일반 차량이 승객을 운송하고 돈을 받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이 전 대표는 11~15인승 승합차 대리 기사가 알선하는 운송 서비스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장 잠식을 우려한 택시업계는 타다를 ‘불법 콜택시’라고 주장하며 크게 반발했다. 그리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당 정권은 이를 받아들여 타다 영업 방식을 금지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일명 타다 금지법을 발의했다. 승객이 관광 목적으로 한 번에 6시간 이상 탑승하거나 공항 또는 항만에서 탑승·하차하는 경우에만 영업하도록 제한해 일상에서 승합차 대리 기사가 알선하는 운송 서비스를 막는 내용을 담은 법이었다.
이 법은 타다 서비스 시작 이후 1년 만인 2019년 10월 발의돼 5개월 뒤인 2020년 3월에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국 이재웅 전 대표의 혁신 시도는 ‘한국에서는 집단 이기주의를 배경으로 한 표심에 배척되는 한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뼈아픈 교훈만 남긴 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스토리를 이재명 대표의 ‘한국판 엔비디아 30% 환원’ 발언이 나온 시점에 소환한 것은 민주당 정권이 ‘혁신’보다 ‘표심’을 택한 전례가 있는데 스스로 혁신을 시도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일침을 가한 것이다. 설령 민간 기업이 혁신을 시도한들 당신들이 그걸 제대로 되도록 내버려 두겠냐는 냉소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표는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정치인이다. 강력한 팬덤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기도 하지만, 정치인의 처신 범위를 좁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이 대표가 ‘중도 확장’을 목표로 우클릭(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행보를 보인다 해도 근본적으로 그의 극성 지지층에 반하는 노선 변화를 꾀할 수는 없다.
‘타다’의 혁신을 막았던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 한들 엔비디아 같은 혁신 기업을 만드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오히려 또 다시 혁신 기업을 싹부터 짓밟는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표는 진짜 한국형 엔비디아를 만들어 나눠먹자는 계획경제 모델을 구상한 것일까. 엔비디아 같은 글로벌 빅테크가 정부의 정책적 의지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어질 것이라는 소아병적 판단을 근거로 대책 없이 던진 걸까. 아니면 애초에 그걸 만들 생각도 없이 ‘선전용 구호’로 활용한 걸까.
“한국형 엔비디아 만든댔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 이재웅 전 대표의 발언은 어쩌면 이재명 대표의 이런 속내를 짚어낸 게 아닐지, 놀랍고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