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필리핀, 남중국해 모래톱 놓고 “내 땅” 정면 충돌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입력 2025.05.04 07:07  수정 2025.05.04 07:07

中 해경, 남중국해 샌디 케이에 상륙해 국기 게양 사진 올려

60평 불과한 모래톱 샌디 케이, 中·比 3대 영유권 분쟁 해역

比 해경, 모래톱 3곳에 올라 국기 들고 찍은 사진 공개 맞불

中 외교부, 베이징 주재 필리핀 대사 불러 심각한 우려 표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23년 4월11일 남중국해를 담당하는 광둥성 소재 인민해방군 남부전구를 시찰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과 필리핀 간에 남중국해(필리핀명 서필리핀해)에서 영유권 분쟁이 격화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군과 필리핀군의 연례 합동훈련인 ‘발리카탄’이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이곳의 모래톱에 서로 국기를 꽂고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두 나라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9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베이징(北京) 주재 필리핀 대사를 불러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이 30일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외교부 아주사(亞洲司·아주국에 해당) 류징쑹(劉勁松) 사장이 제이미 플로르크루즈 주중 필리핀 대사를 약견(約見)해 필리핀이 대만 및 안보 분야에서 최근 일련의 부정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약견’은 ‘초치’(召見)보다는 수위가 낮은 표현으로 중국 외교부가 다른 나라 외교관을 불러 항의할 때 쓰인다.


이와 함께 중국 인민해방군은 영유권 분쟁 해역에서 정기 순찰을 실시했다. 중국군 남부전구는 30일 “최근 필리핀이 해상에서 빈번하게 도발과 문제를 일으키고 역외 국가들을 끌어들여 이른바 '합동 훈련'을 조직하고 있다”며 29일 정기 순찰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과 24일에는 중국의 산둥호 항모 전단이 필리핀 근해에서 포착됐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중국 해안경비대원들이 지난 4월 중순 남중국해 샌디 케이 모래톱에서 오성홍기 펼치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중국 글로벌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필리핀과 남중국해의 모래톱인 샌디 케이(중국명 톄셴자오·鐵線礁)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검은색 제복을 입은 중국 해안경비대원 4명은 지난 4월 중순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南沙群島·필리핀명 칼라얀 군도·베트남명 쯔엉사 군도) 내 분쟁 지역인 샌디 케이에서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든 모습을 26일 공개하면서 촉발됐다.


류더쥔(劉德軍) 중국 해안경비국 대변인은 “중국은 톄셴자오와 그 인근 해역에 대한 명백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법에 따라 중국 관할 해역에서 권리 보호 및 법 집행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샌디 케이(Sandy Cay)는 70여개 암초로 이뤄진 스프래틀리 군도의 일부분을 이루는 모래톱이다. 현재 필리핀 관할권으로 분류된다.


면적 200㎡(약 60.5평)에 불과한 조그마한 모래톱이지만 샌디 케이에서 12해리 반경에 필리핀의 가장 중요한 군사 요충지인 티투섬(중국명 中業島·필리핀명 파가사섬)이 포함돼 있다. 티투섬(Thitu Island)은 필리핀의 남중국해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프래틀리 군도의 100여개 섬·암초 가운데 유일하게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


필리핀군은 중국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2023년 티투섬에 해안경비대 감시 기지를 설치, 중국 인민해방군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샌디 케이는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黃巖島), 세컨드 토마스(중국명 仁愛礁) 사주 등과 함께 중국과 필리핀이 충돌해온 대표적인 영유권 분쟁 지역을 꼽히고 있다.


지난달 27일 필리핀 해안경비대원들이 남중국해 한 모래톱에서 국기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필리핀 해안경비대 X(옛 트위터)계정 캡처

중국의 ‘국기 게양’ 도발에 필리핀은 즉각 맞대응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암초 3곳에 상륙했다며 해안경비대원 5명이 필리핀 국기를 펼치고 촬영한 사진을 27일 공개했다.


서필리핀해 국가태스크포스(NTF-WPS)는 이날 성명을 통해 남중국해 암초 중 한 곳에서 1000야드(914m) 떨어진 곳에 중국 해안경비대 선박과 중국 민병대 선박 7척의 ‘불법 존재’ 사실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작전은 서필리핀해에서 국가의 주권과 관할권을 수호하려는 필리핀 정부의 변함없는 헌신과 결의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BBC는 “다만 필리핀 해안경비대가 상륙한 암초 가운데 한 곳이 최근 중국이 점거한 샌디 케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중국이 샌디 케이에 상주하는 징후는 현재까지 없으며, 중국 해안경비대도 오성홍기 세러머니를 펼친 후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필리핀의 맞불 작전에 류더쥔 대변인은 “중국 측 경고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인원 6명이 톄셴자오에서 활동했다”며 “중국 해경은 법에 따라 확인하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은 톄셴자오를 포함한 난사군도(南沙群島)와 인근 해역에 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며 “필리핀 측 행위는 중국 영토 주권을 침해하고,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전을 훼손한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필리핀 과학자들이 지난해 3월 21일 남중국해 샌디 케이에서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홈페이지 캡처

이와 함께 필리핀을 향해 “즉각 침해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중국 해경은 관할 해역에서 법에 따라 권익 수호 및 법 집행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법에 따라 필리핀 측 도발 활동에 대응하고 영토 주권을 수호했다”며 “톄셴자오가 무인·무시설 상태를 유지하도록 보장하고 ‘남중국해 행위 준칙’의 엄숙성을 확고히 수호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무인·무시설화’를 언급한 것은 중국이 다른 남중국해 암초처럼 샌디 케이에 시설물을 설치해 군사기지화할 것이라는 의혹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꾸준히 영유권을 주장해 왔지만 점령지가 아닌 지역에 깃발을 꽂고 주권을 선언하는 행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3월과 올해 1월에도 샌디 케이에서 필리핀 선박이 해양 조사를 시도했고, 중국 해경은 "불법 상륙 시도"라며 대응해 마찰이 빚어졌다.


중국이 샌디 케이를 한때 점거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 정부는 “사실이라면 매우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제임스 휴잇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 같은 행동은 지역 안정을 위협하고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해병 항공방어 통합시스템(MADIS)이 지난달 27일 필리핀·미국 합동 군사 훈련인 ‘발리카탄’의 일환으로 필리핀 잠발레스주 산 안토니오 마을에 위치한 필리핀 해군 캠프에서 통합 항공 및 미사일 방어 훈련을 실시하며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번 갈등은 미군과 필리핀군의 연례 합동훈련인 ‘발리카탄’이 진행되는 가운데 일어났다. ‘어깨를 나란히’라는 뜻의 ‘발리카탄’ 훈련은 필리핀 전역에서 실시된다. 5000명의 필리핀 병력과 1만명의 미군이 참가한다. 훈련은 다음 달 9일까지 열린다. 27일 미 해병대 방공통합체계(MAAS)의 미사일이 필리핀 북부 해안에서 발사됐다. 이는 이 체계의 두 번째 실사격 시험이자 필리핀에 대한 첫 배치다.


훈련에는 미국의 신형 대함 미사일 체계(NMESIS)도 참가할 예정이다. NMESIS는 필리핀 최대 섬인 루손섬 북부와 바타네스 제도에서 해상 차단작전을 수행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 해군의 입지를 강화했다.


이번 훈련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 지역에 제공했던 군사적 지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일부 동맹국의 우려를 달래는 데 도움이 됐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달 마닐라를 방문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도 미국이 필리핀과의 동맹을 2 배로 강화하고 중국에 대한 억제력 재확립을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 자료: 미국 CNN방송

필리핀은 국가 방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이고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이 훈련이 “도발”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궈 대변인은 발리카탄 훈련을 두고 역외국가를 끌어들여 지역의 안정을 해친다며 필리핀을 비난한 바 있다.


중국은 1953년부터 ‘남해 구단선(南海 九段線)‘이라는 자의적 해상 경계선을 긋고 남중국해의 90%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해 왔다. 중국 최남단 영토인 하이난(海南)성에서 남쪽과 동쪽으로 수백마일씩 뻗은 9개의 가상 직선을 연결했다. 중국은 인공섬 건설과 해군 순찰을 통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필리핀을 비롯해 베트남·대만·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간단없이 갈등을 빚고 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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