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시네마 섹션 초청
배우 이희준이 다시 한번 카메라 뒤에 섰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단편 '직사각형, 삼각형'은 그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연출작이다. 가족이라는 가장 익숙하고도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조각들을 특유의 유머와 현실감으로 풀어냈다. 6년 넘게 준비해온 이 작품은 가족모임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배경으로, 세대별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벌어지는 감정의 충돌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연출뿐 아니라 제작까지 직접 나선 이희준 감독은 "'병훈의 하루'처럼 이번에도 직접 제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찍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다시 메가폰을 잡은 이유를 밝혔다.
출연진은 이희준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로 구성돼, 유기적인 앙상블을 통해 극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부모 역에 정종준과 이제신, 장남 내외는 오용과 김희정, 둘째 딸 부부는 진선규와 정연, 막내딸 부부는 오의식과 권소현이 맡았다. 세대별 가족 구성이 얽히며 드러나는 감정의 균열을 각자의 위치에서 입체적으로 소화해 내는 앙상블이 일품이다.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저와 친한, 10년 넘게 연기 해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끼리 찍을 때 완성해서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해 턱시도 입고 대작 영화인 것처럼 레드카펫 걷자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해요. 다들 바빠서 저와 배우 오의식, 권소현이 함께 왔는데 역시나 너무 좋더라고요. 오의식 배우가 저와 20년 가까이 간다라는 극단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데 '형과 같이 연극하다가 형이 만든 작품으로 레드카펫을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저도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직사각형, 삼각형'은 가족이라는 익숙한 테마를 심리극의 밀도로 풀어낸 작품이다. 갈등과 감정의 분출이 대화를 통해 촘촘히 쌓여가는 구성은 연극적인 리듬을 자아낸다. 이 영화의 영감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에서 시작됐다. 그는 "왜 이런 영화는 한국에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어왔고, 결국 그 갈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결심했다.
"그 작품을 제가 좋아해요. 저런 영화가 있다니 참 멋있다고 오래 느껴왔어요. 작년에 연극 '대학살의 신' 제안이 들어왔을 때 거절할 수 없는 이유기도 했죠. 20번은 봤을 겁니다. 그 정도로 좋아해요. 왜 이런 작품이 한국에는 없나란 생각이 늘 머릿속에 욕망처럼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야기들이 맞춰진 것 같아요."
제목이 다소 독특한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그 의미가 서서히 드러난다. 누군가에게는 직사각형, 누군가에게는 삼각형처럼 보이지만, 각자 자신이 본 형태만이 옳다고 믿고 타인의 시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가족 내부의 갈등뿐 아니라 지금의 사회 구조에도 유효한 은유로 작용한다. 이희준 감독은 이러한 제목의 발상이 한 강연에서 받은 인상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법률스님의 즉문즉설에서 한 부부의 싸움 관련 고민에 정말 그렇게 답변을 하셨어요. 종이를 접으면서 보였던 게 인상이 깊어서 그런 이야기로 버무려졌죠. 또 원래 초고 제목은 '윤정'이었는데 제가 '슬픔의 삼각형'이란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거기서도 영감을 받았어요.(웃음)"
'직사각형, 삼각형'은 한 가족의 저녁 식사를 중심으로 전 세대의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이며 벌어지는 충돌을 다루면서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서,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한 관점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젠더 역할, 경제적 책임, 가족 내 위계 등에 대한 인식이 세대마다 얼마나 다른 지를 인물들을 통해 드러낸다.
"막내 윤정부터 30대부터 80대까지 세대별 부부가 등장해요. 제목처럼 각자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맞벌이하는 사람은 이래야 하고 남자가 버는 집안은 이래요 한다 등 다른 의견들을 세대를 다르게 설정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서로 피가 다른 가족들이 지금은 흔하잖아요."
이 감독은 '직사각형, 삼각형' 속 모든 캐릭터를 ‘관찰’에서 출발해 설계했다. 실제 가족 모임 속에서 마주칠 법한 태도와 말투, 감정을 떠올리며 인물 하나하나의 위치와 성격을 쌓아 올렸다. 특히 8명의 배우들에게는 단순한 감정 연기 이상으로 '역할의 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했다. 그는 인물 간의 말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거나 겹치게 배치하는 등, 리얼리즘과 연극적 톤 사이를 오가는 장치를 활용해 배우들의 집중력을 끌어냈다.
"영화를 공개하게 되면서 썼던 일지를 돌이켜 보니 8명의 모든 배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대사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막 내뱉게 했거든요. 리얼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연기하기는 어렵거든요. 막 이야기 주제가 막 넘어가잖아요. 제 요구도 까다로웠을 텐데 다들 너무 멋지게 해주셨어요."
특히 그는 각 캐릭터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세밀한 디렉션을 이어갔다.
"선규 형은 우리가 연습할 땐 착한 사위를 연기했는데 착한 게 아니라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싶은 사위를 연기를 해 달라고 했어요. 실제 사위들이 그렇거든요.(웃음) 실제로도 착하긴 하겠지만 잘 보여야 하는 처가 식구들 앞에서 멋지고 착하려고 애써서 디테일한 멘트들을 많이 줬는데 그게 잘 실현시켜 줬어요. 장남 광희 역의 오용 배우는 꼰대 같지만 멋있고 싶어 하고, 화도 나지만 이 상황에 자기가 꼭 필요한 인물처럼 굴도록 코멘트를 했었어요. 이런 것들이 진짜 배우 입장에서 어려운 것들이거든요. 근데 다들 가족의 위치에 맞게 연기해 줬어요. 아마 전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예요. 다들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재능 기부해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애착 가지고 참여해 주셔서 소정의 거마비 정도와 이희준 사용권 티켓을 만들어 드렸어요. 결혼식이나 축가나 그럴 때 사용해 달라고요."
이희준에게 유독 애틋했던 인물은 막내 윤정이었다.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초고의 제목을 '윤정'으로 붙였을 만큼, 그의 시선은 이 인물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윤정 캐릭터가 가장 마음이 아팠어요. 집안의 막내인데 다들 지적하기 바쁘니 윤정의 열등감에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배우이자 연출인 이희준은 누구보다 현장 컨디션과 집중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출자로서도 배우들이 감정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주일 동안 연극 연습실을 대관해 연극처럼 전체를 연습했어요. 배우들이 공연처럼 '한 번 더' 시작하면 언제든 갈 수 있게 준비해 놨어요. 촬영팀도 연습 장면을 보게 했죠. 그렇게 준비해서 촬영은 3일 동안 시간 순서대로 찍었어요. 영화 속 시간대가 다들 일 마치고 저녁에 모여 술을 마시는 설정이니 바깥이 밤이어야 했지만 3일 동안 밤을 새우며 찍는다는 건 배우들에게 컨디션도 좋지도 않고 적합하지 않으니 조명 감독님과 협의해서 창문을 막아서 밤처럼 보이게 했어요. 가로등 불빛도 다 만들었죠. 그래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3일 동안 좋은 컨디션 속에 찍었어요. 촬영 감독님과 조명 감독님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 ㅇ난감'을 하신 베테랑 분이시거든요.(웃음) 도와주셔서 잘 찍을 수 있어요."
가족 간 갈등을 다룬 영화지만, 이희준 감독은 감정을 과장하거나 자극적인 대립 구도로 끌고 가는 방식은 경계했다. 등장인물 간의 의견 충돌 밑바탕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극적인 장면보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말이 이어지는’ 진짜 가족의 정서적 흐름을 그려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제일 중요한 건 여기 모두 아무와도 싸우고 싶지 않고, 잘 지내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우리 좀 평화롭게 서로 잘 교류하고 살기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있죠. 그래서 너무 분노하거나, 사랑과 애정이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있는 가족을 잘 보면 아무도 이혼하고 싶지 않아 하고 절대 헤어지지 않을 가족입니다. 그러니까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대화를 하죠. 그게 또 가족이기도 하고요."
'직사각형, 삼각형'의 주요 배경이 되는 막내 윤정의 집은 캐릭터 설정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이희준 감독은 이야기의 개연성과 공간의 현실성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극 중 막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전제에 맞춰 장소를 정했다. 그렇게 공간을 찾던 중, 배우 최영준이 직접 신혼집을 촬영지로 제안하면서 예상치 못한 현실감과 밀도를 얻게 됐다.
"작은 빌라를 찾고 있었는데 최영준 배우가 자기 신혼집을 제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봤는데 너무 어울리고 좋았어요. 옥상이 있었고, 지하철이 지나가는 게 보이는 것도 너무 좋더라고요. 새로 뭐 더하거나 한 것도 없었어요. 후배라 미안하고 고맙기도 해서 제작부에 드라마에서 장소 대여비 물어봐 그 정도 비용을 드렸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역시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반영된 장치다. 이희준은 고양이를 통해 인물 간 대화의 흐름을 비트는 장면 전환의 리듬을 만들고, 의도적으로 겹쳐지는 상황과 소리의 층위를 구성하려 했다. 고양이들의 또 다른 역할은 사소한 문제로도 쉽게 다투는 인간과의 대비를 통해,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갈등의 본질을 은근하게 되묻는 존재다.
"초고 쓸 땐 캣타워에 올라가는 걸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 화제를 바꾸기도 하는 설정이었는데, 고양이들 연기시킬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도 안 나오다가 끝에 사람들 다 나가 싸울 때 나오는 걸로 바꿨습니다. 고양이 똥 쌀 때 덮고 긁는 소리는 다 제가 낸 거였어요.(웃음) 실제로 고양이 키우는 집에 가보면 대화를 막 하다가도 고양이 소리가 끼고 대화가 고양이로 흐르고 그러잖아요. 그걸 오버랩 시키고 싶었어요. 연극에서는 자주 쓰는 효과예요. 연극은 풀샷으로 보니까 다 보여서 웃긴데 영화에서 그걸 한 번 해보고 싶었죠. 저 사람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고양이한테 하는 소리 같은 게 재미있잖아요. 또 고양이 두 마리는 한 번도 안 싸워요. 사람은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로도 목소리를 높이는데 말이죠. 아무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부딪치지도 않고 나오잖아요. 그런 것도 한 번 표현해 보고 싶었죠."
앞서 언급했듯 '직사각형, 삼각형'은 단편이지만, 이희준에게는 짧지 않은 인내의 시간 끝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대본을 완성하고도 6년 넘는 시간 동안 여러 지원에 도전했지만, 쉽사리 문을 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다시 직접 제작을 감행했다.
"'직사각형, 삼각형'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는 6년이 넘었습니다. 지원서도 많이 제출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대본 자체가 특이한 편이라, 읽으시는 분들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버랩되는 소리까지 슬래시로 표기했을 정도여서, 심사위원들 입장에서는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병훈의 하루'처럼 제작까지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았는데 결국 찍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병훈의 하루'를 봤던 BH엔터테인먼트 대표님께서 두 번째 작품을 찍으면 도와주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작부 차원에서 도움을 주셨어요."
'직사각형, 삼각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음악 역시 감독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연출은 물론, 음악적 디테일까지 직접 관여한 그는 기존 작업자들과의 인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영화의 정서를 완성했다. 익숙한 사람들과 만들어낸 정서의 연속성이 이 작품의 결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핸섬가이즈' 음악 감독님이 작곡해 주셨어요. 또 가창은 저와 모임을 같이 해 친분 있는 난아진 씨가 불러줬고요. 남자 파트는 오의식 배우예요. 코러스는 저도 불렀어요."
영화의 후반부에는 손녀 은서의 시점이 추가된다. 은서는 종이를 접어 만든 틈 사이로 가족들이 다른 이웃과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의 연출 의도는 은서를 '상상력의 창문' 같은 존재로 삼아, 관객 각자가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함이다.
"은서가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나 표정 등은 관객들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어요. 다들 각자 상상하는 재미를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합니다.(웃음)"
이희준은 연출 작업을 이어오면서, 배우 시절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감독의 디렉션에 대해 조금씩 시야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감독으로서 디렉션을 내리는 입장이 되어보니, 과거 배우 시절 느꼈던 막연한 의문들이 하나둘씩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설명되지 않는 주문에도 분명한 맥락과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중이다.
"배우로 활동할 때는 감독님의 멘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무슨 의미지?' 싶어서 답답하거나 속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직접 연출을 해보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45분짜리 단편이지만, 연출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에서 감독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해도,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연출이 무엇을 원하시든,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더 흔쾌히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원래도 감독님이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끝으로 이희준은 이 작품이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닿기를 바랐다. 불편함을 마주하면서도 웃음이 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는 작은 쉼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직사각형, 삼각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웃겨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보여드릴 수 있는 루트를 찾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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