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미국산 반도체를 대량 구매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가 불만을 드러내온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고 두 나라 경제안보에도 서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 정부 관계자는 28일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미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의 제품을 염두에 두고 최대 1조엔(약 9조 5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수입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수적인 데이터센터(DC)용 반도체를 미국산으로 최대한 수입하겠다는 입장인 일 정부는 자국 내 기업들 가운데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통신사나 정보통신(IT) 기업들이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면 보조금을 지급해 구매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일 정부는 이를 통해 미국산 반도체 수입 규모를 현재보다 수천억엔에서 최대 1조엔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제안을 미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시장에서 최강자 자리를 유지하는 엔비디아를 핵심 공급업체로 염두에 두고 있다.
엔비디아는 현재 열풍이 불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80~90%에 이르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는 685억 달러(약 94조원) 수준이다. 이번 협상에서 일본이 최대 1조엔대 반도체 수입이 타결되면 대일 무역적자를 10%가량 해소할 수 있다.
일 정부는 이와 함께 미 기업들이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웨이퍼나 화학약품을 자국 내에서 제조할 때 일본 기술을 지원하는 방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웨이퍼는 반도체 원판 구실을 하며, 생산공정에서 핵심 기술의 하나로 꼽힌다. 반도체용 화학약품은 웨이퍼에 불순물이 남지 않도록 처리할 때 쓰이는데 일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정밀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미국에 와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며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강조해 왔다. 또 취임 뒤인 지난 3월에는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건 전적으로 대만에 있다. 대만이 우리에게서 훔쳐갔다”며 “대부분은 대만에 있고, 조금은 한국에 있다”고 해외 기업들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미·일 관세협상에서 일본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있는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30일 이 같은 내용의 방안을 들고 미 워싱턴에서 4차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아사히는 “일 정부는 이번 제안을 통해 미·일간 반도체 공급망이 확대되면 두 나라 모두의 경제안보 강화와도 연결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G7 회의에서 미·일 정상간 만남 이전에 장관급 협상을 진전시킨다는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본은 트럼프 정부가 부과한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 품목 관세를 포함해 관세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최종 합의까진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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