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정안 : 만 18세 의무가입
우리 사회의 청년 당사자의 입장은…
이재능 국민의힘 부대변인 기고
연금개혁,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예감이 든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도 그 흔한 '연금 혐오자'가 돼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다. 국민연금에 별 기대를 건 적도 없고, 막연히 미래 안전망이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청년세대를 대상으로 '조기 의무가입' 이야기가 나오니 묘하게 기분이 씁쓸하다.
그 씁쓸함은 아주 단순한 궁금함에서 시작됐다. "이 제도가 과연 청년도 챙기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청년은 이용만 하겠다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연금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래를 위한 대비'보다는 '수혜 계층을 위한 착취'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2030세대에게 연금이 점점 더 손해보는 모델로 인식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연금 설계의 칼날이 벌써 고등학생들에게까지 닿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국민연금은 분명 꽤 로맨틱한 이상에서 출발했다. 젊을 때 함께 부담하고, 나이 들어 다같이 안정적 수혜를 받는 구조. 불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가가 보장하는 노후 대책'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금 고갈이 불과 30년 후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고, 연금추계에 따르면 2048년부터는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된다고 한다. 기껏 노후를 위해 납부하고 있었더니 곳간의 바닥이 먼저 보인다는 말이다. 국회는 재작년부터 연금특위를 구성해 수급연령 상향조정(60세→65세), 보험료율 인상(9%→13%) 등의 모수개혁안을 내놨지만, 효과는 고갈 시점을 몇 년 늦춘 땜질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민주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무가입 연령을 기존 만 27세에서 만 18세로 낮추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안 그래도 그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드는 시점에, 미래세대를 더 이르게 편입시키려는 시도. 그것도 당장은 '납부 대상'으로서 말이다.
물론 소득이 없으면 당장은 납부 예외 처리된다. 하지만 일단 가입을 하는 순간부터 연금 시계는 돌아간다. 국가가 내 지갑에 손을 대는 시간이 10년쯤 더 늘어나는 셈이다. 사안이 이러니 국민연금이 점점 '또 하나의 학자금대출'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먼저 채무를 만들어두고, 미래에 너희가 알아서 책임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올해 초 한국갤럽(2025)의 조사에 따르면, 30대 이하 응답자의 63%는 국민연금이 폰지사기 같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2030세대는 연금제도를 더 이상 '믿고 참여할 공적 시스템'이 아니라, '덜 내고 더 받은 기성세대를 위한 불공정한 설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개정안이 계층 간 격차를 오히려 확대시킬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래 부으니까 유리하다"라고 설파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산식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은 가입기간 1년당 약 1%씩 올라간다.
하지만 그 구조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그만큼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15만 명이 넘는 청년이 보험료를 내지 못해 납부 예외자로 전환됐다. 27세의 청년들조차 사실상 '유령계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유한 부모들은 자녀가 고3이 되자마자 임의가입을 시킨다. 보험료를 대신 내주며, 그들의 '연금투자 계좌'처럼 작동시킨다. 그리고 훗날 지급액은 모든 계층이 세금으로 함께 부담한다. 국가는 연금제도를 '공정한 출발선'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출발선 자체가 계층에 따라 기울어 있는 것이다.
그간 연금 사각지대에 있던 청년층의 포괄률을 높이려는 정책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을 달성하고 싶다면, 당장 미래세대에게 납부부터 강제하기 전에, 먼저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공제 세대'가 되고, 훗날 기금 고갈을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연금은 지켜야 할 제도"라고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후세에 대한 기만이며, 세대 간 블랙코미디다.
그렇다면 해법은 뭘까. 중요한 건 포장이 아니라 납부 유인이다. 청년이 연금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맞춤형 연금 시뮬레이터, 미래 수급액 예측 서비스, 5년 단위 체험제도 같은 방식으로도 참여 유인을 설계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는 시도 방식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건, 비단 청년세대만을 위한 모델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가진 불안을 이해하고, 고령층의 생존권도 존중한다. 공정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원칙 아래, 모든 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구조로 다시 설계되길 바란다.
나는 연금 폐지를 주장하고 싶지 않다. 그건 정말 마지막 선택지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래세대에 책임을 떠넘기고, 미봉책만 반복한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는 말에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설득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책임은 이 제도를 꾸역꾸역 유지해온 정치권에 있다.
연금은 세대 간 계약이다. 만일 그 계약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쓰인다면, 청년들은 언젠가 그 계약서를 찢어버리겠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충분한 숙의와 함께 다시 써야 한다. 모두가 공평하도록, 우리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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