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인준 강행 D-3…협치 멈춘 국회, 여야 격돌 최고조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정국이 최악의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오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준안이 단독 처리될 가능성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30일 본회의 개회를 열지 않기로 하면서 여야 협상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국은 양당의 협상은커녕 책임 공방과 여론전으로 한층 더 얼어붙었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의 '국민청문회' 등 여론전을 '민생 방해'로 규정하고 급기야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민석 후보자가 총리 지명 철회 등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에서 농성 중인 야당 의원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별도의 '국민청문회'를 열고 국민 시각에서의 추가 검증에 나섰다. 앞서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재산 형성 과정, 칭화대 학위 취득, 아들의 입시 특혜 의혹 등 각종 논란을 둘러싸고 공방이 이어졌으나, 증인 한명 없이 청문회가 진행이 됐으며 자료 제출이 미비해 명확한 해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회계사와 농업인, 탈북민 등 일반 국민이 참여하는 자체 청문회를 통해 김 후보자 관련 의혹을 조명했다. 특히 청문회장에 '배추'를 갖다놓으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 후보자가 배추 농사 투자로 수익을 벌었다는 걸 풍자하기 위한 것으로, 과거 불법정치자금 사건 공여자 중 한 명인 강신성 씨로부터 미국 유학 시절 매달 450만원가량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겨냥한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국민청문회와 후보자 지명 철회 압박을 '거짓선동 정치쇼'라고 규정하며 깎아내렸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의힘은 총리 인사청문회를 파행시키더니, 오늘 자체청문회를 연다고 한다"며 "윤석열의 내란 정당화 선동에 버금가는 거짓선동, 정치쇼"라고 비판했다.
한민수 대변인도 이날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김 후보자 인준과 추경, 상법 등 민생법안을 6월 임시국회 내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했다. 또 국민의힘이 김 후보자에 대한 국민 청문회를 개최한 데 대해 "합당한 법적 조치를 법률위원회에서 준비할 것"이라는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날 김 후보자는 국회에 머무르던 중 나경원 국민의힘 농성장을 찾았다가 자료 제출 문제를 두고 즉석 설전도 벌였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회 로텐더홀을 지나다 농성 중인 나 의원에게 다가갔고, 나 의원이 김 후보자를 향해 "자료 좀 내요. 자료 좀"이라며 하자, 김 후보자는 "자료를 다 갖다 줬는데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오지를 않더니만"이라고 맞받는 등 언쟁을 벌였다.
정치권에선 김 후보자 인준 여부가 단순한 인사 논란을 넘어 여야 관계 재편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회 과반을 점한 민주당의 인준 강행 기류를 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는 출구 없는 정쟁 국면에 갇혀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 주도로 인준이 강행된다면, 이후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각종 쟁점 법안을 두고도 비슷한 충돌 양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총리 인준 저지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국민의힘은 이튿날인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김 후보자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현장 의원총회를 열고 대여 투쟁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17개 부처 중 현직 의원 7명…행정부까지 장악하나
이재명 정부가 출범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19개 정부부처 가운데 17개 부처 장관 인선을 마무리했다. 장관 후보자로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을 7명이나 차출한 것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현역 의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할 확률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 이재명 정부가 행정부까지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30일 현재 19개 정부 부처 가운데 국토교통부·문화체육관광부 2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처 장관 후보자를 임명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까지 더하면, 민주당 현역 의원은 8명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5명)와 윤석열 정부(4명) 초대 내각과 비교해도 현역 의원들 수는 압도적이다.
눈에 띄는 인선은 5선 의원들이다. 첫 민간인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안규백 의원을 비롯해 20년 만에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된 정동영 의원,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로 이재명 정부 검찰·경찰 개혁을 이끌 정성호·윤호중 의원은 모두 5선 의원들이다.
법무부·행안부·국방부 등 주요 부처에 민주당 현역 의원들을 배치한 것은 이 대통령이 강한 그립감을 가지고 각종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로 '7인회'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의원, 이재명 캠프 경선부터 시작해 본선에서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윤호중 의원은 모두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된다.
3선의 김성환 환경부 장관·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재선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또한 현역 의원들이다. 여기에 국토부 장관 또한 맹성규·문진석 의원 등 현역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전날 논평에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국회의원의 줄입각 사태"라며 "입법과 국정의 균형을 책임져야 할 현직 의원들을 줄줄이 내각에 집어넣는 건, 대한민국을 의원내각제로 착각한 듯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정 운영의 과도한 정치화, 인사청문회 무력화, 정무적 줄 세우기는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이 아니라 대통령실의 권력에 휘둘리는 사조직화와 포퓰리즘 운영이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에선 '청문회 현역의원 불패 신화'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여당 소속 현역 의원들이 대거 행정부 수장을 겸직하면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이 약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생경제 살려야" vs "재정건전성 악화"…여야 '30조 추경' 공방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약 30조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추경액의 70%가 국채라며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전 정부 시절 파탄이 난 민생경제를 살리려면 국채를 늘려서라도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맞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30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정부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소속 예결위원들은 이날 오전 회의에 불참했다. 추경 심의를 위한 예결위 일정을 여야 합의 없이 민주당 소속 한병도 예결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소속 박형수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법과 국회 관례에 의하면 각 당 예결위원이 정해지고 예결위원장이 선출되면 예결위원장은 먼저 전체회의를 열어 각 당의 간사를 선임하고 선임된 간사와 협의해 일정을 정한다"며 "그런데 한 위원장은 지난주 금요일 오후 일방적으로 일정을 공지했다. 예결위원장은 일방적으로 공지한 졸속 심의 일정을 즉각 백지화해 야당과 협의한 후 정상적인 일정을 재공지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종합정책질의를 30일 하루만 실시하는 점도 문제 삼았다. 정책질의는 최소 이틀은 보장돼야 하며 하루 만에 질의를 끝내는 건 국회의 심사권 박탈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수박 겉핥기식 예산 심의 후 내달 3일에 의결하는 건 유례 없는 졸속심사"라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민의힘 예결위원들이 없는 상태에서 정책질의를 진행했다. 이후 양당이 정책질의를 이틀간 하기로 합의하면서 국민의힘 예결위원들은 보이콧을 중단하고 오후 회의에 참석했다.
국민의힘은 한 위원장을 향해 여야 협의 없이 의사일정을 진행하려고 한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한기호 위원은 "심사 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한 점은 그냥 넘어가기엔 문제가 있다"며 "사과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원만한 진행을 위해 소통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다"고 말하며 사과를 대신했다.
국민의힘 소속 조정훈 위원은 전국민 지원금을 두고 사실상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조 위원은 "30조원 추경하기 위해 22조8000억원을 국채를 발행하는 거다. 22조8000억원을 5100만명의 국민 수로 나눠보니 1인당 내야 할 추가 세금이 45만원이었다. 추경은 45만원의 세금을 더 거둬 25만원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나머지 10조원을 어디서 빼왔는지 봤더니 화가 났다. 예산을 가장 많이 삭감당한 부처는 교육부였다. 총 2조6500억원이 삭감됐다. 그 중 1000억원 가까이를 대학생 근로장학금용으로 만들어내는데 거기서 뺐다. 올해 2학기 대학생 14만명에게 줄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의원 김위상 위원도 "추경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추경 목적이 분명하고 재원조달 방식이 납득된다면 내수진작과 소비심리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추경은 70%가량이 국채 발행으로 조성된다. 청년 세대가 부담할 빚을 내 편성하는 거다. 이로 인한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가 매우 우려된다"고 거들었다.
민주당 소속 노종면 위원은 국채 발행 지적과 관련해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푸는 결정을 쉽게 하겠느냐"며 "재정을 풀어야 할 때 안 풀어서 민생경제가 파탄나고 경기가 침체된 책임은 국민이힘과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거냐.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재정을 풀겠다는데 현금 살포로 인식하는 점이 가슴아프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의원 김상욱 위원은 근로장학금의 경우 예산이 남아서 감액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위원은 "근로장학금을 빼 소비쿠폰을 발행한다는 조정훈 위원의 말씀을 듣고 놀라서 제대로 확인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기재부 측에 "본예산을 다 집행한 후에 집행 정도를 봐서 감액할 건 감액하고 증액할 건 증액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기재부 측은 "근로장학금이 현장에서 집행이 잘 안 되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감액했다"고 답했다.
김 위원이 조 위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반론을 펴자 조 위원은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며 신상발언을 신청했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여야 위원들의 문제제기를 계속 허용하면 원활한 회의 진행이 안 된다"며 조 위원의 요청을 거절했고 이에 따라 여야 간 고성이 한 차례 오갔다.
민주당 소속 김성회 위원은 재정건전성 악화 지적에 대해 "윤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자) 외평기금, 공적공공관리기금을 사용하고 국회의 멀쩡한 예산을 집행하지도 않았다"며 "이것이 재정건전성으로 가는 길이 맞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번 세입경정은 윤 정부가 잘못 추기한 걸 바로잡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회 예결위는 오는 1일까지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이어간다. 민주당은 늦어도 3일 예결위 소위원회, 4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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