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가짜뉴스 징벌' 기조 속 여당발 음모론
김병기 "의혹 제기한 당사자가 해명해야"
서영교 "의혹 제기, 내가 아닌 열린공감TV"
국민의힘 "공작정치, 형사고발·국정조사"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처리를 논의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이 '자가당착'에 빠질 위기다. 대선 국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비밀리에 만나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선거법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내용의 '녹취록'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지만,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 신빙성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다.
사법부 수장을 엮은 의혹을 제기한 서영교·부승찬 의원에 당 지도부조차 결자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를 '공작정치'로 규정해 형사고발 방침은 물론,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 들어 판세 전환에 나섰다. 조희대·한덕수 회동설이 정치권의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서 의원이 제기하고 부 의원이 재차 띄운 '조희대·한덕수 녹취록' 의혹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청래 대표는 "조 대법원장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파기환송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빨리해야 했는지,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앞서 서 의원은 지난 5월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았다는 녹취록을 재생하며 처음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잠잠했던 이 녹취록은 지난 16일 부 의원이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보 내용'이라며 다시 언급해 정국 최대 현안 중 하나로 부상했다.
서 의원에 따르면 녹취록 내 인물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4월 4일 윤석열 탄핵 선고 끝나고, 4월 7일인가 4월 10일인가 15일인가. 조희대, 정상명(전 검찰총장), 김충식(김건희 여사 모친의 측근), 한덕수 4명이 만나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조희대가 '이재명 사건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이후 민주당은 수석대변인 명의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조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야합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은 자신에 대한 의혹이 일자 지난 17일 입장문을 통해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누구와도 논의한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민주당발 의혹이 여권에서 정치와 사법부 유착 논란으로 치닫던 가운데, 야권에서는 서 의원이 공개한 녹취 음성이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은 친여 성향의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가 공개했던 내용으로 해당 채널은 방송 당시 "음성은 AI로 제작된 것으로 특정 인물이 실제 녹음한 것이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었다.
다만 해당 녹취가 실존하는 발화자의 음성을 AI로 변환한 것인지, 애초부터 AI로 제작된 것인지 알려진 바는 없다. 이처럼 출처의 불분명, 제보의 신빙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여권발 '조희대 한덕수 비밀회동설'이 정치권을 강타하자 민주당 지도부도 선을 긋고 나섰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SBS라디오 '정치쇼'에서 "그것(회동 의혹)을 처음 거론한 분들이 해명해야 될 것 같다"며 "본인들이 안 만났다고 하니 처음 말씀하신 분이 (말을 한) 근거, 경위나 주변 상황, 그런 이야기를 했던 베이스를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준호 최고위원도 이날 MBC라디오에서 "(회동 의혹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이걸 처음 주장했었던 유튜버들, 그리고 서영교 의원의 주장들을 조금 더 면밀히 봐야 되고 그 근거를 명확하게 확인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의혹 제기의 당사자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정치·사법 유착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서 의원은 녹취록이 AI 음성이라는 주장이 확산하자 수습에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 "5월 1일 조 대법원장이 '대법원으로 이재명 사건이 올라오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윤석열에게 이야기했다는 제보를 현직 국회의원을 통해 받았다"며 "이에 5월 2일 법사위에서 긴급현안질의를 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이후 열린공감TV에서 의혹이 제기됐고 5월 1일에 제보받은 내용과 같은 맥락이라 5월 14일 법사위에서 조 대법원장을 향해 다시 질의를 했다"며 "이 녹취 또한 과거 여권 고위직 관계자로부터 제보된 것이라고 체크했다. 제보자는 보호돼야 한다. 그래서 특검이 수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책임소재를 유튜브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도 했다. 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초 의혹 제기를) 내가 한 게 아니다.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 열린공감TV에 물어보라"며 "언론인 여러분은 제보자를 밝히느냐. 중요한 건 이들이 모의한 정황이나 그런 얘기나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의 양심에, 가슴에 푹 찔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의힘은 회동설을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와 서영교·부승찬 의원, 유튜버 김어준 씨 채널 등에 대한 형사고발 방침을 밝혔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대 재생산한 다음, 논란이 되면 특검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배상'을 강조한 바 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독재의 시작은 사법부 장악이다. 좌파의 추악하고 음습한 공작정치를 뿌리 뽑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며 "서영교·부승찬 등 (의혹 제기에) 핵심에 있는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법적조치는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 사퇴 압박과 3대 특검 사건 전담재판부 설치를 연계해 야당을 말살하기 위한 초석 다지기라는 시각이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근거도 없고 검증되지도 않은 제보들을 마치 중대한 범죄라도 드러난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그 제보란 것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개인의 목소리 또는 변조되거나 AI가 만들어낸 목소리일 뿐 조 대법원장과는 아무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언론 인터뷰나 방송에 나가 특검이 수사하면 된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며 "공공연하게 허위사실을 유포한 정청래·서영교·부승찬·김어준 등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제1호 적용 대상이다. 우리 당은 조 대법원장을 통한 정치공작,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즉각 형사상 고발하고, 국회 법사위를 통해 국정조사 요구서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 ⓒ연합뉴스
반면 민주당은 자당 소속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을 '국민적 의혹'으로 확대해 되려 국민의힘이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은) 국민의 대표라면 응당 국민적 의혹에 발 벗고 나서 진실규명을 해야지, 의혹제기에 발끈해 협박하며 입을 틀어막으려 하면 되겠느냐"라며 "국민의힘이 정청래 대표와 여당을 고발하는 즉시 '무고죄'로 대응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의힘은 당초 19일 오후 조 대법원장을 둘러싼 정치공작 및 허위사실 유포 의혹으로 서영교·부승찬 의원을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었으나, 내주 초께 고발장을 접수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당 법률자문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보완해 접수하기로 의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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