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역협상서 中희토류 수출통제에 고율관세 철회 ‘굴욕’
中 희토류 시장 지배구조 깨기 위해 美 대대적 반격 나서
국방부, 4억달러 투자해 美 유일 희토류 업체 최대 주주로
희토류 산업 투자 촉진 위해 美, ‘최저가격 보장제’도 도입
무역협상에서 ‘희토류 굴욕’을 당한 미국이 중국의 글로벌 희토류 시장 독점적 지배를 깨기 위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 펜타곤(국방부)이 미 희토류 업체의 최대주주에 올라선데 이어, 미국 내 희토류 산업 투자 촉진책으로 ‘희토류 최저가격 보장제’를 도입하고, 빅테크(기술 대기업) 애플에 압박을 가해 미 희토류 업체와 구매계약을 맺도록 하는 등 희토류 산업 육성에 ‘올인’(다걸기)하는 모양새다.
애플은 미국 유일의 희토류 채굴·가공업체인 MP머티리얼스와 5억 달러(약 6962억원) 규모의 ‘희토류 자석’(rare-earth magnets·희토류로 제조한 영구자석) 구매계약을 체결했으며 공정라인을 구축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15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에 미국 내 공급망 이전을 압박한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두 회사는 구체적인 계약 기간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애플은 해당 계약을 ‘다년간 계약’이라고 밝혔다. MP머티리얼스는 이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 애플이 선수금으로 2억 달러를 지급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2017년 설립된 MP머티리얼스는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에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는 희토류 금속과 자석을 생산하는 공장도 있다. MP머티리얼스는 캘리포니아 공장에서 가공한 희토류 원재료를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애플 제품 전용 자석제조 공정을 신설, 자석을 제조해 오는 2027년부터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맥북 등에 투입할 자석을 애플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곳에 희토류 재활용 공정도 공동 설립해 폐기물에서 추출한 소재를 차세대 제품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애플이 공급받은 희토류 자석은 아이폰에서 진동·촉감을 전달하는 햅틱 엔진(정밀 진동장치)을 비롯해 애플 기기의 오디오 장비나 마이크 제조에 쓰인다.
애플의 이번 계약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쇼어링(Reshoring·해외로 이전한 기업이 본국으로 공급망 이전)하도록 압박하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아이폰은 반드시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중국 공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애플을 콕 집어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주문한 것이다.
MP머티리얼스는 미국의 국영기업이나 다름없다. 펜타곤이 MP머티리얼스 주식(우선주)을 매입해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앞서 10일 펜타곤이 자사에 4억 달러 규모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계약에 따르면 펜타곤은 보통주로 전환 가능한 신규 발행 우선주를 매입한다.
여기에 더해 워런트(warrant·신주인수권 증권, 즉 MP 보통주를 추가 매입할 수 있는 권리)도 확보했다. 펜타곤이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고 워런트를 행사하면 MP머티리어얼스 지분의 15%가량을 확보해 최대주주 지위를 갖는다. 기존 최대주주인 제임스 리틴스키 MP머티리얼스 최고경영자(CEO·8.61%)나 블랙록펀드(8.27%)보다 2배 가까이 많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계약이 MP머티리얼스에 대한 중국의 관여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희토류 생산업체 성허(盛和)자원이 이 회사 지분 8%를 보유해 4대주주로 올라 있는 까닭이다. MP머티리얼스는 미국에 제2 희토류 자석 생산공장을 건설, 생산능력을 연간 7000t으로 늘리기로 했다.
연간 총생산량은 1만t으로 2024년 미국의 자석 소비량과 맞먹는다. 자석 소비량에는 미국이 이미 조립 생산품에 설치해 수입하는 3만t은 포함돼 있지 않다. 캐나다 희토류·배터리 금속연구 컨설팅 업체인 애더머스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희토류 영구자석 수요가 앞으로 10년 동안 60만 7000t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수요 증가율은 연간 17%로 가장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리틴스키 CEO도 이번 계약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공급망 독립을 가속화하기 위해 취한 결정적 행동”이라며 “이번 계획에 따라 생산될 자석 1만t은 미국 국방과 상업 수요를 의미 있게 지원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희토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초강력 자석을 만드는데 필요한 17개 광물을 지칭한다. 드론(무인기)과 F-35를 비롯해 전투기, 잠수함, 미사일 시스템 등 군사장비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자동차의 파워모터, 풍력터빈 등에 사용된다. 하지만 희토류가 미국엔 아킬레스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기세를 올리며 미·중 무역협상에 들어갔지만,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에 들어가자 발목이 잡혀 승기를 잡기는커녕 ‘쓴잔’을 들어야 했다. 미국은 거의 모든 희토류를 외국에서 조달하고 있고 이중 70%는 중국산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69.2%를 차지하며, 희토류 가공·정제 산업 점유율은 90%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지난 4월 희토류 자석 구매자에게 군사적 용도와 관련 없는 곳에 사용된다는 증명서를 제출토록 했다. 이 때문에 5월 포드의 시카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공장이 1주일 동안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다 F-35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국의 첨단무기 역시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미국은 ‘눈물을 머금고’ 예고했던 초고율 관세부과를 철회하고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와 석유화학 제품 원료인 에탄 등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철회하는 대가였다. 더욱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인 H20 칩의 중국 수출도 허가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15일 미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H20 칩 수출을 허가한 이유에 대해 “조 바이든 직전 정부는 지난해 중국에 이런 칩 구매를 허용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막았다”며 “이후 중국과 (희토류) 자석 합의를 하면서 우리는 중국에 칩을 다시 팔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희토류 가격 통제권도 막강하다. 중국 희토류 업체의 ‘쌍두마차’격인 베이팡시투(北方稀土)와 바오강강롄(包鋼鋼聯)은 지난 2023년 2분기부터 매분기초 희토류 정광 가격을 협의해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10일 올해 3분기에 희토류 정광(함유량 50%)의 세전 거래가를 t당 1만 9109위안(약 37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14.14%, 전 분기보다 1.51% 각각 높아졌다. 그럼에도 미국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미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 내 희토류산업 투자촉진책으로 ‘최저가격 보장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중국의 희토류 독점은 중국이 정한 낮은 가격 때문에 중국 외 지역에서 희토류 개발을 위한 투자 인센티브가 사라진 게 한 요인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희토류의 90%를 독점 공급하는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서방 채굴업체들은 희토류 공급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별도의 가격제를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미 국방부가 지난주 공개한 계약에서 미국 내 MP머티리얼스에 시장가격의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최저가격을 보장해주기로 한 것이다.
희토류 주종 광물인 네오디뮴(Nd)-프라세오디뮴(NdPr) 1㎏당 110달러와 중국이 정하는 시장가와의 차이를 MP머티리얼스에 보존해주기로 했다. 만약 시장가격이 110달러를 웃돌면 국방부가 추가 이익의 30%를 가져가는 구조다.
국방부가 보장한 가격(110달러)은 자문업체 프로젝트 블루가 수년 동안 생산량을 수요에 맞출 수 있는 적정 가격인 ㎏당 75~105달러보다 약간 높다. 현재의 가격 수준은 63달러 정도다. 라이언 캐스티유 애더머스 인텔리전스 분석가는 “이 기준이 업계의 새로운 기준이 돼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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