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플라자] 평화의 다리를 놓는 마음,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현실

문찬우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행정자문위원 (desk@dailian.co.kr)

입력 2025.07.24 07:07  수정 2025.07.25 10:21

문찬우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행정자문위원 기고

이재명정부 정책 바라보는 실향민들 마음 '복잡'

文정권 정책, 결국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돌아와

확고한 안보 토대에서 교류 추진하는 지혜 보여야

실향민 가족들이 설날이었던 올해 1월 29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망향경모제에서 절을 올리고 있다. ⓒ뉴시스

이북5도위원회에서 실향민 어르신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이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그분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교류 정책들 - 개별관광 허용 검토, 민간교류 활성화, 종교계와 시민사회의 북한 접촉 승인 - 을 바라보는 실향민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뛰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것이 안전한 길일까' 하는 우려도 크다.

평화라는 이름의 교훈들

물론 평화를 향한 노력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일방적인 선의나 감정적 접근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냉전 시대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를 보자. 그는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지만, 동시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일원으로서 확고한 안보 체제를 유지했다. 레이건 대통령 역시 소련과 군축 협상을 벌이면서도 '힘을 통한 평화'라는 원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진정한 평화는 상대방이 우리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힘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독일 통일 역시 서독이 확고한 안보 토대 위에서 끈기 있게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지혜와 균형감이 필요하다.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

지금 북한의 행보를 보면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 강화, 우크라이나 전선으로의 병력 파견, 전략무기 개발…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바라는 평화로운 미래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우리의 선의에 어떻게 답해왔는지를 돌아보면 명확해진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지만 그 결과는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우리가 내민 화해의 손길에 대한 북한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관광 허용과 같은 정책을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정부는 이것이 대북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와 실제 안보 위험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북한이 한 손으로는 우리와 악수하며, 다른 손으로는 총을 겨누는 상황에서 우리만 무방비로 문을 열어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양보이며, 결국 더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는 길이다.


교류와 대화는 분명 소중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안보라는 든든한 기둥을 결코 흔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평화는 확고한 안보 토대 위에서 교류를 추진하는 지혜에서 나온다.

희망을 품고 현실을 걷다

분단 70여 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렸다. 하지만 성급함보다는 지혜가, 일방적인 선의보다는 상호 존중이 더 소중하다. 평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쌓아가는 신뢰와 이해에서 피어나는 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신뢰는 일방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면,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안보 공백을 만들 위험이 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의 문은 열되, 안보의 문지기는 더욱 든든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때로는 험하고 더딜지라도, 평화라는 목표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여정에서 우리는 꿈과 현실, 희망과 신중함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평화의 꿈을 품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대화의 손을 내밀되 안보의 방패를 내려놓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글/ 문찬우 행정안전부 이북5도위원회 황해도 행정자문위원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