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화관 탐방기㉔]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문화의 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공연까지 쉽게 접할 수 있고, 전자책 역시 이미 생활의 한 부분이 됐습니다. 디지털화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사이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공간은 외면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공간이 갖는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 문화팀은 ‘작은’ 공연장과 영화관·서점을 중심으로 ‘공간의 기억’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씨네큐브 25년의 신뢰…브랜드가 곧 큐레이션
서울 광화문 한복판, 25년째 관객과 함께 호흡해온 예술영화관이 있다. 태광그룹 계열의 미디어 기업 티캐스트가 운영을 맡고 있는 씨네큐브다. 믿고 보는 영화관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이곳은 상영작보다 먼저 극장을 고르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오랜 신뢰와 애정을 받아왔다. 화려한 멀티플렉스 대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오직 예술영화에 집중하는 운영 철학, 정시 상영과 무광고, 음식물 반입 금지 같은 관람 문화 그리고 매년 이어지는 기획전과 시네토크까지. 씨네큐브는 오늘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씨네큐브는 단순한 입지를 넘어 공간 구성 자체로도 독립예술영화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환웅 선임은 상업적 기능 중심의 일반적인 건물 구조에서 벗어나, 영화관을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한 설계와 운영 철학이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도심 한복판의 건물에 예술영화관이 있다는 것, 그 자체의 가치가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예술 영화관은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시내 한복판에서 25년 정도 영화관을 운영한다는 것. 그리고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옥에 1층에 은행이 있고 지하에 강당, 식당이 있는 일반적인 구조를 깨고 지하에 예술영화관이 있는 구조, 1층에 은행 대신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 구성. 이런 공간적인 가치는 관객들에게도 특별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씨네큐브는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예술영화의 가치를 다시 조명하는 프로젝트들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아우르는 특별전을 시작으로, 단편 앤솔로지 영화 제작에도 착수했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더불어 창작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문화의 장이라는 본질, 예술영화를 되새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씨네큐브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거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돌아볼 수 있는 회고전을 기획했습니다. 감독님은 저희 극장에서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하신 감독님이기도 하세요. 감독님의 영화를 6편이나 수입했던 인연으로 씨네큐브에 애정이 깊은 감독님이 초청에 응해 내한을 하셨고, 이동휘 배우와 함께 예술영화관의 의미나 존재 이유에 대한 토크도 진행했습니다. 윤가은 감독님과 마스터 클래스도 열었고, 송강호, 이주영 배우와 함께 '어느 가족' 등을 포함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도 진행했습니다. 예매를 열 때마다 매진도 빨리 되고, 관객 반응도 매우 좋아서 저희로서도 감사한 행사였습니다."
예술영화 전용관의 큐레이션은 단순히 프로그램 편성 차원을 넘어, 영화관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멀티플렉스에서는 예술영화가 제한된 시간과 회차 안에 소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씨네큐브는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우선 가치로 삼는다. 그래서 신작 중심의 프로그래밍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영화관에 오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작품들을 발굴해 상영하는 데에도 힘을 쏟는다.
"저희는 예술 영화 중에서도 신작 중심으로 편성을 하고 있고요.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최선의 예술 영화들을 관객분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선정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 영화 전용관일수록 확고한 영화 선정 기준이 중요한데, 저희는 그중에서도 최전선의 영화를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요. 옛 명작이나 재개봉 영화도 좋지만, 2025년 지금 이 순간에 볼 수 있는 영화를 최대한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씨네큐브는 정기 기획전을 통해 예술영화의 흐름을 관객과 함께 읽어내고자 한다.
"저희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기획전이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연말에는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그리고 2~3월 아카데미 시즌에는 '아카데미 화제작 열전'을 진행합니다. 최신 영화를 조금 더 빨리 프리미어 상영하는 기획전이고,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들을 대표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수고스러움이 선사하는 감동을 지켜내기 위해"
씨네큐브는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음식물 반입 금지, 상영 전 광고 제거, 엔딩 크레딧 전까지 불을 밝히지 않는 등의 운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관객과 씨네큐브가 오랜 시간 지켜온 약속이다.
"저희는 영화 관람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나 문화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개관 이후 지금까지 관람 에티켓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칙들이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는 조금 엄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희만의 강압이 아니라 관객분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만들어 온 문화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독립예술영화관이 재정난과 시설 노후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정부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실질적인 정책 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저희는 티캐스트에서 운영하는 극장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다른 독립 예술영화관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할인권 지원 사업은 긍정적이지만, 일회성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단순 할인 외에 시설 운영비나 인프라에 대한 실질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금은 마케팅과 홍보비 위주고, 시설 개선엔 부족해요. 관객 수 기준으로 금액이 정해지다 보니 연간 몇 천만 원 수준인데,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OTT로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 ‘굳이’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씨네큐브 박지예 팀장은 이 질문에 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그 본질을 되짚었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시네토크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 자체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그 말씀이 지금까지도 계속 마음에 남아요. 영화는 그런 정적인 공동 경험 자체가 주는 감동이 있거든요. OTT는 편하지만, 영화관은 불편하고 수고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 수고로움이 주는 가치가 있다는 거죠. 내가 영화에 맞추는 그 경험이 오히려 더 크고 깊은 감동을 준다고 느꼈어요. 그날 관객 중 누군가 영화관이 계속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여전히 원고지에 쓰듯 '영화관 역시 불편하지만 창작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담은 공간'이라고 답하셨죠. 창작자를 위한 숭고한 공간, 그게 바로 영화관의 존재 이유인 것 같아요."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