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민생 회복의 일환으로 추진한 100억원 규모의 공연 할인권 배포 정책이 10분 만에 매진되는 등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공연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성공적 정책의 이면에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씁쓸한 한숨도 배어 나온다.
문체부는 지난 8월 8일부터 약 100억원의 추경 예산으로 총 210만장의 공연·전시 할인권을 배포했다. 이번 공연 할인권 정책은 연극, 뮤지컬, 클래식, 국악, 무용 등 소위 ‘기초예술’ 장르를 지원 우선순위에 뒀다. 대중음악과 대중무용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팬데믹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입고 시장 기반이 취약한 기초예술 분야를 우선적으로 지원해 문화 생태계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번 정책이 세부적인 생태계에 대한 조사 없이 나온 탁상공론이라는 날 선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음악연대 협동조합의 윤동환 이사는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장르에 따라 지원 대상을 구분한 것 자체가 세부적인 구조나 생태계에 대한 조사가 없는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대중음악’이라는 포괄적인 범주로 묶어 지원에서 배제한 조치는 수십, 수백억 원의 자본이 투입되는 주류 케이팝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생적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인디 음악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낳으며 의도치 않은 사각지대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은 모든 공연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한 인디 음악계였다. ‘홍대 앞 라이브 클럽’으로 상징되는 인디 신(Scene)은 존폐 자체를 위협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라이브 클럽은 법적으로 ‘공연장’이 아닌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되어 있어 정부의 집합금지 및 영업시간 제한 조치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노출됐다. 관객과의 소통이 생명인 스탠딩 공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고, 이는 곧바로 공연 중단과 클럽 폐업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하루아침에 무대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았다.
윤 이사는 “언론을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는 대중음악계지만, 기초예술과 마찬가지로 영세한 사업자와 아티스트, 인디 뮤지션들은 여전히 힘들게 공연을 만들고 있다”며 인디 신의 현실을 대변했다. 팬데믹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인디 음악계에 이번 지원 배제는 또 다른 상처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 인디음악 관계자 역시 “자생적 생태계인 인디 음악은 팬데믹으로 붕괴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시점에 정책적으로 또다시 외면당한 것 같아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결국 문제는 지원의 논리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생태계에 대한 이해 없이 시간에 쫓겨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윤 이사는 “할인권의 목적은 주최사의 수익 보전이 아니라, 소비자인 관객의 부담을 줄여 다양한 문화를 즐길 기회를 넓히는 데 초점을 둬야 하는데 세부적 조사나 명확한 구조 없이 시간에 쫓겨 만들어졌다”며 “이는 소득 구분 없이 전국민 소비쿠폰을 제공한 이재명 정부의 기조에도 반하는 정책”이라고 근본적인 방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지원과 배제를 가르는 장르 구분의 모호함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그는 “국악과 대중음악이 혼합된 퓨전 공연이나 케이팝 아이돌이 출연하는 뮤지컬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단지 ‘대중음악’ ‘댄스’라는 이름 때문에 문화의 테두리에서 제외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공연에 대한 정확한 장르 구분조차 없는 현 시스템에서 현업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없이 나온 탁상공론의 결과”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10분 만의 매진이라는 ‘성공’에 취해 정책이 남긴 씁쓸한 뒷맛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장르를 이분법적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공연장의 규모, 단체의 자본 구조, 팬데믹 기간의 실질적 피해 규모 등 장르별 특수성을 세분화하여 반영하는 섬세한 정책 설계가 시급한 시점이다. 문화 정책의 진정한 성공은 수치적 성과가 아닌,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문화적 포용에서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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