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베스트: 에드 설리번 이야기’, 비틀스의 아저씨 그 너머의 이야기 [임희윤의 ‘영화 (쏙) 음악’⑪]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8.16 07:21  수정 2025.08.16 07:21

다큐멘터리 ‘선데이 베스트: 에드 설리번 이야기’ (쏙) Mahalia Jackson ‘Were You There When They Crucified My Lord?’

에드 설리번은 미국 TV 쇼의 선구자로 통해.


에드 설리번. 음악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반드시 들어봤을 이름이야. ‘연관 검색어’는 대부분 딱 2개지. ‘쇼’와 ‘비틀스’. 그러니까 미국 CBS TV의 ‘에드 설리번 쇼’에 비틀스가 출연하고 그때의 광적인 반응이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으니까. 에드 설리번은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고, ‘레이디스 앤드 젠틀맨, 더 비틀스!’ 하고 외치면 스포트라이트는 설리번 아저씨가 아니고 팔팔한 네 명의 놀라운 젊은이들(비틀스)에게 바로 돌아가지. 1964년 2월 9일. 미국의 TV와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었어.


음악과 음악 이야기 꽤나 좋아한다는 나한테도 설리번 아저씨는 그냥 그 정도의 사람이었어. 유명한 TV 음악 쇼 진행자, 비틀스 소개한 사람.


사실 이 장면으로 가장 유명하지. 누군지 다들 알겠지?


하지만 최근 공개된 다큐멘터리 ‘선데이 베스트: 에드 설리번 이야기’를 보고 이 아저씨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지. 정확히는 넓어졌다고 해야겠지. 이 다큐멘터리는 설리번이 차별받던 미국의 흑인 음악가들을 대중 앞으로 끌어준 선구자였다는 면에 초점을 맞췄어. CBS 방송국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협찬사들의 유무형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뛰어난 흑인 음악가들을 직접 골라 카메라 앞에 세운 인물이 바로 그였다는 거야.


전설적인 작곡가 콜 포터(오른쪽)와 ‘에드 설리번 쇼’의 전신인 ‘토스트 오브 더 타운’에서 이야기하는 설리번 아저씨.


실제로 다큐에서 주로 보여주는 에드 설리번 쇼의 장면들은 ‘솔 트레인(Soul Train)’(1971년부터 방영한 R&B, 솔, 힙합 전문 TV 쇼)을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다채로운 아프리카계 아티스트들의 향연이야.


사실상 첫 쇼 장면부터 의미심장해. 에드 설리번 쇼의 하이라이트인 비틀스 대신에 비틀스의 제5 멤버로도 불린 흑인 건반 주자 빌리 프레스턴이 마이크를 잡고 격렬한 춤을 추는 신으로 시작하거든. 뒤에서 건반을 때리는 사람은 레이 찰스야.


니나 시몬, 머헤일리어 잭슨, 잭슨 5, 토니 하퍼, 냇 킹 콜, 아이크와 티나 터너, 재키 윌슨, 글래디스 나이트 & 더 핍스, 보 디들리, 제임스 브라운, 수프림스…. 별들의 대잔치급 자료 영상만으로도 이 다큐는 볼 만해.


당시 13세의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왼쪽)도 1958년 에드 설리번 쇼에 롤링 스톤스와 함께 출연해지면서 스타덤에 올랐지.


더구나 음악가이자 민권 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인 스모키 로빈슨, 모타운 레코드의 설립자인 베리 고디 등이 직접 나와서 에드 설리번의 신념, 그리고 그가 끼친 문화적 영향력에 대해 기꺼이 인터뷰하지.


설리번은 연단에 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 운동가는 확실히 아니었어.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은근한 문화 기획자였지. 이를테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주도로 흑인 인권 운동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버스 내 좌석 분리 반대 운동이 절정으로 치닫던 1956년, 설리번은 흑인 가수 냇 킹 콜, 백인 가수 토니 마틴을 무대로 올려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를 듀엣으로 부르게 해. 비틀스가 이 쇼에 출연하기 무려 8년 전에 이미 역사적인 장면들을 매주 일요일 밤 미국의 거실에 쏘아 올리고 있었던 셈이야.


말끔히 빗어 올린 머리, 행커치프와 넥타이 핀을 동반한 깔끔한 정장. 하지만 그는 어떤 면에선 ‘진흙탕’도 마다 않는 투사였어.


에드 설리번은 원래 방송인도 연예인도 아니었어. 뉴욕 데일리 뉴스, 뉴욕 이브닝 메일에서 일하던 신문기자였지. 원래 전문 분야는 스포츠였대. 세간의 관점과는 조금 다른 도발적인 칼럼들로, 독특한 문체로 이름을 날렸다지. 그러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연극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우연한 기회에 TV 진행자로 발탁되지. 설리번은 스스로 스포츠 기자로서 어떤 야구선수가 요즘 왜 타율이 좋은지 그 비결을 알아채는 ‘매의 눈’이 나중에 음악계 스타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놔. 실제로 그는 1948년부터 1971년까지 23년간 1100회에 걸쳐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1만 명 이상의 공연자를 직접 골랐다고 해.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아프리카계였지.


이 다큐에서 안타깝게도 에드 설리번 본인은 자료 화면으로만 등장하지. 1971년 에드 설리번 쇼가 종영하고 불과 3년 뒤인 1974년에 별세했거든. 그 대신, 생전 그가 쓴 수천 개의 기사, 칼럼, 편지의 글을 첨단 기술을 이용해 마치 새로 녹음한 내레이션처럼 설리번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지. 하늘에 있는 설리번 본인이 해설자로 직접 ‘등판’한 셈이야. 나도 더 열심히 글을 써둬야겠어. 혹시 알아? 내 육신이 없어진 뒤, 내 글이라도 남아 내 음성으로 내 이야기를 대신 해줄지.


하지만 내 이야기, 내 글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어쩌면 세상과 싸워 나가면서 더 좋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가는 거겠지.


임희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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